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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가볍게 읽을 만한 범죄소설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우선 이 책의 저자인 나카무라 후미노리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21세기 문학계의 새로운 별'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일본의 젊은 작가입니다. 이미 국내에도 독자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2005년 [흙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9년에 [모든게 다 우울한 밤에]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데뷔 이래로 인간의 내면에 굼실거리는 어둠에 대해 이야기했던 작가가 새 장편소설 [쓰리](자음과 모음)는 순문학적 깊이를 남기면서도 이야기의 즐거움에 주목하며 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쓰리]는 '오에 겐자부로 문학상'을 받았지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혼자서 직접 그해 출간된 도서의 성과와 문학적 가능성을 평가해서 수상작을 선별하는 상입니다. 그 외에도 '노마 문예상'도 받고, 상복이 많군요.
"순수문학 서적이라도 책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스펜스나 미스터리 요소를 더해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책 [왕국]은 작가의 열번째 소설입니다. 작가는 [쓰리]라는 소설을 집필 할 때, 그 이야기의 속편이라기보다 자매편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혹은 어느 한쪽만 읽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 [쓰리]는 아직 못 읽어봤고, [왕국]을 먼저 보게 되는군요.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게 언제쯤이었을까." 로 첫 문장이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창녀'라는 단어가 나오는군요. 유리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창녀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대가성 지시를 받고 타겟(남성)을 약물로 기절시킨 후 타겟 당사자가 돈으로 메꿀수밖에 없는 약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작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지시자에게 전달됩니다.
달. 이 작가도 [1Q84]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 만큼이나 '달'을 좋아하는군요. "머리 위에는 네온 불빛까지 비춰주는 달의 광채가 있었다. 해가 저문 뒤에도 그 불빛을 훔쳐내고 우리 같은 존재를 비춰주는.....달"
이러한 장르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특성 그대로 템포가 빠릅니다. 주인공 유리카라는 여인이 미션을 매끈하게 잘 수행하는군요. 유리카에겐 가족이 없습니다. 아동 시설에서 성장했지요. 왜 여성 킬러가 주인공인 영화를 봐도 주변에 가족이 없잖습니까? 그 분위기 그대로 입니다.
중반을 넘어서며 대립되는 두 암흑세력의 중간에 핑퐁처럼 오가게 됩니다. 일단 위험한 상황을 나름대로 지혜롭게 잘 넘기고 있군요. 암흑가의 보스 하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킵니다. 그렇고 그런 스토리로만 전개하기엔 뭔가 허전했던 모양입니다.
뭐라고 하나 들어보시렵니까? "그(소크라테스)는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었어. 그에게 예언자의 기질이 있었다는 얘기야. (....) 그는 뛰어난 사변(思辯)능력 때문에 주위로부터 소외되어 재판에 부쳐졌어. 거기서 감형을 청하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바람에 빈축을 사고 결국 사형에 처해졌지...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에게 들렸다는 목소리의 성질이야. 그 목소리가 그를 채근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목소리였던 모양이야. 그는 그 목소리를 신적인 것으로서 감사하게 여기고 목소리가 이르는 대로 살았어."
작가가 소설의 중량을 올리기 위해 등장시킨 소크라테스. 덕분에 그를 잠시 생각하고 지나갑니다. 물론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에선 스치듯 지나갑니다만, 후반부에 덧붙인 '내면의 소리'는 한 번 생각해보고 지나갈 부분이긴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중차대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직관이나 내면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지요. 이 소설의 컬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아, 일단 이 소설 [왕국]은 재밋게 봤습니다.
"왜 더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는 데는 마음을 쓰면서 지혜를 사랑하고 영혼을 완성하는데는 생각도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