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라일락 꿈꾸는돌 7
캐럴린 마이어 지음, 곽명단 옮김 / 돌베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생활권을 의식주(衣食住)로 표현합니다. 물론 이 단어가 그 중요도 순서로 붙인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순서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식의(住食衣).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방 막힌 공간이 없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아니 생활 자체가 힘든 상황이지요)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땐 몰랐다. 우리가 쫒겨나 삶이 송두리째 뽑히고,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은, 그때 프리덤 타운에 살았을 적, 우리 외할아버지 짐 윌리엄스는 일분 일초라도 짬만 나면 아름다운 꽃밭을 손질했다. 할아버지는 그 꽃밭을 좋아했고,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좋았다. 할아버지네 꽃밭은 내가 가장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화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로즈 리'라고 불리우는 흑인 소녀입니다. 로즈 리에겐 할아버지네 꽃밭이 에덴 동산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것은 그럴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치고, 로즈 리와 마을 사람들이 그 터전에서 쫒겨나는 것은 매우 상황이 다릅니다. 그 에덴 동산에서 할아버지가 특히 아끼는 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얀 라일락'입니다. 


"이건 아주 귀한 나무야. 자줏빛 라일락은 흔해도 이렇게 하얀 라일락은 평생 가야 한번 볼까 말까 하거든."  


로즈 리는 정원사인 할아버지의 일터이기도 한 백인 가정 벨씨네 집에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가 느닷없이 식사시중을 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백인 여인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안 들었어야 하는 말이지요.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여사님. 프리덤타운을 어떻게든 해야 해요. 그러면 해결된다니까요."


프리덤 타운은 그 지역의 흑인 집단 거주지역입니다. 전혀 프리덤하지 못한 프리덤타운.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시티 오브 조이'가 오버랩 됩니다. '환희의 도시'라 불리는 지옥 같은 곳, 캘커타가 생각납니다. 


여인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딱한 검둥이들이야 프리덤타운을 뜰 기회라고 좋아하지 않겠어요? 큰비만 내렸다 하면 샛강이 넘쳐 진창이 되니 지긋지긋할 만도 하잖아요! 우린 그저 거기보다 살기 편한 데로 옮겨 살게 해주는 것뿐이죠. 하긴 검둥이가 워낙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코흘리개 같으니, 이주하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구슬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먹고 살만한 백인들은 흑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공원, 도서관 등을 세울 꿈에 부풀어있군요. 

그 동안 프리덤타운을 밀어버리겠다는 소문과 분위기가 있었지만, 로즈 리가 백인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했고, 로즈 리는 아빠의 일터에 모인 흑인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줘야 하는 중책을 맡습니다. 들은대로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전하자 흑인들은 흥분하면서 대책 회의에 들어갑니다. 


백인들은 백인들대로 시장을 등에 업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심한 말도 내뱉는군요. "딜런에서 삭막한 것을 제거하고 너저분한 것을 싹 없애자." 


자, 그렇다면 프리덤타운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죽어도 여기 남겠다는 그룹,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저항하겠다는 그룹, 또 다른 도시, 아예 먼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마음들이 스몰스몰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잠시 고향에 들른 로즈 리의 고모 수재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가 쓴 시 중에서 한 귀절을 읽어줍니다.


겁먹은 성도들이여 새로이 마음을 다지라

그대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저 구름은 

자비를 잔뜩 머금었으니  언젠가는 흩어져

그대들 머리에 축복을 뿌릴지니


이 와중에 KKK단(큐 클렉스 클랜) 수백 명이 프리덤타운을 행진하며 교회 앞에서 십자가를 불에 태우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잘 아시는바와 같이 kkk단은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반 로마 가톨릭교회, 기독교 근본주의, 동성애 반대 등을 표방하는 살벌한 미국의 극우 비밀 결사 단체이지요. 사태는 점점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로즈 리에게 할 일이 생겼습니다. 흑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강압적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에 역행하는 백인 여성 퍼스 선생이 로즈 리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겨주면서 프리덤타운의 구석구석을 모두 그림으로 남기라고 지시합니다. 로즈 리가 그림을 곧 잘 그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권력과 결탁한 무리가 그 뜻을 행하는 방법. 화재가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조차도 짐작할 수있는 방화로 추정되는 화마가 학교 건물을 덮칩니다. 한편 로즈 리는 스케치북을 들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군요. 아직 어린 아이이건만 본인이 안하면 안 되는 크나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구석 저 구석 열심히 그리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로즈 리가 그린 그림을 보고 누구네 집인지 단박에 알 수 있도록 충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시선과 마음과 손을 통해 그 참담한 상황을 그리게 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상황이기 때문에 그나마 세심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요. 어른들의 시선은 좌아니면 우로 치우치게 되지요. 감성보다 감정이 앞서지요. 흑인 해방 운동을 주제로 한  "어느 뜨거웠던 날들"(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 / 돌베개)에서도 세 자매가 아이들의 얼굴에 잘 새겨지지 않은 채로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섰지요. 그 엄마는 흑인 인권 운동 단체인 '흑표범당' 당원이었지요. 


결국 프리덤타운은 지도상에서 사라집니다. 거주하고 있던 흑인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맙니다. 흑인들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던 1920년대 상황입니다. 


이 책의 저자 캐럴린 마이어 이야기를 해볼까요? 1935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아마추어 배우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여덟살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답니다. 지금까지 50권이 넘는 책을 내놓았다는군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었고,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1991년 2월 28일, 텍사스 주 덴턴 도시공원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을 때 초대받아 간 후,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그 마을 이름은 '퀘이커타운'이었고, 책에선 '프리덤타운'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 당시 기록과 자료를 열심히 뒤져서 나온 작품입니다. 1992년도에 이 책을 첫 출간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군요.


"이 책에 실린 등장인물들이 겪은 숱한 비극도 프리덤타운과 딜런에 얽힌 이야기도 70년 전 텍사스 주 넨턴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썼음을 밝혀둔다."


흑인 대통령이 연임하는 미국이란 나라지만, 흑인들의 인권은 아직도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더 크지요.  빈부의 격차와 더욱 공교해지는 공권력 앞에 무력감만 느끼고 살아야 하는 우리네 서민들 역시 같은 입장인 듯 합니다. 새로운 도시 건설과 계획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려야하는 민중들의 인권은 어디서 찾아내야 할런지요. 이 땅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만이 지배하는 '폭력사회'가 만연해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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