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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논변(論辯). 책의 서두에는 이 단어가 나온다. 논변((論辯). 사물의 이치에 대해 옳고 그름을 밝혀 말함 또는 어떤 의견을 옳고 그름을 따져 자세히 말함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서인 [상서(尙書)]는 논변에 관한 기록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춘추 전국 시대로 접어든 뒤 논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그 기세가 자못 왕성한 형세로 바뀐다. 혀는 검과 같고 입술은 창과 같은 논변가들이 예리한 언사로 상대 논객과 날카롭게 맞서는 논변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격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른바 말솜씨로 천하를 주름잡는 유세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공자의 논변은 말은 쉽되 뜻은 심원하고 태도는 점잖고 우아했다. 맹자의 논변은 장쾌하고 기세가 높았지만 반드시 예리하지는 않았다. 장자의 논변은 과장하여 묘사하고 지나치게 장식하고 자세히 진술했지만 그 기세가 웅장하고 호방하여 구애됨이 없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진과 장의는 각 제후국에서 합종연횡의 유세를 펼쳐 전국 시대의 국제 정치 판도를 좌지우지했다. 괴통은 죽음을 무릅쓰고 허심탄회하게 논변했다. 해서는 바르고 곧은 절개로 논변하며 감히 황제의 역린(逆鱗,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하여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함. ≪한비자≫의 <세난편(說難編)>에서 유래)까지 건드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좌오촨동은 중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중국 감남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논리학 관련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여 뛰어난 성과를 이뤄냈다. 이 외에도 저자의 저서는 [논변에서 이기는 기술], [중국고대심리건강사상개론], [웅변절초 101], [과학자로의 길을 향해 : 과학 기술 창조 사례]등이 있다.
책은 총 4부로 편집되어 있다. 1부는 책사들이 천하를 종횡하고 논변의 백가쟁명이 일어난 춘추 전국 시대를, 2부는 백가쟁명이 끝나고 궁정 논변이 펼쳐지는 양한, 위진 남북조 시대를, 3부는 쟁신을 육성하여 궁정 논변의 황금기를 구가한 당나라, 송나라 시대를, 4부는 소수 민족 정권과 함께 논변의 격변기를 맞는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대를 담고 있다.
춘추 전국 시대에선 '노자'를 만나본다. 노자(老子)가 살던 시기는 노예제가 봉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로 사회가 극심하게 동요하는 불안한 시대였다. 지배 계급 내부에서도 분화가 발생하여 신구 세력 간의 투쟁이 격렬했다. 투쟁 수단은 흔히 찬탈, 반란, 부친 살해, 임금 시해 등이었다. 여러 해 동안 사관을 지냈던 노자는 약탈 전쟁의 잔혹함과 장기간에 걸친 백성들의 굶주림과 추위를 목도하며 '인위 없이 자연의 순리에 맡기자.'라는 무위(無爲)를 주장했다. 마땅히 그는 모든 싸움을 버리고 '절성(絶聖, 성스러운 체하는 것을 그만두기)'과 '기지(棄智, 아는 체하는 것을 버리기)'와 '절학(絶學, 배우기를 그만두기)'을 하자고 부르짖었다.
절성, 기지, 무위, 망아를 주장한 노자는 자연스럽게 논변도 찬성하지 않고 '지변(止辯, 논변 중지)'을 요구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則不知)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善者不辯 辯自不善)
- '도덕경'
비록 노자는 자신의 주장을 선양하고 남과 논변을 펼칠 때에는 조리가 있었지만, 논변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는 격렬한 반대 입장을 표방했던 셈이다.
양한, 위진 남북조 시대에선 '장석지'를 주목한다. 황제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 그의 기개를 들여다본다. 장석지는 집안이 부유해 재물로 기랑(騎郞), 즉 황제가 외출 할 때 호위를 하는 기병이 되었으나 승진도 되지 않고 알아주는 이도 없자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때 중랑장(환제 근위병을 통솔) 원앙이 황제의 측근에서 문서와 상소문을 받고 전달하는 벼슬아치인 알자(謁者)로 추천을 했다.
장석지는 태자와 태자의 동생을 불경죄로 탄핵한다던가, 황제가 자신이 죽은 후 그의 묘를 진기한 보석과 구슬을 넣어 호화롭게 꾸미겠다는 생각을 하자 '탐나는 물건이 없으면 황제의 무덤도 온전할 것'이라고 직언한다. 그 외에도 공평무사한 법 집행만이 백성들의 믿음을 얻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재벌 총수들과 그 가족들의 엄청난 비리가 드러날 때 마다 그들을 비호하기에 급급한 작금의 국내 상황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다.
당나라, 송나라 시대에 들어와선 '손석'을 만나본다. 송나라 진종은 요나라와 싸움을 벌이다 화의를 했는데, 송나라 입장에선 불평등한 조약이자 치욕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진종은 이 일 때문에 모욕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러던 차에 간신 왕흠약이 천서(天瑞, 하늘이 내리는 상서로운 조짐)사건을 벌인다. 이 때 강직한 사람 손석이 이를 진종에게 직언한다. "어리석은 신이 들은 바로는 하늘이 말을 하지도 못하는데 어찌 글을 쓰겠습니까!"
가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혹사시키고 물자를 낭비하며 제사를 지내는데만 몰두하는 진종에게 "백성은 신령의 주재자이니 밝은 군주는 먼저 백성을 안정시킨다"고 목숨을 걸고 상소한다.
뒤이어 "나라가 흥하려면 민의를 따르고, 멸망하려면 귀신의 분부를 따른다"고 직언한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선 '과감한 개혁 정치로 난세를 구한 '장거정'을 만나본다. 장거정은 강릉(江陵,지금의 호북성)사람으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해서 일곱 살에 육경의 큰 뜻에 통달했으며, 열두 살에 수재에 합격했다. 승승 장구해서 마흔 다섯 나이에 내각의 최고 수장인 수보의 자리에 오른다. 용모도 출중했지만, 심지가 굳고 담력이 크고 지모가 풍부했다. 상소문을 통해 '행정 개혁 여섯 가지'를 올린다. 그 내용은 '공론을 줄인다.', '기강을 바로 잡는다.', 조령을 중시한다.' '드러난 명성과 실제의 공이 명실상부하도록 한다.' '나라의 근본을 공고히 한다.', '군비를 바로 갖춘다.' 등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행정 개혁안이었다. 그 후 개혁 정치는 순풍에 돛을 달고, 전국적으로 토지를 측량해 탈세자가 없게 한다던가 모든 조세와 부역을 통일하는 일조편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책을 옮긴이 노만수는 이 [쟁경]을 동양의 논변을 총망라한 '동양 논술 대백과 사전'이라고 칭한다. 그 표현이 지당하다. 다섯 수레에 실어도 다 못 실을 만큼의 방대한 분량의 동양 고전 목록에서 논변에 관한 액기스만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싸워서 이긴다는 뜻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또한 깊이 생각해본다.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나의 마음에는 정도(正道)가 있는가. 그저 남과 싸우기 위한 마음의 칼날만 갈고 있지는 않은가. 남과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나의 뜻을 상대방의 마음 속에 넣어서 굴복하게 하는 일인데, 과연 나는 바로 서 있는가. 남과 싸우기 전에 나 자신과 먼저 그 싸움을 해야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남을 살피기 전에 나부터 잘 살피고, 나부터 바로 서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