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남산이 놀이터였습니다. 지금은 철책으로 보호되어 있는 공간이지만, 그 당시엔 남산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누가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집에서 한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됨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 숙제로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 곤충 채집 숙제를 하러 동무들과 어울려 가곤 했습니다. 다람쥐는 자주 보았고 가끔 족제비, 오소리나 다른 동물 등을 본 기억도 납니다.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게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인성 교육의 근본이지요. 쉽게 키울 수 있는 개나 고양이를 제외하곤 이젠 그저 TV프로그램의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농장'에서 접하는 동물들이 대부분입니다. 시골에서조차 여러가지 이유로 이 땅에서 사라지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참 복 받은 사람입니다. 환경적으로 그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렸을 때 자연과 접하며 살아보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 전원 주택에서라도 살아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꿈인 듯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글들은 아이들에겐 자연과 동물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어른들에겐 혹시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회상시켜줍니다. 여섯 편의 글들 모두에 동물이 등장합니다. 집오리, 청둥오리, 수달, 족제비, 살쾡이, 들쥐, 개 들이 주인공입니다.
집오리 네 마리 새끼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대로 자연 학습 교본이자 아이들의 마음 속에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느 날 청둥오리 세 마리가 집오리가 자라고 있던 연못에 내려 앉습니다. 집오리는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하늘을 날 수 없었지만 청둥오리는 멋지게 날아다니지요. 집오리들은 청둥오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집오리 중 한 마리엔 '검둥오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요. 청둥오리가 연못에서 놀다 날아간 날 검둥오리는 너무도 외로워서 엉엉 울고 있는데,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날아간 줄 알았던 청둥오리 한 마리가 곁에 있었습니다. 수컷 청둥오리는 암컷인 검둥오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청둥오리는 그 연못 주변에서 살게 되었지요. 청둥오리가 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검둥오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는군요. 청둥오리와 집오리가 결혼을 해서 새끼를 일곱마리나 낳았네요. 동물농장에 나올 만한 이야깁니다. 이 소식을 듣고 동물학자인 교수님까지 와서 한 달간이나 이 오리들을 관찰하고 가셨답니다. 이 오리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 두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저자가 보고 들은 야생 동물이야기라고 합니다.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에 야생 동물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합니다.
마을 근처에는 영산강의 작은 줄기인 나산강이 있고, 산세가 제법 험한 불갑산 줄기가 인접해있다보니 많은 야생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늑대랑 여우도 보았고 호랑이로 추정되는 발자국도 많이 보았다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늑대랑 여우가 거짓말 같이 사라져 버렸답니다.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사라졌겠지요. 골프장을 짓느니, 개발을 하느니 하면서 산과 들을 모두 파헤치고 강물까지도 말라붙게 만들었으니 야생 동물이 살만한 터전이 안되었던게지요. 그나마 살아 있는 녀석들은 돈만 아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놓은 덫에 목숨을 빼앗겼겠지요.
이 책은 1997년 초판이 발행되고 이번에 개정판을 내었군요. 초판을 내고 몇몇 문학잡지와 출판사에 글을 보냈으나 모두 거부 당했다고 합니다. 유명세가 붙지 않은 작가들에게 이런 사례는 워낙 흔한 일이지요. 우여 곡절끝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어린이 전문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답니다. 이번에 새로운 집(자음과 모음)에서 16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왔군요.
이 책을 읽다보니 가슴이 촉촉하고 훈훈해집니다. 동물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야생 동물이 되었던 애완 동물이 되었던 그 생명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 말고도 가슴에 담겨져 있는 정서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반려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더욱 자주, 깊이 느끼는 부분이겠지요.
저자는 초판본에서 독자층인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동물들에게도 나름대로 삶이 있다고 생각할거야.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도 알게 될거야. 이제 앞으로는 작고 하찮은 동물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겠지. 그렇게 되길 바란다."
어른들도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