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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교양강의 ㅣ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0
우치야마 도시히코 지음, 석하고전연구회 옮김 / 돌베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군자는 '학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얻지만 쪽풀보다 더 파랗고,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 순자(筍子) '권학'
학문(學問)은 나의 눈과 마음을 통해 들어와서 내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생명감은 나의 삶과 너의 삶을 함께 평안하게 만드는 영양소가 됩니다. 또한 학문을 통해 내 안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붙들어주는 내적 견고함이 얼음같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지요. 그 물은 다시 내 안의 생명력을 위해 쓰이겠지요.
조나라에서 태어난 순자(筍子)의 생애와 사적에 대해서는 전기 자료나 다른 책에 기술된 것이 있지만, 불분명한 것이나 허구도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료의 정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저자는 여러 자료를 면밀하게 파악한 결과 순자가 태어난 연대가 4세기 말인 기원전 310년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 책의 저자는 순자라는 인물이 그가 남긴 [순자]에 보이는 명석한 논의의 논리 전개 방식이나 주도 면밀한 어조등으로 추측컨대 착실하고 돈후하며 치밀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다소 소박한 개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용호상박의 중원시절 순자는 조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진나라를 거쳐 제나라로 가게 됩니다.
[사기]에 의하면 순자는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에서 세 번 좨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좨주는 장로와 수석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립대학 총장에 해당하는 국가좨주 정도는 아니고, 직하 학사들이 집회 등을 열 때, 흔히 가장 나이 많은 장로로서 상석에 모셨다는 뜻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순자의 생각 중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천인지분(天人之分)'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순자는 '하늘'의 운행은 인간과 별개의 독자적 항상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하늘은 빈부, 화복, 치란 같은 인간적, 사회적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늘의 운행에 항상성이 있다"(天行有常)는 말은 빈부, 화복, 치란 등이 전적으로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의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길(吉)'이나 '흉(凶)'도 인간의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순자의 이런 사유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순자 이전까지 있었던 자연관의 흐름, 또 순자가 살았던 환경을 참고해봅니다. 서주 초기에는 '하늘'을 최고신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주(周)의 씨족제 즉 '봉건제'를 종교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춘추시대 들어 씨족제 즉 '봉건제'가 붕괴하면서는 '하늘'에 대한 신앙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또 공자는 '하늘'을 신(神)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주와 인생을 지배하는 이법(理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맹자는 '하늘'이 인간의 재능, 운명이나 천하의 치란(治亂)을 결정하는 이법이라고 했습니다. 공자와 맹자에 비해 순자는 '하늘'의 개념을 자연의 의미로 한정하여, 이법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연현상으로서의 고유한 항상성만 인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중국 고대 사상가는 왜 '인간의 성'을 문제 삼아야만 했던 걸까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맹자나 순자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 과제를 두고 왜 그토록 에너지를 소비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주대(周代) '봉건제'가 해체되고 읍국가에서 영역국가로 이행하는 동안 일어난 격렬한 사회변동은 '봉건제'라는 사회구조에 내재한 전통적 생활양식을 붕괴시키면서 다양한 생활양식을 출현시켰다고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도덕규범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성'의 문제는 도덕규범을 유난히 중시하는 유가 사상가에 의해 주로 논의 됩니다. 아울러 그들의 인간론 즉 '성설(性說)'은 정치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인성'을 문제 삼았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인성'을 말할 때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점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자는 인간의 '성(性)'을 어떻게 봤을까요? [순자]'성악'편 첫머리에는 "인간의 성은 악하고, 선(善)은 위(爲)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는 거짓이나 가짜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학습을 통해 가능해지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순자의 글을 이렇게 번역해야 옳다고 합니다. '인간의 성은 악이고, 선함은 작위(의 결과)이다.' 마치 쓸모가 없어진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우리는 이 땅에 머무르는 동안 끊임없이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너무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 책의 저자 우치야마 도시히코는 1933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중국철학전문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합니다. 그 후 여러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다가 현재는 야마구치대학 및 교툐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제자백가에서부터 한 제국 시대 이후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철학의 다양한 양상을 연구해 왔습니다. 주요 저서로 [한비자], [중국 고대 사상사에 보이는 자연인식]등이 있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순자라는 한 인간과 그의 사상을 순자가 살았던 역사 무대 위에서 파악하고 그가 현실의 과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응답했는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중국 고대 '제자(諸子)'들의 사상의 행방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신영복 교수님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 입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해서도 고전 공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고전에 대한 독법(讀法)인데, 독법(讀法)이란 고전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 하는 참여점(entry point)의 문제라고 합니다. 고전의 원전을 대하기 전에 독법이 분명한 해설서를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신교수님이 독서에 대해 언급해주신 부분을 책갈피처럼 책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독자인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읽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