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홍대용 지음, 김태준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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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자(虛子)는 은거하며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변화와 성명(性命)의 오묘함을 연구하고 오행(五行)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깊은 뜻에 통달하여 사람의 도리를 밝히고 사물의 이치에 회통했다. 심오한 이치를 캐내어 세상일을 환히 꿰뚫은 뒤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듣고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작품에는 딱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허자는 이 글의 문답자로 설정된 실옹(實翁)의 상대 인물입니다. 허(虛)와 실(實)의 대화입니다.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허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실옹을 만나면서 그의 부족한 학문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허자는 스스로 큰 사람, 큰 바위얼굴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지혜를 가진 자들과는 더불어 큰 것을 말할 수 없고, 비속한 자들과는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 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행장을 꾸려 귀국길에 오릅니다. 허자는 의무려산(중국 서북쪽에 위치한 산입니다. 중국인들은 의무려산을 백두산, 천산(千山)과 더불어 동북 3대 명산으로 꼽습니다)에 오르는군요. 그 곳에서 실옹(實翁)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실옹지거(實翁之居)라고 써 있는 현판을 보면서 허자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내가 '허자'라고 이름 한 것은 천하의 '참'을 살피고자 한 것인데, 이 자는 '실'로 이름 했으니 천하의 '거짓'을 이기고자 함일 터이다. 허허실실은 현묘(玄妙)한 도의 진리이니 내 그의 말을 들어보리라."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다 못해 매우 깊습니다. 실학정신이 펼쳐지고, 우주론과 역사론에 이르는 철학적 내용이 중심입니다. 한편으론 이 작품이 철학소설이라고도 하지만, 문학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찾아간 것은 허자이지만, 실제 문답에선 실옹이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철학적 수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가 이룩한 동아시아 최고의 지적 성취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화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지진이 있고 산이 움직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말했다.  "땅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 혈맥과 혈기가 실로 사람의 몸과 같다. 다만 그 몸체가 크고 몸가짐이 무거워 사람의 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해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고 망령되이 길흉을 가늠하는 것이다. 사실은 물과 불, 바람의 기운이 돌아다니며 흐르다가 막히면 흔들림이 일어나고 거세지면 밀려 움직이게 만드는데,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허자가 물었다. "땅에 온천이나 짠 우물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 우주는 물의 정기이고 태양은 불의 정기이며 지구는 물과 불의 찌꺼기다. 땅은 물과 불이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다. 빙빙 돌다가 한자리에 머물러 만물로 변하는 것은 물과 불의 힘인 것이다. 온천이나 짠 우물은 물과 불이 서로 부딪쳐 생기는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주변화와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이론이 대단히 깊습니다. 지은이 홍대용(1731~1783)은 18세기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자입니다. 지금의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열두 살에 벌써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고학(古學)을 하기로 결심하고, 남양주의 석실(石室)서원으로 김원행(金元行)선생을 찾아가 10년 넘게 공부합니다. 20대에 들어 스승 곁을 떠나 고향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29살에 자명종과 혼천의 두 대를 만드는 데 여러 해를 보냅니다. 고향집에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세워 이 기계들을 설치하고 천문에 힘을 쏟습니다. 35세 때는 북경에 가서 독일 신부를 만나 담화를 하며,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선교사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가장 친했던 후배이자 친구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과 비교 했을 때 창작 동기나 저작 의도가 너무나 닮아 있어 흥미를 끈다고 합니다.  연암의 [호질(虎叱)]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통합과학자라고도 불리우는 홍대용은 철학, 문학, 역사학, 자연과학, 수학과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사상을 이룩한 분입니다. 이 [의산문답]이 그의 통합 과학적 사상을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 준 저작입니다.  학문적 자료가 빈약한 그 시대에 이렇게 깊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 큰 도전을 받습니다. 이 작품의 지은이에게 학문의 자세와 깊이를 추구하는 열정을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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