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쓴 페이스북, 芝山通信
김황식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나의 마음도 조여듭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 그러나 내 몸은 꿋꿋하게 바닥을 디디고 서 있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붙박이장처럼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의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하루의 일상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십년이 됩니다. 아마도 평생을 그리 보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간 중간 일탈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제자리에 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단상을 적어 간다는 것은 잠시 기분에 따라 몇 차례 적어 볼 수 있지만, 꾸준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느낌을 적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리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공직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느끼는 단상을 웹상에서 그 누구도 볼 수 있는 상황에 오픈 한다는 것은 여간한 마음 갖고는 시도하기 힘든 부분이지요. 그러나 그 일을 꾸준히 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 망서려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공직자들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입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찬찬히 글을 읽어가던 중 그 못된 선입견을 잠재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도 있구나. 이런 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인 김황식님은 1974년 법관 생활을 시작으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내셨습니다. 얼마전 4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셨군요. 이 책은 국무총리실 페이스북과 감사원 발간 계간지, 광주지방법원 내부 통신망에 게재했던 글을 모은 책입니다. '연필로 쓴 페이스북'이라는 책 제목이 붙은 것은 저자가 편지지에 쓴 글을 사진으로 스캔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탓입니다. 


총리 재임시 일상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 병원을 찾아 소아암 등 병마와 싸우는 어린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고 격려 하는 이야기, 제주 4.3사건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쓴 詩, 119 구조대원들을 만난 후의 단상, 안산에 있는 외국인지원센터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고인이 되신 어머니 생각, 스승의 날을 앞둔 날 파주 봉일천고교를 찾아 '1일 교사'특강을 한 이야기,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신사복 제조업체에서 맞춘 25만 원짜리 맞춤 양복 등.


책 읽기가 일상인 저에게 저자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우선 멈춤 했습니다. 김승옥, 최인호, 천상병, 이청준 작가의 이야기도 하시고 개그맨 김병만의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대화], 30년간 변호사로 근무한 존 크랠릭의 [365 Thank you]라는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존 크랠릭은 2007년 당시 그가 운영하던 로펌이 망해가고 결혼생활 파탄 등 가족관계가 엉망이 된 막다른 상황에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새해 첫날 홀로 나선 등산길에서 "네가 원하는 것들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리라"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감사할 사람과 사연을 찾아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감사편지 프로젝트'입니다. 15개월간 365통을 썼답니다. 


그 효과는 경제적, 이득, 좋은 인간관계, 마음의 평화와 신체적 건강 등 즉각적이고 다양한 것들이이었다고 합니다. 희망하던 법관까지 되었다네요. 삶 자체가 완전히 변화 된 것이지요.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일본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의 "하나님이 인간을 벌할 때는, 그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어려운 일로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벌을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뺏어버림으로써 벌을 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행복에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저자와 책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 세상 시름도 잊게 되고 조금은 행복해집니다." 짧지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특히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내 안에 암덩어리처럼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의 크기가 줄어들게 되지요.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나만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같아도 소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도 있습니다. 나를 객관화 시켜보는 과정이라고 생각듭니다. 


"경찰 아저씨들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해서는 100% 못 잡아내요. 반에서도 화장실에서도 CCTV가 안 달려 있거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괴롭힘은 주로 그런 데서 받죠." 학교 폭력 문제로 또 안타까운 소식을 접합니다. 3월 11일 경북 경산에서 고교 1년생 최모군이 23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저자도 학교 폭력 문제에 깊은 관심과 염려를 갖고 글을 연이어 올렸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적습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한 두사람이 애쓴다고 해결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세인들이 잘 모르는 법조계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서의 고뇌가 실려 있는 글들을 봅니다. "법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따지는 문제는 쉽지 아니하여,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혜와 실력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법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법률을 위한 것이어서는 아니 되며, 또한 법률가가 법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후배 법관들에게 이런 당부의 글을 남기셨군요.

"좋은 법률가는 가끔 법률을 짐짓 잊어버려야 한다"는 법언(?)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음미해보곤 합니다. 법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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