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공간 - 남자는 가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이문희.박정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다보니, 최근에 읽은 [내면 산책자의 시간](김명인 / 돌베개)에 실린 글이 떠올랐습니다. "사치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사람에겐 가끔 격별과 유적(流謫)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급적 먼 곳으로 가서 생의 짐들을 내려놓고  홀로 눈뜨고 홀로 밥 해 먹고 홀로 설거지하고  홀로 빨래하고 홀로 걷고 홀로 돌아와 문 열고 들어가서 홀로 불을 켜고 홀로 책 읽고 홀로 생각하고 홀로 잠드는 그런 시간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다른 모든 것들은 저 소실점 부근에 남겨 두고 홀로 자기의 거대한 그림자와 맞서는 시간이. 너는 누구냐 무엇하러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느냐 하고 묻는 절대의 시간이..."


'홀로'라는 말이 무척 많이 나오지요?  그리고 맨처음 나오는 '사치스러운 이야기'라는 부분이 결코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치가 아닌 '필수'의 시간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너나 없이 서로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안 그러시다구요? 매일 매일이 Oh~ Happy Day시라구요? 아, 그렇다면 제가 졌습니다. 당신이 부러우니까요.


이 책은 두 사람의 상담심리학 전공자가 공저로 낸 책입니다. 타이틀은 [남자의 공간]이라고 되어 있지만, 어찌 남자들에게만 공간이 필요하겠습니까. 단지 출판사에서 중년의 남자들을 타겟으로 하다보니 제목이 그리 붙은 것이지요. 우선은 40대 위 아래 학년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구요. 이 학생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는 여인들도 함께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남자, 홀로 골방에 들어가다.  남자가 마주해야 할 여섯 가지. 그리고  남자의 눈물은 아름답다, 골방을 나서며..입니다. 우선 '골방'이라는 공간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공간이 가능하다면 만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요. 우선 집 안을 둘러보시지요. 안방은 아이들에겐 엄마방이고, 아이들방은 당연히 자기네들 방이고, 아빠 방은요? 거실 소파? 이렇게 놓고 보면 전 그래도 행복한 축에 속하겠군요. 작지만 내 서재가 따로 있으니까 그냥 감지덕지 제 '골방'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저자들은 현실적으로 내'골방'을 만들지 못할 경우엔 '내면의 골방'이라도 만들기를 바라고 있군요. 


요즘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해결을 도와주는 '심리 상담실'이 때 아닌 호황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심리학 전공자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합니다. 2012년에 힐링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잡았지요. 힐링 음악, 음식, 체조 또는 운동, 서적 등등. 이미 약 10년 전부터 유망 분야로 내다보이긴 했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이 추세가 이어지리라 생각이 듭니다. 힐링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의 내적 삶이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책은 실제로 학교와 직장에서 상담을 주고 받았던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서 나와 당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단지 아직 드러내놓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남자들은 마음 속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심적 존재감의 부재가 느껴진다. 상담실에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부인이 많지만 정작 남편은 상담실에 나오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데, 아버지는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뭐 어쩌라고?' 식이다."


저자(이하 단수로 칭합니다)는 이 책은 자기 치유서라고 합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데 우선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단연 '드러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지금 당장 나를 드러내 놓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나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으라는 이야깁니다. 곧 '자기 직면'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 심리학을 전공 안했지만, 이 어디서는 사실 어렸을 때 기억부터 더듬어 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직 내 안에 응어리진 부분, 풀리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자 역시 고통의 뿌리를 어린 시절의 아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안고 끙끙거리는 마음 속 고통의 원인을 한두 마디로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을 얻지 못해 일어나는 화'로 설명 할 수 있다. 충분한 관심과   보살핌이 부족했던 사람은 평생을 '사랑을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타이틀만 갖고는 선뜻 이해가 되시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자가 권유하는 골방 작업(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5단계)을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Step 1 : 골방으로 들어가라.

Step 2 : 골방에서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라.

Step 3 : 골방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하라.

Step 4 : 골방에서 자신의 깊은 핵심감정을 깨달아라.

Step 5 : 골방에서 깨달은 바를 삶의 현장에서 연습하라.


나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함을 가늠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집착은 충족되지 못하는 밑빠진 독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괴로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집착은 나에 대한 생각, 충족되지 못한 부분으로 꽉 차 있는 심리적 혼란 상태입니다. 몰입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최고의 몰입은 바로 집착이 없어진 상태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융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근본적으로 전체가 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융이 언급하는 전체성이란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을 뜻합니다. 아울러 융은 정신적인 문제는 자기로부터의 소외와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전체로서의 자기로 살지 못하고 의식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며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마음 깊은 곳의 무의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분열되어 대립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융은 '개성화(Individuation)'가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개성화란 쉽게 말해 '자기답게 되는 것(Coming to Selfhood)'을 뜻합니다.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이 조화로운 균형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책의 키워드인 '골방'. 현실의 공간이든, 내 의식 한켠에 만들어주는 무형의 공간이든 간에 그 공간은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 문제의 원인을 '네탓'으로 돌리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보듬어 안는 시간입니다. 멈추면 쓰러질 것 같은 일상의 바퀴를 잠시 정지시키고 찬찬히 둘러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골방'에 너무 오래 머무르진 마십시다. 시간이 길어지다보면 좋은 생각이 아니라 잡념과 탄식이 그 공간을 채워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삶의 현장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요.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성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탄력성'이라는 개념이다. 어려움과 고통이 가득한 절망적인 상황을 똑같이 경험해도 어떤 사람은 건강한 방법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고통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의 특성을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탄력성(Resilience)'이다."



 

도종환 시인의 詩를 함께 나누면서 리뷰를 마무리 하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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