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철학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게오르크 W. F. 헤겔 지음, 서정혁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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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철학’ 그리고 ‘철학적 세계사’. 이 둘은 같은 말이며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세계사에서 철학적 요소를 찾아보는 과정이고, 후자는 세계사를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헤겔은 이 책에서 이 둘을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헤겔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보편적 세계사 자체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세계사에 관한 보편적 반성이 아니라, 세계역사 자체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덧붙이면 “세계사는 오직 정신의 자유라는 개념으로부터 비롯되는 필연적 전개”이며 “보편 정신의 펼침과 실현”이라고 주장합니다. 


헤겔에게 「세계사」는 깊은 숙제였던 듯합니다. 그의 다른 저서 《법철학강요》에서 역시 세계사 전개의 네 가지 원리와 그에 상응하는 네 가지 단계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신이 최초로 직접 현현된 상태에서 실체적 정신과 일체화한 정신의 형태이며, 둘째는 실체적 정신이 앎의 단계로 들어서서 정신이 적극적이고 충실한 내용을 갖춤으로써 실체적 정신의 생동하는 형식으로서의 자각적 존재, 즉 아름다운 인륜적 개체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지적인 활동을 하는 자각적 존재가 객관세계와 무한히 대립하는 모습을 띠는 것이며, 넷째는 이 대립이 반전해서 정신이 스스로의 내면으로 진리와 구체적인 본질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객관세계 속에서 편안히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동양세계, 그리스 세계, 로마 세계, 게르만 세계라는 역사적 발전 단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서술된다고 합니다.


헤겔은 근원적 역사에서 전설, 민요, 전승되어 온 것들과 시가(詩歌)들은 제외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같은 전설, 전승되어 온 것들은 아직도 흐릿한 방식들이며, 의식의 측면에서 아직도 흐릿한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흐릿한 의식을 지닌 민족들이나 그들의 흐릿한 역사는 [근원적 역사의] 대상이 아니며, 적어도 철학적인 보편적 세계사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고 합니다. 철학적인 보편적 세계사는 역사 속에서 이념의 인식을 목적으로 하며, 자신의 원리를 의식하면서 자신들이 어떠하며 무엇을 행하는 가를 알 수 있는 민족들의 정신들로 이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제대로 된 역사는 발생한 것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하며, 명료한 의식으로서 기억은 구체적으로 ‘자유의 실현’ 으로서 국가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고, 기억이 가능함으로써 비로소 역사 기술, 즉 역사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사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국가가 없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수많은 민족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싫건 좋건 세계사의 주역으로 기억되는 민족은 언제나 강성한 국가를 이루어 그 시대를 지배한 민족입니다. 헤겔은 이러한 민족을 세계정신의 구현으로서 ‘시대정신’이라 부릅니다. 흐릿한 역사의 예로 인도를 들고 있습니다. 인도는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진 민족이고, 언어 등에서 게르만 민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도 인정되지만, 그들이 역사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인도에서는 카스트제도와 같이 자연적으로 확정된 질서의 항구성이 지닌 ‘부자유’로 인해, 어떤 진보나 발전의 궁극목적도 부재하며 ‘기억’의 대상도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헤이든 화이트에 의하면 헤겔이 《역사철학 강의》에서보다도 《백과전서》나 《미학강의》를 통해서 더 풍부하게 역사 서술과 역사 전반에 관한 문제를(역사철학과는 다른 의미에서)다루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거의 주목된바가 없다고 합니다. 《역사철학 강의》에서 정립하려고 했던 역사‘과학’은, 그의 개념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실제로 ‘반성적’ 역사가들이 형성한 업적 위에서 이루어진 후대의 역사의식이나 철학적 성찰의 산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역사 서술 자체에 관한 이론을 정립했는데, 그는 역사 서술을 일종의 언어 예술로 보았으므로, 미의식에 예속된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헤겔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며 세계사도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왔고, 세계사는 좀 더 나은 상태, 완전한 상태를 향한 부단한 발전의 과정이며, 인간 속에는 ‘좀 더 좋고 완전한 것을 향한 변화 능력’이, 다시 말해 ‘완전성을 향한 추동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역사발전이 그냥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도 고통스러운 투쟁과 노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과연 사실에 입각해서 쓰인 역사인가?를 확인해봐야겠지요. 헤겔은 이런 경우 전문적인 역사가에게 현혹되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독일의 역사가들 중에도 역사에 선험적인 날조를 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즉, 최초에 가장 오래된 한 민족이 있었고, 이 민족은 직접 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완전한 통찰력과 지혜로 살았고, 모든 자연법칙과 정신적 진리를 꿰뚫어 아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는 이런저런 성직자 무리들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좀 더 특별한 것을 언급하자면, 로마의 영웅서사시가 있었다는 것 등등[이 그러한 날조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헤겔의 역사관은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단순한 숙명론이나 낙관적 역사관이 아니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헤겔의 역사관의 밑바탕에는 ‘냉철한 현실주의’가 깔려 있고, 헤겔은 인간이 역사에서 실현해야 할 자유라는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주체적인 인간의 노력과 투쟁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헤겔(1770~1831)은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출생했습니다.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정신현상학》, 《논리학》,《엔치클로페디》  《법철학 강요》, 《미학강의》, 《세계사의 철학 강의》, 《종교철학 강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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