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8
김부식 지음, 김아리 엮음 / 돌베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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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문자, 기록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문자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기록이 남아 있을까. 그리고 문자가 있다한들 기록할 사람이 없었다면 역시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오늘 남기는 글과 생각들의 수명이 얼마나 갈까요. SNS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비록 짧은 글에나마 남기지만 그 수명이 얼마나 갈까요. 흘러가는 물처럼, 흩어지는 바람처럼 사라져갈 말과 생각들이 허다합니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의 정치와 외교, 사회 제도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역사서이자 가장 오래된 우리의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없이 우리 역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요즘 일본을 보면 괘씸하면서도 안쓰럽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과 계속 부딪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지형이 점점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불안감 때문에 기왕지사 물에서 놀아야하니 바다라도 넓히자는 심산인가요. 우리와 부딪는 중국의 욕심도 하늘을 찌릅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역사를 자기네 마음대로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고구려 유적을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행위는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고구려를 중국의 일개 지방 정권으로 정의하고 중국 영토에 있는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관심조차도 없어지게 됩니다.
 
『삼국사기』는 총 50권으로, 본기(本紀), 연표(年表), 지(志), 열전(列傳)으로 구성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입니다. 방대한 양의 『삼국사기』를 다 읽는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중요부분만 발췌한 서적만이라도 읽는다면 그래도 우리나라 국사에 대한 큰 밑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침 대선을 앞두고 들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누구’를 앞세워 이판에서 득세(得勢)해보자고 난립니다. 그 ‘누구’는 지금까지 치세(治世)를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참 민주사회, 복지사회를 만들어보겠다고 공언(空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정치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삼국사기』나 읽어봤나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는 앞서 지나간 정치가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잘했던 못했던 그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145년에 완성된 이 책은 1000년의 역사를 담았고, 그 이후 천 년 동안 전하고 읽혀지고 있습니다. 스테디셀러인 성경에도 위로는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한 왕의 이름이 정확하게 실려 있고, 말도 지지리도 안 듣고 포악한 정치를 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왕들이 부지기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이런 책을 통해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로 삼을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실린 왕들의 이야기 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한심한 왕은 백제 동성왕입니다.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 되었는데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자는 관리들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궁궐 안에 쓸데없이 높은 건물만 짓고, 연못을 파선 기이한 새들만 기르고 그야 말로 놀고 있습니다.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간언했으나 왕은 답하지 않고, 또다시 귀찮게 할까봐 아예 궁궐문을 닫아버렸답니다. 나 원 참. 아니 누가 이런 사람을 왕으로 만들었어요? 하긴 이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왕’이 대부분이지요. 장자(莊子)에는 “자기 잘못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고, 충고를 들으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못돼 삐뚤어졌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딱 맞는 사람이 동성왕입니다.
 
 
그런가하면 문무왕은 참으로 성왕(聖王)입니다. 왕의 유언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나 자신은 풍상을 무릅쓰고 다니느라 결국 고질병이 생겼고, 정치와 교화를 위해 근심하며 애쓰다보니 병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도 이름은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니 홀연히 저 세상으로 돌아간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 종묘사직의 주인은 잠시라도 비워서는 안 되니 태자는 관 앞에서 즉시 왕위를 계승하라. (.......) 옛날 천하를 다스리던 영웅도 결국 한 무더기 흙이 되었다. 나무꾼과 목동이 그 흙무덤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 굴을 판다. 그러니 무덤을 호화롭게 만들어 봐야 공연히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엔 오점을 남길 뿐이며, 공연히 사람들만 힘들게 하고 죽은 사람의 넋은 구제하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슬프기 그지없다. 이러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바가 아니다. 내가 죽으면 열흘 후에 곧 창고 문 바깥뜰에서 서역(西域)의 방식대로 화장하라. 상복의 격식은 정해진 예가 있는 것이지만, 장례 절차는 검소하게 하도록 힘써라. 변방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과 주, 군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고, 율령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개혁하라. 나의 이러한 뜻을 사방에 알려 두루 알게 하고, 담당자는 시행하라.”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렀던 자리도 아름답다고 하지요.
 
삼국시대는 전쟁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먹고 먹히고, 쫒고 쫒기는 역사입니다. 자연적으로 이름 난 장수들의 등장이 많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절로 가슴을 뛰게 합니다. 충절과 용맹이 그들의 타이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시라고도 알려져 있는 을지문덕 장군의 시는 참으로 멋집니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고구려에선 을지문덕이 수나라 진영에 거짓 항복을 하러갑니다. 그러나 짐짓 그들의 진영을 살펴보기 위함이 컸습니다. 수나라 왕은 밀지를 전해 만약 고구려왕이나 을지문덕을 만나면 붙잡으라고 했지만 한 고위관리가 그를 풀어줍니다. 뒤늦게 두 장군이 의논할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다시 잡으려고 쫒아갔지만 뒤도 안돌아보고 고구려로 돌아갑니다. 수나라 군사들은 살수(薩水 : 평안북도 서남부를 흐르는 옛 이름)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산을 의지해 진을 쳤는데,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다음과 같은 詩를 보냈습니다.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꿰뚫었고
기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
전투에 이긴 공 이미 드높으니
만족하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어르고 뺨친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삼국사기』에 대해선 말도 많지요. 사대적이다. 신라 중심사관이다 등이 주요 이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 임금과 김부식 어르신에게 감사할 일입니다. 이 두 분이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알’(卵) 수준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참 소중한 기록입니다.
 
"우리 것 먼저 알고, 남의 것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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