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우주 -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우석영 지음 / 궁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고교시절을 돌아보며 잊히지 않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국민윤리 과목을 맡고 계셨지요. 한자 교육을 자청해서 맡아서 해주실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달인들이 포진해 있는 문교부(교육인적자원부 전신)에선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한자를 없애느니, 마느니 설왕설래(說往說來) 할 무렵이었습니다. 결국 제 3년 후배들부터는 한자의 스트레스에서 일순간 벗어났지요.

 

그 선생님이 텍스트로 삼아 주신 책은 을유문고판 「명심보감(明心寶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책을 읽을 때마다 한자를 모르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것이다. 만화책이나 들여다보고 살 것 같으면 한자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서적은 한자를 모르고는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선생님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한자 공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명심보감은 중학교 때부터 가방에 넣어갖고 다니며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봤던 책이기도 했기에, 그 선생님 시간이 많이 기다려졌지요.

 

선생님의 열성적인(?) 지도 덕분에 우리는 한자 공부에 게으름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기 5분전쯤..쪽지 시험을 치룹니다.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다른 친구들도 한자의 음과 뜻은 그럭저럭 두드려 맞추는데 거꾸로 한자를 쓰라고 하면 거의 그림 수준이 되고 맙니다. 한자 이야기를 쓰다 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님들은 알고 계시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간지 1면 톱기사는 대통령 자리였지요. 이승만 정권 때 1면 톱기사에 “이승만 大統領 ~ ”해야 하는데 대(大)자에 점 하나 떡하니 올라앉아서 “이승만 견통령(犬統領)”이 되었지요. 지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초상이 반으로 접을 때 지엄하신(?) 얼굴이 구겨진다 해서 초상을 한 쪽으로 옮긴 그 시절이었는데, 개통령을 만들었으니, 그 신문의 편집자와 식자(植字)담당은 얼마나 혼이 났을까 짐작되시지요?

 

이런..한자와 관련된 책이야기를 리뷰 올려드리다 보니 잠시 옛 기억이 스몰스몰 올라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고교시절에 한자를 배운 것이 참으로 행운이었습니다. 한의대를 입학한 제 후배는 일부러 한자 학원을 다니면서 별도 공부를 해야 했으니 그 당시 문교부 관계자들은 한학자들의 밥줄을 당겼다 풀었다 한 셈이지요.

 

이쯤에서 저자 소개를 간략히 하고 나서 책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자 우석영은 연구보다는 시서화 창작(즉, 놀이)을 더 좋아하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이자 문필가로 적혀있습니다. 국내외 여러 대학, 대학원을 유랑하며 사회학, 문학, 철학(세부전공:창조성의 존재론)분야의 내공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물리적, 심리적 시간으로 학교보다는 산중에서, 도서관에서, 서재에서 홀로 연마한 독학자에 가깝다고 합니다. 특히 이 대목에 맘에 듭니다. [독학]. [독학자]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에 모인 글들은 본시 글쓴이가 노트에 적어본 일기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출간을 전제로 집필한 것들이 아니라 일기 노트에 ‘그냥 한번 되는 대로 적어본 것 들’이랍니다. 그렇다고 잡기(雜記)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에세이가 아니냐 하실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일기를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다.”

저자는 덧붙여 이 글들이 새벽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글쓴이와 새벽과의 관계가 이 글들의 탄생의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냐고 물으시면, 한자어· 한글의 옛 뜻풀이, 말의 소리를 담은 책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끝내기엔 좀 아쉽습니다. 그 이유는 깊이 있는 인문철학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한자(漢字)에 알레르기 사인이 있으시던가, 아님 그 반대이시든 상관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단지, 단순히 한자 관련서적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인문철학서 한권을 마스터 한다는 심호흡이 필요합니다. 전체쪽수는 색인 포함 760쪽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된 110여개의 한자풀이가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자도 그리 이야기하네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이 사색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정(精). 쓿은 쌀알 정. 낱말 精은 파릇파릇(靑) 돋아난(벼, 밀, 보리 따위의) 곡식의 아람(米)을 그린 것이다.(....)고대 중국인에게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쌀알의 제1상징이란 사람 생명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근원 물질로서의 상징이다. 精은 정령(精靈), 혼령(魂靈)이기도 하다. 정신(精神)이라는 말에 쓰이는 낱말 역시 精이다. 정신, 靈의 다른 말은 얼이다. (......)

精은 또한 깊은 것, 세밀한 것, 깊고 세밀한 것에 도달하려 함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박(精博)은 지식의 깊고 넓음이요, 정려(精慮)는 깊이 생각함이요, 정해(精解)는 깊고 정밀하고 면밀한 해석이다. 정연(精姸)은 정묘하고 자세한 아름다움이요, 정련(精練)은 세밀히 단련함이요, 정사(精舍)는 (자세하고 깊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 혹은 불도(佛道)를 닦는 장소인 것이다.

 

 

독(讀). 읽다. 읽기를 지시하는 讀의 원형적 뜻은 ‘비의를 풀어 이해함’이다. 이를 텍스트에 적용해보면 텍스트를 읽는 일이란 그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실체 또는 속뜻을 이해함이다. (....) 읽기(reading) 는 봄(seeing) 이라는 지각행위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동시에 봄 이상의 것이 관련된다. 그 이상의 것은 물론 정신의 활동인데 사르트르는 이 활동을 ‘창조(creation)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읽기는 시지각(視知覺)과 연동되며 시지각과 공속한다는 속성보다는 창조라는 속성이야말로 ‘읽기’라는 활동의 비밀을 푸는 핵심 열쇠가 된다. (......)

바슐라르는 독자가 텍스트(또는 작가)를 만나며 느끼는 공감을 두 종류로 나누어 깊은 영혼의 차원까지 건드리는 공감 작용을 울림(reverberation)으로, 그렇지 못하고 표층에 닿고 마는 것을 반향(resonance)으로 개념화한다. 말할 것도 없이 독서-창조의 기쁨을 강렬히 일으키는 것은 앞엣 종류의 공감 작용이다. 내가 늘 생각해왔던 것, 내가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어렴풋이나마 느껴왔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 그러한 것이 보다 명징하고 아름다운 글의 꼴로 내가 모르는 남에 의해 구체화된 것을 나는 홀연 발견한다. 그러나 이 발견은 그저 펜이나 인형을 거실에서 발견해내는 것과는 다른 발견이며, 오히려 우리가 ’창조‘라 부르는 과정과 동시에 발생되는 발견인 것이다.

 

P.S : 아전인수(我田引水). 바슐라르가 이야기한 부분. 책을 읽으며 느끼는 공감에서 나아가 리뷰를 쓰는 것은 역시 한 ‘울림’에서 텍스트의 작가와 창조의 순간에 함께 서게 됩니다. 어느덧 독자이자 창조저인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됨’을 이룩합니다. 그것은 본디 나 아니었던 것과의 자발적이고 순종적이고 절대적인 하나 됨이니, 이러한 독서 경험은 사랑의 경험과 유사할 것입니다.

 

바슐라르에게 묻습니다.

리뷰를 쓰는 것도 작가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는 것 맞지요?

맞답니다. 그러니까 딴 생각 말고 열심히 읽고 쓸 일입니다.

우리는 창조 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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