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맙다 - 상담가 폴라 다시의 감성 에세이
폴라 다시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에 돌을 하나씩 얹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돌의 크기만 다를 뿐이지요. 겉으로는 매우 행복해 보이는 사람.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의 돌은 자라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삶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 돌을 내려놓는 방법을 몰라서 못 내려놓고, 내려놓을 자리를 못 찾아서 가슴에 담고 다닙니다.

 

화병은 울화병이라고도 합니다.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 입니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1996년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습니다. 영어로 ‘hwa-byung’입니다.

 

심리학자 홀메스(Holmes)와 라헤(Rahe)는 스트레스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스트레스란 삶의 변화로 흔들린 정신 상태, 불안 상태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다.”

 

이 두 사람이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했습니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100, 이혼 73, 교도소행 63, 법적인 피해(또는 소송)11, 질병과 부상 53, 은퇴 43, 임신 40, 성문제 39, 직업전환 36, 상사와의 알력 23, 이사 30 등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유동적입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분명한 것은 배우자나 자녀, 가족의 죽음이 상위권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친김에 스트레스 이야기 조금 더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가지 일만 겪으라는 법이 없지요. 일이 터지면 줄줄이 사탕입니다. 사람이 감당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200이 넘으면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300이 넘으면 정신줄을 놓기도 합니다. 요즘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공황장애’도 결국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입니다. 때로는 지나친 욕심과 계획이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책의 저자인 폴라 다시. 불의의 교통사고(음주 운전자에 의한)로 사랑하는 남편과 딸(21개월 된)을 잃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리라고 생각이듭니다. 더군다나 임신 3개월의 몸.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상황. 몸과 마음을 추스를 힘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일어섰습니다. 아니 이미 일어서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을 붙잡아 주고 힘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알기로 저자의 3번째 책입니다. 「이별수업」과 「마음여행」에 이어 역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앞의 두 책은 제목만 눈에 익을 뿐 아직 못 봤습니다. 조만간에 읽어볼 예정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별에 관한 강연과 상담은 물론, 영성지도자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책의 원제는 A New set of Eyes: Encountering the Hidden God입니다.

 

Encountering은 만남, 해후, 조우(遭遇)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일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또 어떤 일을 부딪게 될 때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저자는 우리가 고통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함께 고민합니다. 고통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문제는 고통에 어떻게 맞서느냐입니다. 그러나 사실 맞선다는 표현도 바람직하진 못합니다. 고통도 내 삶의 일부분입니다. 내가 고통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안 만나지는 것도 아닙니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지요. 그러나 몸과 마음의 질병은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보이던 사람이 암 진단을 받고 며칠 상간에 피골이 상접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망과 비탄에 잠겨 주저앉아 있느냐.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느냐.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지요.

 

저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으로 고통에 대해, 사랑에 대해,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의 원제에 God이 들어감으로 비껴 지나갈 독자층을 의식해서 「세상에 고맙다」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세상이 뭔가요? 곧 사람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고맙다는 말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이야기지요. 혹자는 고마운 사람들은 커녕 내 주변엔 웬수들만 잔뜩 몰려 있다고 탓하겠지만 말입니다. 원수는 밖에 있고, 웬수는 집안에 있다던가요.

 

시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는 없습니다.

시련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졌습니다.

매우 위대한, 아니 가장 위대한 존재의

이미지를 본떠 만들어진 우리 자신.

 

 

저자가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친구에게 조언자를 소개받았습니다. 그의 현명한 조언을 기다리며 그에게 그동안 그녀가 겪은 고통과 시련을 낱낱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가 올랐던 산, 흘렸던 눈물, 참아야 했던 가슴 찢어지는 아픔 등. 그리고 그녀는 진정한 위로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인지상정이지요.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요?” 그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황당한 말을 들었으나, 폴라 다시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기도 합니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었답니다.

“그곳에서 방황하지 마시오. 그건 당신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경험일 뿐입니다. 당신은 그 경험을 이겨낸 사람이 아닙니까. 이젠 당신 자신을 알아나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대부분 극복의 힘을 외부에서 찾아내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소중한 힘. 다이너마이트 같은 힘은 나의 내부에 있습니다. 폴라 다시가 내게 보내 준 편지라고 생각하고 찬찬히 읽다보면 내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일어나는 반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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