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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2011년 10월 6일.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한 주택 앞에 취재진들이 몰려있었다. 2005년부터 외신 등이 꼽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고 있는 고은 시인님의 집 앞이다. 이날 고 시인의 주택 앞에 모여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 낭보를 기대하던 주민 10여명은 스웨덴 시인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가 수상했다는 소식에 허망한 표정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녕 우리에게 노벨문학상은 먼 그대인가? 이제는 탈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 벌써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나?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이미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노벨 문학상은 “이상(理想)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 수여하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해마다 전 세계의 작가 중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때때로 작가 개인의 작품 중 주목할 만한 특정 작품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에서 “기여”란 한 작가가 쓴 작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노벨 문학상은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여한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노벨 문학상이 대중들에 마음에 크게 어필되지 않는듯하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쯤? 노벨 문학상이 수상되면 각 출판사마다 매우 분주했다. 요행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미리(완전 운이다)번역, 출간해놨던 출판사는 대박이다. 하긴 나도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던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이 책이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도록 하는 힌트 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스웨덴 아카데미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수상자들의 일상을 잠시라도 들여다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두 사람이 저지른 대형사고(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는 “모든 것은 우연히 시작되었다.”로 열린다. 사진기자인 킴 만레사가 그의 사진집을 출간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헌사를 받아 올수 있냐고 글쓴이인 사비 아옌에게 요청을 하면서부터이다. 생각이 발전해서 기왕이면 이 기회에 인터뷰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로 의기가 투합 되었고, 두 사람은 작가들 섭외에 들어갔다. 이른바 ‘호텔 인터뷰(신간이 나올 때마다 호텔에서 이뤄지는 극히 짧은 시간의 인터뷰)’같은 방식은 피하기로 했다. 일종의 밀착취재, 동행취재인 셈이다.
노벨문학상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책을 읽으면서, 16인의 세계적인 문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연 노벨문학상이 그들의 삶에,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에 주목을 했다. 긍정적인 면이라면 경제사정이다. 상금이 자그마치 120만 달러이다. 그 상금이 그들의 삶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직, 간접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명예와 함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고 환대해주는 분위기는 그들의 삶에 큰 활력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도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 그들의 일상을 세상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화통은 수없이 울려대고, 찾아오는 사람은 시도 때도 없다. 차분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 대부분 그런 휩쓸림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 위의 오에 겐자부로와 같이 대응하고 있다. 1992년 수상자인 데릭 월콧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상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당시 나는 상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었어요. 노벨상을 받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게 자신의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다행히 나는 세인트루이스에 살고 있어서 나에게 필요한 휴식과 작업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 앞에 앉을 때마다, 누구든 과거를 비우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그들의 작품, 나아가서 수상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거의 대부분이 문학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문화 너머에 있는 일들과 담을 쌓은 작가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책 제목을 [16인의 반란자들]이라고 정한 듯싶다. 반란자들이라고 이름 붙이는 점에 대해 16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언급이 없지만, 그들도 그냥 웃어넘겼을 법하다. 그들의 일상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위험하다.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는 1994년 한 통합주의자의 테러를 받고 목에 치명적인 자상을 입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귀가 닫혔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삶과 문학이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노벨상을 받기 이전부터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본적인 생활마저 할 수 없을 때 에도 절대 권력과 불의에 저항했다. 그래서 제법 많은 수상자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던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는 그중 매우 가벼운 편에 속한다. 일본천황이 문화의 날에 모범적으로 문화적 여정을 걸어온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는데, 그 상을 수여하겠다고 하자 거부했다. 모두가 탐을 내는 상이다. 부상으로 평생연금이 주어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천황을 신으로 받드는 강력한 민족주의의 틀 속에서 살아왔는데, 나는 그게 두려워요. 그것은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놓이니까요. 내가 그 상을 거부했던 것은 내 작품을 인정하고 나를 수상자로 선정한 천황의 권능을 거부했던 거요.”
그가 천황의 상을 거부하자 극우파와 우파 그룹들이 ‘당신은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지금도 그들은 겁이 없다. 글만 쓰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 인류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무언가 기여할 일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다. 그들의 평균연령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경로 우대그룹을 훌쩍 넘어섰다.
중국 문화혁명의 희생자이자 정치적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 싱젠이 한 말은 위의 그룹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권력이 있으면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은 다수에 의해 선택되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웃기지도 않는 결과일 뿐이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정확하게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나의 손을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책에는 각 작가의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여럿 실려 있다. 손은 그들의 정신이 배어나온 출구이다. 나의 손을 들여다보며 내게 하는 말.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무언가 후손을 위한 정신적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