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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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듭니다. 이제까지 이 책의 제목이 IQ 84인줄 알았습니다. Q 뒤에 숫자가 붙으니까 당연히 IQ 려니 했는데, 이제 보니 「1Q 84」입니다. 이 몹쓸 나의 고정 관념을 탓합니다. I 가 아니고, 1(one)이었습니다.

 

소설의 한 쪽 기둥에 서 있는 아오마메는 자기 자신의 의식세계와 주위 환경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중 문제가 있는 것은 아오마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라고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모종의 힘이 작용하여 내 주위의 세계 자체가 변경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의식에 뭔가 결함이나 왜곡이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의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소멸하고, 혹은 퇴장하고, 다른 세계가 거기에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레일 포인트가 전환되는 것처럼. 즉, 지금 이곳에 있는 내 의식은 원래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세계 그 자체는 이미 다른 것으로 변해 버렸다. (……)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이 ‘1Q84'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Vol.1 p.239,240)

 

이러한 변화와 상태는 Parallel World입니다. 원래의 세계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사차원 세계’나 ‘외계’ 개념과는 달리 우리가 사는 우주와 동일한 차원. ‘지금의 현실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현실이 어딘가 존재 한다’는 개념입니다. SF소설 등에서 등장인물이 어느 겨를에 또 다른 현실로 헤매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병행세계, 평행세계라고도 합니다. 이 패럴렐 월드가 이 소설의 플롯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여럿 있겠지만,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저자에게 모티브를 준 듯합니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인 ‘1984년’에는 빅브라더가 주요 인물이지요. 오웰은 《동물농장》처럼 이 소설의 배경 역시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차용했습니다. 빅 브라더는 스탈린이고 골드슈타인(Goldstein)은 트로츠키로 표현됩니다. 이젠 빅브라더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눈에 안 보이는 큰 손이 있고, 마치 내 이마에 바코드가 붙은 듯 나의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고 있는 현실이 빅브라더의 모습이 아니겠는지요. 하루키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존재를 탄생시키면서 ‘리틀 피플’ 이라고 명명합니다. 빅브라더는 사람들 눈에 띄기 쉽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인 리틀 피플을 탄생시킨 것 같습니다. 리플 피플에 대한 것이 상세하게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소설의 소재인 ‘공기 번데기’와 함께 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두 신흥종교가 등장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니 하루키의 또 다른 저서 『언더그라운드』의 소재가 된「옴 진리교」가 오버랩 됩니다. 옴 진리교는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에 맹독성 사린가스를 살포해서 13명이 죽고, 6300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중상자 중에서 아직도 그 충격으로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코뮌 형태로 시작된 공동체 ‘여명’(나중에 ‘선구’로 바뀜. 소설에서 설정된 가상의 종교 인듯)과 ‘증인회’(여호와의 증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신흥종교입니다. ‘옴 진리교’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스트랄 바디아웃(Astral Body-out). 즉, 유체이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의 육체를 빠져나가는 현상으로 체외이탈(OBE :Out-of-body experience)이라고도 합니다. 유체이탈 하면 스웨덴보르그(스웨덴.1688~1772)가 떠오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스웨덴보르그를 '전무후무한 불가사의한 사람'으로 불렀는데,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이 유체이탈로 보고 온 영계의 모습을 글로 남겼으며, 런던에 앉아서 그 시간에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대화재를 생생히 주위 사람들에게 묘사하기도 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책에선 신비소녀 후카에리와 후카에리의 아버지 후카다를 통해서 아스트랄 바디아웃이 표현되고, ‘NHK'의 수금원이었던 덴고의 아버지가 요양원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후카에리가 은신해 있던 덴고의 집과 역시 후카다를 처치한 후 몸을 피해 있던 아오마메에게 나타납니다. 후카에리를 통해 아오마메가 덴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설정 등도 역시 아스트랄 바디아웃으로 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등장인물들의 유체이탈이 그려집니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인 후카다를 다른 세상에 보내기 직전에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 따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아.”

 

소설은 느와르적인 것과 종교적인 면이 뒤섞이면서 에로틱하기까지 합니다. 책은 제법 두껍습니다. 1,2,3권 합해서 약 2,000쪽입니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소설의 두 기둥이 되어서 홀수, 짝수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마지막 31장은 ‘덴고와 아오마메’로 좀 썰렁한 듯 해피 엔딩 입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글의 템포가 빠른지라 진도가 잘 나가는 편이네요. 탄탄한 구성과 함께 때론 부드럽고, 때론 강한 문장의 호흡입니다. 하루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흥행사 기질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있군요. 2권 말미에서 아오마메는 권총 자살을 기도합니다. 덴고의 이름을 나즈막이 부르며 입안에 권총을 들이밀고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줍니다. 독자는 안타깝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다른 방안은 없을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그리 느꼈던 듯. 3권 출간소식은 일본 전역의 서점 앞과 인터넷을 북적거리게 하였다는군요. 국내에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키가 아오마메를 죽게 내버려 뒀으면 난리 날 뻔 했습니다.

 

아오마메는 1Q 84로 넘어오는 계기가 된 고속도로 비상구(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를 통해 오랫동안 몸과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던 덴고와 피드백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습니다. 왜 저자인 하루키는 고속도로위에 이런 비상구이자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넘나드는 게이트를 설정해놓았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 얼핏 앤서니 기든스의 「질주하는 세계」가 연상이 됩니다. 바쁘게 움직여야만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속도로 상에서의 정체는 생명이 없는 것으로 판단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교롭게 아오마메가 처음 그곳을 빠져나올 때나 다시 거꾸로 돌아갈 때나 도로는 꽉 막혀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흐름보다 우리의 마음이 훨씬 더 앞서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체된 도로위에서 속절없이 서 있다 보면 어디 빠져 나갈 길이 없을까? 그 생각만 하겠지요? 그래서 저자 하루키는 고속도로 상에서 각기 다른 관념의 세상을 설정 해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이 좀 아쉽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생각듭니다. 오히려 새로운 스토리가 전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상 비상구를 역으로 빠져나온 후의 아오마메입니다. “거기서 아오마메는 문득 깨닫는다. 무언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 잠시 혼란스럽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식을 하나로 집중한다. 그러고는 깨닫는다. 광고판의 호랑이는 왼편 옆얼굴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호랑이는 분명 오른쪽 옆얼굴을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호랑이의 모습이 반전되어 있다. 그녀의 얼굴이 자동적으로 일그러진다. 심장의 고동이 흐트러진다. 그녀의 몸 안에서 뭔가가 역류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내 기억이 그렇게까지 확실할까. 아오마메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단지 그런 것 같다는 것뿐이다. 기억은 때로 사람을 배반한다.” (Vol.3 p.727,728)

 

어쩌면 지금 하루키가 2부작 1,2,3으로 독자를 끌어 모으려고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밤하늘, 올려다 본 달은..아직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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