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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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는 6만 5천여 자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사기」에는 10만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이 『장자』제1편 소요유(逍遙遊)이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릴없이 거닌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무도(舞蹈)에 가깝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작 그 자체가 목적이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 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장자』를 읽는 독법이 대체로 ‘소요유’와 ‘자유’의 측면에 과도하게 치우쳐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저자 강신주는 장자를 새롭게 해석하면서(이미 장자와 관련된 책을 세 권이나 출판했다고 함)망설임도 있었지만, 『장자』에 등장하는 아나키즘적 전통에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앞서의 책과 다른 좀 더 전체적인 시선에서 장자의 문제의식, 철학적 해법 그리고 정치철학적 함축들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장자』에는 노자사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혁명적인 사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망각과 연대의 실천철학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아주 근본적인 사유이지요. 망각과 연대는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소통(疏通)이라는 말로 정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통이라는 개념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지는 마십시오. 커뮤니케이션은 어원 그대로 어떤 공적인(communis)영역의 권위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자유로운 혹은 야생적인 개체를 주어진 공동체의 규칙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이와 달리 소통은 글자 그대로‘막힌 것을 터버린다’는 뜻의 소(疏)와 ‘새로운 연결’을 뜻하는 통(通)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이 개념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소통이란 개념이 혁명적인 뉘앙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진다. 장자와 철학, 해체와 망각의 논리, 삶의 강령과 연대의 모색 그리고 보론으로『장자』읽기의 어려움, 노자와 장자가 다른 이유가 실려 있다.

“장자는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불가능한 듯 보이는 과제를 자신의 철학적인 문제로 끌어안고 집요하게 사유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자가 제안했던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많은 우회로를 거칠 필요가 있다. 장자와 우리 사이에는 2천 년도 더 지난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와의 대화에서 도움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비트겐슈타인과 레비나스 라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타자성이라는 문제에 있어 두 사람만큼 장자에 필적할 만한 사유를 전개했던 철학자도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자 이해를 위해 현대 철학자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 시점에서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장자의 사유가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두 원리가 실제로 마주치는 곳에서, 각자는 타자를 바보니 이단자니 하고 선언한다. 나는 내가 타자와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그 타자에게 근거들을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물론 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디까지 가겠는가? 근거들의 끝에는 (결국)설득이 있다.

-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며,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공감도 전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하나의 신비와의 관계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재성이며 혹은 그의 타자성이다.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장자도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들보다 앞서 타자를 발견했고 그 문제를 끈덕지게 사유했던 철학자이다. 어느 경우든 타자의 발견이란 사건은, 나 자신이 나만의 규칙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적인 사태이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비트겐슈타인이나 레비나스를 넘어서는 어떤 측면이 있었다.

장자는 우리가 타자와 적절히 소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사유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우린 장자의 구체적인 제안들을 들을 만함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조급한 마음의 독자들을 위해서 장자가 제안한 한 가지 방법을 살짝 엿보도록 하자.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닐 수 있도록 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 [不得己]에 의존해 중(中)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 「인간세」


且夫乘物以遊心, 託不得已以養中, 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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