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눈을 뜨다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
해리 크라이슬러 지음, 이재원 옮김 / 이마고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너무 많이 희망하지도, 너무 많이 절망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휴머니즘입니다.”      - 오에 겐자부로

이 책은 “우리시대 가장 저명한 학자, 예술가, 행동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사상과 관점을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모음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국제관계 연구소 상임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위성방송 네트워크와 유투브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는 〈역사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History)〉라는 프로그램을 1982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기획, 제작, 진행해왔다.

유명 인사들이 각자의 과거 경험을 되돌아보는 토론의 장인 〈역사와의 대화〉는 초대 손님이 자신의 과거와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해리 크라이슬러는 초대 손님들의 말이 조리 있게 전달되도록 만들어 그들이 누구인지에서부터 독특하게 뒤섞인 그들의 개성, 지식, 성격을 청중들이 이해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저자는 1982년부터 2009년까지 475회 이상의 대담을 진행했다. 초대된 손님들만 해도 외교관, 정치인, 군인, 경제학자, 정치평론가, 과학자, 역사가, 작가, 해외통신원, 활동가, 예술가 등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 중 20편을 엄선해 이 책에 수록했다.

여기에 실린 일련의 대담은 각자의 지성과 성격이 지닌 힘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이 세상을 예전과 달라지도록 만든 인물들의 다양함을 보여주기 위해 선별됐다. 대담에 초대된 인물들은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은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 사상과 행동을 받아 들였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란 정당에 가입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정치란 권력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 있다. 이런 통찰은 그저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명확하게 보도록 해주는 삶의 경험 끝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정치에 눈을 뜨는 바로 그 시점에서다.

책에 등장하는 20인의 면모를 보면, 노암 촘스키, 엘리자베스 워렌, 제인 메이어, 아메드 라시드, 올리버 스톤, 오에 겐자부로, 시린 에바디, 하워드 진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유년 시절을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 통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군도의 자그마한 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그리고 그 후 스웨덴의 여성작가 셀마 라게를뢰프가 쓴 〈닐스의 대모험〉은 겐자부로의 유년시절을 통해 매우 중요한 두 권의 책이었다고 한다. 읽고 또 읽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  인터뷰 중
(문) 〈회복하는 가족〉에서 당신은 미국의 작가 메어리 플래너리 오코너가 소설가들의 습관, 즉 축적된 행위에 대해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그게 뭐죠?
(답) ‘습관’은 이런 것입니다. 작가로서 저는 10년 혹은 30년 동안 매일 글을 써왔는데, 그러자 작가의 습관이란 게 점점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혹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저를 작가로서 다시 태어나게 해준 습관을 갖게 됐죠.그래서 제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저는 습관의 힘에 따라 뭔가를 쓰거나 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군인, 농부, 어부도 살아가면서 엄청난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자기 자신이 지닌 습관의 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 되는 습관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위기조차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겐자부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24년 전 나의 첫 아들이 뇌손상을 입은 채 태어났다.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작가로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 경력의 상당 부분을 통틀어 시종일관 내 작품의 핵심주제는 나의 가족이 이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살아온 삶의 방식이 되었다.”
겐자부로가 28세 되던 해에 아들이 태어났다. 당시 그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일본 문단에서는 꽤 알려진 작가였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날 밤, 뭔가 격려 될 만한 것을 찾게 됐고, 그래서 본인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본인이 쓴 책을 읽게 된 것이 그때였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고, 그는 본인의 책을 통해서는 제 자신을 격려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자기의 작품이 어느 누구도 격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내 책도” 그는 아주 깊은 절망에 빠져버렸다.

그 무렵 일본에서 정치, 잡지를 편집하던 기자 한 사람이 원자폭탄이 투하 된 곳인 히로시마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는 히로시마에 가서 반핵운동 단체가 회의를 갖기도 했던 회의장을 참관하기도 하고,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곳 병원에서 시게토 후미오 박사를 만난다. “우리는 생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병의 특성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폭탄이 투하된 직후나 지금이나 우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매일 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저는 죽은 시체들 가운데서도 계속 할 것입니다.   겐자부로씨, 사람들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데 제가 그들을 돕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아들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 행성에 당신 아들 말고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뇌손상을 입은 채 태어나서 겐자부로 부부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 주었던 그 아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 아들은 작곡가가 되어서 2자의 CD를 발간했다. 그 아들의 성장기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이다.

“치유하는 힘, 마음을 고치는 힘 - 비록 우리가 절망, 즉 통과해야만 하는 영혼의 검은 밤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창조하는 음악이나 문학 속에서 실제로 그 절망을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치유 될 수 있고 회복의 기쁨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통과 회복의 경험이 하나하나 층층이 덧붙여짐에 따라서 예술가의 작품이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의 혜택 역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게 된다.”  - 오에 겐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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