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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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활짝 갠 초봄의 아침. 아직 바람이 차가워 오가는 행인들은 모두 코트를 입고 있다. 어제는 일요일. 내일은 춘분 휴일. 즉 연휴 한가운데다. 어떤 사람은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러 사정상 당신은 쉴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역으로 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붐비는 전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변장한 다섯 명의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에 의해 책이 만들어진(저자의 손과 머리에서 나온 글이 아니므로)계기는 어느 날 오후, 우연히 여성잡지에서 독자투고란을 보다가 떠오른 생각이 그 시작이다. 편지는 지하철 사린 사건 때문에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는 한 여성의 사연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출근 중 운 나쁘게도 지하철 사린 사건에 휘말려 들었다.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다가 며칠 후에 퇴원했지만 불행하게도 후유증 때문에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 생활이 반복되면서 결국 쫓겨나다시피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이 기사를 읽은 저자는 그 후 어떤 계기로 그 편지를 떠올리며,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불행히도 사린사건의 순수한 ‘피해자’가 사건 그 자체에 의한 피해에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도 가혹한 ‘2차 피해’(다시 말해 우리 주위의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일상사회가 생산하는 폭력)까지 받아야 하는가? 과연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그러면서 저자는 그 당시 사린가스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또 이런 이중의 상처를 생산하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인터뷰는 1996년 1월 초부터 같은 해 12월 말에 걸쳐 정확히 1년 동안 이뤄졌다. 한 번의 인터뷰는 1시간에서 4시간까지 이어졌다. 녹음을 한 후 인터뷰를 했던 사람과 편지로 왕래하며 수정하고 동의를 구했다. 힘들게 입수한 피해자 인명부 700여 명의 리스트 중 140명과 연락이 닿았고, 실제 인터뷰는 40퍼센트 정도였다. 결국 사린 사건 피해자 공식 발표 인원 3,800명중 60명의 ‘증언해줄 피해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저자와 두 사람의 도우미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사건은 일본 사람들에게 매스컴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매스컴 관련)은 결국 스캔들을 좋아할 뿐이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라고 하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 
 

“사린 사건 후 PTS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육체적인 면 못지않게 정신적인 상처가 크다. 불면, 악몽, 공포 등.”

한 생각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한 생각이 사람을 높은 위치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계기도 될 수 있지만, 그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 나아가서는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지하철 히비야 선 사린 살포 임무 도요타 도오루 : 도쿄 대학 이학부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하고. 엘리트 연구실로 올라가 석사과정을 마침.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즈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 도요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 동료 히로세 겐이치가 그랬듯이 - 주어진 ‘교리’에 대해 더욱 강한 신념을 가지고서 솟구쳐 오르는 의문을 억제하고 인간성을 잊고 상상력의 창을 닫아 행위의 논리적인 정당성을 확립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차에서 뛰어내리기보다는, 또한 그 이후의 책임을 짊어지기보다는 명령에 따르는 쪽이 훨씬 더 편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마음을 정했다. 해야 한다고, 일단 마음을 정한 후에는 모든 행동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린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그분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이 죽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몇 분 사이에 의식을 잃어버리고 마니까요. 죽기 전에 가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희생당했는가.?’ 
 

"그런 짓을 한 놈들은 극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세상을 떠난 열한 명의 희생자를 대신해 생명을 되찾은 사람으로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던가 하고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는 모른다. 제자들이 했다. 어쩌고 저쩌고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다루다니, 이건 절대로 용서 할 수 없습니다. 희생당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이 사린 사건을 주도했던 일본의 옴 진리교의 실체가 무엇인가? 였다. 그러나 끝가지 읽어봐도 모르겠다. 옴에 대해선..저자가 책 말미에 후기겸 글을 남기긴 했지만,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은 뭔 까닭인지 모르겠다. 이 책에 증언을 남긴 피해자들의 공통된 마음중 하나는 사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옴 교단 측의 수상쩍은 움직임과 범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대응과 공조수사 체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도대체 옴 진리교의 진리가 무엇이기에 그 슈퍼 엘리트들이 전도유망한 직장과 위치를 모두 내던지고 그 조직으로 들어가선 사린 사건과 같은 불특정다수의 인명을 손상시키는 일을 자행할까? 알 수가 없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사건이 매스컴에선 가십거리 정도 밖에 안 되고, 그 문제에 심도 있게 접근해서 파헤치려는 의지도, 밝힐 생각도 없는 듯하다.  이번 일본 지진 후 원전 폭발사고 등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시스템과 분위기는 조금 알 것 같은(이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느낌이다. 
 

저자는 수십 명의 목소리를 책으로 엮어내며,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미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기도 한다. 
 

“내가 당신에게 받은 것을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 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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