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글은 눈에 쏙 들어온다.
좋은 글은 막힘이 없다. 물이 흐르듯 유연하다.
좋은 글 만남이 쉽지 않지만, 좋은 글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안정효. 나는 이분의 작품이 좋다. 창작도 그렇고 번역 작품 역시 참 좋다.
96,97년도에 발간된 영어 길들이기 - 번역편, 영작편도 읽어봤다. 뒤이어 출간된 가짜 영어사전도 읽었다. 현재까지 저자의 번역서만 150권, 창작서도 꽤 된다. 대단하신 분이다.

저자도 책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처음 읽는 책은 (특히 소설류)첫 문장을 유심히 본다(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첫 문장이 나를 얼마나 끌어당기느냐에 따라 책 선택이 결정된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나타나지만, 소설은 아니다. 그렇지만, 첫 문장이 마음을 훔친다.

“다짜고짜 자랑부터 하자면, 나는 수영을 잘한다.”

궁금증이 발동한다. 도대체 수영을 얼마나 잘해? 수영선수 생활을 했었나?
수영과 글쓰기는 무슨 상관이 있나?

“수영에서는 동작과 자세에 관한 공식을 많이 이론적으로 배우고 외운다고 해서 저절로 헤엄쳐 강을 건너가게 되지는 않는다. 마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에 이미 그런 진리를 터득했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며 물과 친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힘과 요령은 몸이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글쓰기는 헤엄치기와 똑같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공부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과 똑같다.”

좋은 글은 절제된 문장으로 되어있다. 사족이 없다. 미사여구로 포장이 되어 있지도 않다. 저자는 그의 또 다른 재주인 그림그리기로 책 중간 중간 삽화를 넣었다. 제목은 ‘투명인간의 새로운 정의’다. 온갖 치장을 한 여인이 서 있다. 그 위에 저자가 붙인 설명은 ‘정신없이 장식을 한 여자에게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이다.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의사들이 임상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은 ‘~ 같아요!’‘~같습니다!’이다. 환자는 확실한 병의 상태와 병명을 알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왔는데 ‘폐렴 인 것 같습니다’ ‘곧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참 난감하지 않은가?
물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럴 경우에는 표현을 달리한다.
“보다 자세한 것은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만, 현재까지 몸 상태의  변화와 증상을 볼 때 ‘~로 의심이 됩니다.’로 해야 옳다.

저자는 글을 쓸 때 ‘~같아요.’를 ‘힘이 빠지는 표현’이라 한다.
“말과 달리 글은 한 사람이 다수를 설득하는 형태를 취한다. 말은 일회성 현상이지만, 글은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 글은 목소리만 낮추었을 뿐, 절제된 웅변의 성격을 지닌다. 웅변에서는 설득할 결론이 힘을 얻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한 ‘같아요.’를 잘라 없애야한다.
율리우스 카리우스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온 것 같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정복도 한 것 같은데..”
그리고 또 이 말은 어떠한가.
“주사위가 던져 진 것 같구나. 루비콘 강을 건너야 할 것 같고 말이야. 부하들아, 그러니 너희들은 내 뒤를 따라야 할 것 같지 않느냐?”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필독을 권한다.
소설을 구상하고 제목을 짓는 일, 화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단락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소재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저자가 글을 쓰면서 터득한 지혜를 강의하듯이 써 내려가고 있다.
짧은 소설에는 긴 제목이, 긴 소설에는 짧은 제목이 어울린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주인공들의 이름은 그 자체에서 암시해주는 면면들이 있다. 저자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여주인공 언례와 그의 어린 아들 만식이의 경우를 본다. 여자의 이름인 경우는 첫 글자에 받침이 없어야 예쁘고 듣기에 좋아서, 착한 여주인공일 경우는 호감이 가도록 그렇게 이름을 짓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얻은 쌍둥이 딸에게도 미란이와 소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남자의 경우는 앞 글자에 받침이 없으면 허약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생겨서 조심스러워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재능과 노력이 합해져야 한다. 아무도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 글은 비망록에 불과하다. 그래서 좋은 글은 독자가 있다.
“위대한 작가는 독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다. 독자나 시청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작가의 야합은 창작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그래서 삼가야 마땅할 짓이다.
(중략)
그러나 세상이 나를 위대하다고 인정해 주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다가 위대한 작가로 성공하다면, 그 때는 ‘무식한 군중’의 정신적인 스승 노릇을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