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김진규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며 때로 그 안에서 나 같은 사람 즉, 생각이 같은 사람 그리고 행동이 닮은 사람을 찾은 적이 많았다. 특히 문학작품일 경우엔 더욱 그러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생각이나 행동의 소유자를 만나게 되면 내가 별나라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면서 위안을 삼곤 했다.

저자가 붙인 책 제목은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 한다」이다. 내 마음대로 책 제목을 이렇게도 바꿔보고 싶다.  「나의 존재는 문장 어디에나 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는 것은 왠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때 밑줄 친 부분이 나의 생각으로 읽혀지는 것도 싫고, 읽는 사람의 독서흐름에 방해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노트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꽤 여러 권 모아졌을 때 이사를 하면서 그 노트가 사라져버렸다. 일차적으론 나의 부주의이기도 했고, 버린 사람 눈에는 쓰레기로 보인 모양이다. 하긴 이 노트, 저 노트에서 남은 부분을 모아 묶음으로 해놨으니 허접하게 보인 점은 이해는 되나 용서가 안 되어 한참 힘들었었다.

저자가 책을 보면서 노트에 옮겨 놓았던 부분들이 감성과 지성을 터치해주는 칼럼도 되고, 모아 모아 책이 되었다. 나도 이 시를 거의 외울 뻔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다.
「미당 서정주 시선집」거의 앞부분에 있었다.

에비는 종 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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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  서정주 / 자화상

오자가 아니라. 원래 분위기가 이렇게 고풍스럽다. 머슴이 나오지 않던가 ?
나는 이 시를 읽으며..‘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대목에서 뭐야? 이분 내이야기를 하고 계시잖아? 했다.    

 책의 저자 김진규는 이 시를 읽으며 얼쑤! 절쑤! 한다.
‘애비는 종이었다!’에 얼쑤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에 절쑤!

장점과 강한 것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단점과 약한 것이 드러날 때 주위 사람들 가슴에 찬바람이 일게 한다. 그러나 단점과 약한 것을 마치 남의 것인 양 담담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반대로 강함과 장점이 도드라지면 가슴에 훈풍이 분다. 바로 이런 대목이다.

“세상은 늘 의외의 것들로 북적인다.

나이 마흔에, 이미 5남매를 둔 한 여인이 있었다. 한데 그녀, 언젠가부터 속이 좋질 않았다. 혹시 병일까? 별의별 처방을 다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새 생명의 기척이었다. ‘나, 여기 있어요!’하는, 그녀, 알거 다 알 나이인 큰 아들에게 민망했고, 낳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아기는 고집스럽게 버텨냈고, 온전한 몸으로 세상을 움켜쥘 수 있었다. 척박했을게 분명한 그곳에서 운 좋게도 살아남은 그 새 생명이 바로 나다.”

글마다 저자의 주변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다.
‘척박했을게 분명한 그곳’은 어머님의 뱃속이자, 그녀(저자)의 고향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저자는 책을 참 많이도, 알차게도 읽었다. 글을 보며, 글 속의 책을 보며 뜬금없이 얼룩말이 생각났다. 흰 바탕에 검은 줄인가 ?  검은 바탕에 흰 줄인가 ? 저자의 글들이 메인인가? 책 속의 책들이 주인인가? 독서의 흔적들에 저자의 삶(저자의 지인 중 한사람이 글을 보고 인간적이라고 표현했다)이 보태진 것인가? 아님, 그 반대일까? 그러나, 아무렴 어떠리. 글을 읽는 깊은 재미가 있다. 저자의 타이틀인 소설가답게 글이 맛있다. 부끄러움조차도 아름답다.

“글 질이 업이 되고부터 부쩍 부끄러운 것이 많아졌다. 별 볼일 없는 기억이나 허접한 일상 따위들을 뻥이요, 하고 글로 튀겨서는 ‘읽어 주시오!’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됐다. 게다가 이번엔 ‘김진규의 길’이라니, 다분히 독자를 의식한,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제목이 또한 웃기다. 물론 쓰고 싶어서 쓰고, 써야 해서 쓴다. 하지만 이러고 살아도 되나, 그런 죄의식이 성가시다. 오늘은 나를 더 부끄러워해야겠다. 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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