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교유서가 소설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_한지혜 / 교유서가

 


 

 

마을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들어오는 길이고, 하나는 나가는 길이다.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들어오는 길을 푸른 길이라 부르고, 나가는 길은 붉은 길이라 부른다. 길은 그게 전부다.” 인풋과 아웃풋이 확연히 구분되어있다. 그런데 왜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은 색일까? 들어오는 것은 생명이고, 나가는 것은 생명 없음이기 때문일까? 두 개의 길 사이에 동그랗게 마을이 들어서 있다. 꼭 웅덩이 같은 마을이다. 가끔 푸른 길을 따라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또 그만큼의 친숙한 사람들이 붉은 길로 빠져나간다. 그 마을을 지구라는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태어나는 생명들과 죽음으로 떠나는 영혼으로 대입시켜도 좋을 듯하다. 이 단편 속 화자의 직업은 이야기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특징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나이가 먹으면 이야기꾼을 찾아온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한다. 이야기꾼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읽어준다(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한지혜 작가는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안녕, 레나>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소설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안녕, 레나> (2004)의 개정판이다. 특징적인 것은 거의 20년 전에 쓴 글들이 시간이 흐른 지금 읽어도 바로 엊그제 출간된 내용인 듯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소설의 흐름이나 시대적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집 첫머리에 실린 외출이 특히 그러하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고루하더라도 그 시대의 문학은 그 시대의 언어로만 설명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단작이었던 외출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그 시대가 문학을 인식하는 태도와 문학에 대해 갖는 기준점은 그 시대가 선정한 신인의 문학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사회를 형성하는 틀 자체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이 그렇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이 세워진 토대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가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이다. 삶 앞에 그리고 곁에 죽음이 있다. 죽음 언저리에 삶이 묻어있다. 외출화자의 주인공은 지방대 인문계를 졸업한 후 32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왔던 곳은 딱 2군데였다. 한곳은 제약회사였는데 주인공이 지원한 사보실이 아닌 텔레마케팅 부서를 권유하기에 가보지도 않았다. 또 다른 한곳은 민족문화에 대한 기사를 쓰는 작은 신문사였는데, 면접을 보기로 한 전날 사이비언론을 보도한 뉴스에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가봤지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후 어찌어찌 인맥을 동원해서 중견 광고회사에 1년 한정 인턴 사원으로 취직하지만, 1년도 못 채우고 잘린다. 화자는 가끔 유서를 쓴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이사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화자의 꿈은 룸펜이었으나, 화자가 12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사루비아는 기면증에 걸린 여인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소한 방화를 일삼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등장한다. 목포행 완행열차에서도 어김없이 죽음을 등에 진 여인이 등장한다. “언니, 저 처자가 참 곱지.(...) 예전에 언젠가 저런 뒷모습이 본 적이 있지라. 동그란 어깨는 저리 무겁게 쭉 늘어뜨렸는데, 걸음이 허방 위에 선 사람 마냥 사뿐사뿐 처량맞게 내딛는 폼이 꿈처럼 멋처럼 허랑허랑한데, 그게 죽으러 길 떠나는 사람 모습이라 안 하요.” 작가의 죽음 스토리는 햇빛 밝은에서 정점을 이룬다.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유일하고 공평하게 나눠 받은 신의 선물이다.” ‘자살동호회회원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죽든 말든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것, 그것 한가지이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간섭할 필요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