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 1919, 1949, 1989
백영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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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사를 만든 세 가지 사건 - 1919, 1949, 1989

_백영서 / 창비

 

 

2019101일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시진핑(習近平)주석은 오늘의 중국은 세계의 동방에 우뚝 서 그 어떤 힘도 중국을 흔들 수 없으며, 또 중국의 전진을 막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10만 명 군중의 퍼레이드와 장병 15천명의 분열식이 이어졌다.

 

이 날 기념식은 중국이 마오쩌둥(毛澤東)일어서기와 덩샤오핑(鄧小平)부유해지기시대를 지나 시진핑의 강해지기시대에 진입했으며 중국의 부상을 가로막는 어떤 도전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언론은 논평했다(중앙일보2019.10.2).

 

톈안먼은 청조 황제가 머물던 자금성(紫禁城)으로 통하는 입구로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와 백성을 평안히 다스린다(受命于天 安邦治民)”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 톈안먼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중국의 근현대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사학자 백영서 교수는 톈안먼에서 1949101일 건국을 선포한 마오쩌둥과 1919년과 1989년에 그 자리에 모였던 민중들을 주목한다. 아울러 중국 100년의 역사를 ‘100년의 변혁으로 바라본다. “변혁(transformation)이란 특정 모델로 가는 직선적 진화 과정(곧 이행 transition)이 아니라 새롭고 알려지지 않은 무엇인가로 가는 변화이다, 성공과 실패, 개량(또는 개혁)과 혁명, 운동과 제도의 이분법을 넘어서되 역사를 탈정치화하지 않고 정치적 가능성을 체감하며 민주적 약속을 전망한 흐름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1919. 신청년과 각계 민중연합의 시대

 

191954일 일요일, 구름이 많이 끼어 흐린 그날, 오전부터 학생들이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1시경 베이징 여러 대학의 대학생들(과 일부 중학생들)이 학교별로 깃발을 들고 대거 집결해, 오후 2시부터 베이징정부의 외교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부 주관 경축행사의 장소 톈안먼이 정부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저항의 장소로 바뀐 날이기도 하다.

 

베르사유강화회의가 열리고 있던 파리에서 날아온 소식-독일의 조차지였던 산둥(山東)의 이권이 중국인의 기대와 달리 중국에 반환되기는커녕 베이징정부가 일본과 1915년에 맺은 비밀조약 때문에 일본에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인은 분노했다. 사회단체인 국민외교협회는 57일 중앙공원에서 국민대회를 열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대학생들은 7일의 집회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조급하다는 판단에 독자적으로 집회와 시위를 벌여 집단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길 원했다.

 

54일의 집회와 시위는 63일의 대시위를 정점으로 계속 각계 민중의 운동으로 확산된다. 그리하여 매국 세 관료(차오루린, 장쭝샹, 루쭝위)의 파면, 28일 베르사유조약 조인 거부 선언이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베이징정부가 직면한 정당성 위기의 국면은 두 개 수준의 경험세계에서 학생이 변혁 주체 곧 신청년으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그들 개개인의 일상생활의 경험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결집의 경험세계이다.”

 

1949. 당과 인민의 시대

 

공산당의 승리로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정반대의 시각으로 갈린다. 하나는 중국현대사를 중국공산당의 반제, 반봉건 투쟁의 역사로 보는 혁명사관이다. 아직도 중국에서 공식 역사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동안 중국 밖의 지식인사회에도 영향력이 컸던 인식틀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1949년은 공산당 창당 이래 28년간의 힘겨운 투쟁의 승리와 성공을 낳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고, 낡은 중국과의 급격한 단절과 새로운 중국(新中國)의 시작을 가져온 획기적 연대이다. 반면에 보수주의나 반공주의의 역사관에서 보면 정상적 역사에서 이탈이 일어난 해이다.

 

1989. 군중자치의 순간

 

톈안먼사건에 대한 논의는 중국에서는 금기시되어 바깥에서 다소간 진행된 편이다. 그 사건의 진상(특히 사상자 수 등)이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은 등 규명되어야 할 쟁점이 너무 많다. 이런 점들이 온전히 규명되려면 적어도 공문서의 기밀 해제와 희생자복권 같은 정부의 해금조치가 이뤄지는 그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중국내 자유주의파와 신좌파의 분열된 기억이다. 이를 기억의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어쨌든, 톈안먼사건이 자유주의파든 신좌파 등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하나의 분수령이었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는 당정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지식인들도 개혁, 개방정책의 불확실성에 동요하던 시기였고, 1988년과 1989년은 그 절정이었다. 1989운동은 체제전환이라는 중국의 과도기적 상황을 매우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중과제론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 현대사를 기술하는 관점을 이중과제론(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이라는 사유로 중국 100년의 변혁을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두 과제의 절충이나 선후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인 단일 기획이라고 덧붙인다. “이중과제론의 시각에서 보면, ()식민성은 근대에 내재된 근대극복의 계기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중국사의 경우 ()식민성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중국의 외부는 물론이고 그 내부의 타자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근대극복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도래에 직면한 중국 지식인들은 단순히 수용적 태도로만 대응할 수는 없었던맥락, 식민성에 대한 저항은 이들의 인식을 서구식 발전노선과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지평으로 확장시켰던 중국현대사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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