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린의 심장 _이상욱 / 교유서가

 

 

책의 제목으로 쓰인 기린의 심장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기린은 지구상의 동물 중 목이 가장 길고 키가 크다. 목을 통해 머리까지 혈액을 쏘아 올려 보내기 위해선 다른 동물에 비해 심장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높은 혈압도 요구된다. 기린의 심장 무게는 10kg 이상이다. 아울러 다른 대형동물에 비해 2배 강한 혈압을 유지한다.

 

이 책에 실린 9개의 단편 중 4번째 작품인 기린의 심장은 어찌하다보니 지도상에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거대한 동물원에 (비현실적인 루트로)가게 된 한 사나이 'K'의 이야기다. 그 동물원에서 겪은 이야기다. 그 동물원엔 허가되지 않은 인원이 들어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K는 뭐랄까, 그 동물원에 선택된 존재감이었다. K의 직업은 경찰관이다. 그가 그곳(동물원)에 선택된 것은 대부분의 불법침입자가 초원을 헤매다 죽어버리는 데, 한 소녀(동물원 근무자들 말에 의하면 천재’ -수많은 함정들을 잘 피해 다니기 때문에)를 찾아서 없애는 역할이 주어진다. 그 소녀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기린의 심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동물원에 잠입했다는 것이다.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예요. 내겐 기린의 심장이 꼭 필요해요. 하지만 저들에겐 필요하지 않죠. 저들에겐 기린의 심장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라는 인식이 중요한 거라고요.”

 

어느 시인의 죽음이란 단편은 제목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거의 SF에 가깝다. 어느 날 지구상에 외계인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지구상의 질량을 가진 것 중 안 먹어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외계인)가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너희(지구인)가 제일 맛있었다.” , 인간이 그들 외계인들에게 최고의 식재료라는 것이다. 전 세계의 인간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려는 외계인들에게 지구인들이 협상을 벌였다. 더 맛있는 인간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길러 먹으라는 이야기다. 지구인 대표가 외계인 대장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그걸 양식이라 부릅니다. 저희도 다른 종족을 같은 방식으로 식량화했습니다. 식욕을 죄라고 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문명을 이룩한 존재로서로 교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통념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직접 먹지는 않지만(지극히 극한 상황에서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인간이 같은 인간들에게 저지른 전쟁의 참상을 돌이켜보면(현재도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지만) 내 배(야심)를 채우고자 시행한 무자비한 테러와 폭행, 폭격이 결국 같은 상황이 아닌가. 암튼 그 뒤로 그들에게 바칠 양식을 위해, 사냥감과 사냥꾼이 등장한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달랜다. “조건이 좋아. 성적도 별로고, 가난하고, 미래도 없고, 무엇보다 자살 시도 경험이 있어서...”

 

9개의 단편 중 어느 것이 제일 흥미로웠냐고 묻는다면, ‘라하이나 눈을 뽑겠다. Lahaina Noon은 하와이어라고 한다. 태양이 90도 위에 정확히 도달해 그림자가 대략 5분 정도 사라지는 현상으로, 1년에 두 번 호놀룰루를 찾아온다고 한다(이것도 작가가 지어낸 이야긴가 의심스러워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실제 상황이다). ‘그림자 없는 정오또는 하이 눈이라고도 한다(라하이나는 잔인한 태양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단편의 내용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단지 주인공이 돈을 더 모아서 아내와 함께 하와이에 가겠다는 주인공의 희망이 단편의 제목으로 쓰였다. 주인공 는 달리기가 취미이자 특기이다. SNS에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달리기하나 만으로. 어느 날 한 여인이 를 찾아왔다. 자신을 모 기업 헬스케어 사업부 팀장이라고 소개한다. 처음에는 황당한 이야기로 들렸지만, 결국 그 페이스에 말려들어간다. ‘육체 동기화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고객이 비만관리를 위해 그 헬스케어 사업부를 찾으면, 살을 빼고 체력을 보강하는 것은 육체를 동기화한 알바가 대신 운동을 하고 몸 관리를 하는 것이다. 역시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시간이 흘러 인간복제화가 일반화된다면, 가능성이 열린 스토리다. 어쨌든 의뢰인은 돈만 내면 되고, 실컷 먹고 마시고 노는 사이에 육체가 동기화된 알바는 죽어라 운동을 하고 몸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에 대한 보상은 오직 이다. 그러나 리스크가 크다. 알바가 몸을 다치거나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하면 의뢰인들(보통 몇 사람을 동시에 관리)이 먹고 마시면서 불리는 체중이 그대로 알바에게 전해진다. “패턴4 알람이 울렸다. 칼로리가 축적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알파-1이 또 뭔가를 먹고 있나보다. 나는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독특하다. SF까지는 아니고, 판타스틱한 단편집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테마는 소외’ ‘상처그리고 회복이다. 각 단편에 살을 이어 붙이면 중편 또는 장편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