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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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의 집 청소 】

_김완/ 김영사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져있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언젠가 죽은 이가 숨을 거두고 한참 뒤에 발견된 화장실에서 수도꼭지에 낀 얼룩을 닦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세상사가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직업군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도 있다고 들었다. 고인이 생전에 활동하던 네트워크 활동을 정리해주는 작업이다. 이 일은 험한 직업이 아니다. 이곳저곳 웹서핑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 두뇌와 손의 수고가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일에 비하면 근무 환경이 쾌청한 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완은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시(詩)를 전공했다.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전업 작가를 꿈꾸고 산골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취재와 집필을 위해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특수청소 서비스회사 ‘하드웍스’를 설립해서 일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회사이름에도, 책제목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 누군가가 해야 할 일, 해주어야 할 일 임에 틀림없다. 진짜 ‘험한 일’이다.


저자가 일하는 일상의 모습과 심기 불편한 현장 상황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들려주지만, 그가 하는 일을 특별히 미화하거나 무슨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책을 많이 읽은 저자답게 그 일상에서 느끼는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단상을 함께 기록해나갈 뿐이다.


착화탄(일명 번개탄)으로 자살한지 3개월 만에 발견된 30세가량 된다는 어느 여인의 원룸. 여느 착화탄 자살 현장에 비해 화로 주변이 너무 깨끗한 점이 의아스러웠다. 구조대원이나 경찰의 현장 감식반이 앞서 다녀갔을 테지만 자살 현장에서 그런 것을 치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족조차도 다녀간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의문은 현관문 왼쪽에 놓인 분리수거함을 들여다보고 풀렸다. 불을 피우는 데 쓴 금속 토치램프와 부탄가스 캔은 철 종류를 모으는 칸에, 화로의 포장지와 택배 상자는 종이 칸에, 부탄가스 캔의 빨간 노즐 마개는 플라스틱 칸에 착실하게 담겨있었다.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사실인가?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저자가 책에 담은 죽음 언저리의 여러 단상들 중, 저자가 인터넷 블로그에 자살방지 차원에서 올린 글을 읽고 “착화탄 자살을 하면 괴롭다고 쓰셨는데 진짜인가요?”라고 묻는 한 중년 여성의 전화를 받고 자살예감을 느끼고 다섯 시간 동안 경찰의 협조를 받아 동분서주 끝에 결국 자살을 막은 이야기나, “죽은 사람 집 하나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라는 견적 의뢰 전화(자주 받는 전화지만 뜬금없고 애매모호한 이야기만 하고 있길래, 혹시 동종업계에서 참고삼아 묻는 전화인줄 알았는데)나중에 알고 보니 자살을 계획하고 그 뒷마무리가 염려되어 물었다는 것으로 짐작(자살자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의 목록대상에 들어 전화를 했다는 경찰의 연락)하게 된 이야기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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