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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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의 위상학 】

  _한병철/ 김영사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폭력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폭력에 대한 혐오가 근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폭력은 그저 변화무쌍할 뿐이다. 사회적 구도가 변화함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진다.”


사회적 구도의 변화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진다는 말에 공감한다. 폭력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살아 있는 독일 철학자는 한국인, 한병철이다” 〈엘 파이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폭력’을 깊이 사유한다.


저자는 폭력을 ‘거시물리학’과 ‘미시물리학’ 관점에서 바라본다. 자신의 사유를 피력하기 전에 프로이트, 벤야민, 카를 슈미트, 리처드 세넷, 르네 지라르, 아감벤,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부르디외, 하이데거 등의 논의를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부정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 즉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친구와 적 사이의 이원적 긴장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거시물리적 현상으로서의 폭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폭력은 보통 표현적으로, 폭발적으로, 육중하게, 공격적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태고시대의 희생과 피의 폭력, 처형을 명하는 주권자의 폭력, 고문의 폭력, 가스실의 무혈 폭력, 테러리즘의 바이러스성 폭력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심리장치는 명령과 금지로 작동하는 억압적인 지배와 강제의 기구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주권사회나 규율사회처럼 금지와 명령의 부정성을 바탕으로 조직된 억압적 사회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의 사회는 점점 더 금지와 명령의 부정성에서 벗어나 자유의 사회를 자처하는 성과사회이기 때문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무시간적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금지와 억압의 부정성이 지배하는, 그러나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떠나온 규율사회의 산물이다.”


‘미시물리학적 폭력’은 거시물리학적 폭력에 좀 더 복잡하다.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알고 모르게 겪는 폭력이기도 하다. 시스템의 폭력, 긍정성의 폭력, 투명성의 폭력, 리좀적 폭력, 지구화의 폭력 등에서 특히 ‘긍정성의 폭력’에 주목한다.


저자는 ‘종교는 부정성의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긍정성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종교는 명령, 금지, 제의로 긍정성의 번성을 억제한다고 한다. 사회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반면, 규제 철폐, 경계 파괴, 제의의 파괴가 현재까지 광적으로 진행되면서, 부정적인 것은 엄청난 규모로 해체시킨다는 것이다.


“타자의 테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은 같은 자의 테러, 내재성의 테러다. 부정성이 없는 이러한 테러에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도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폭력’을 테제로 삼아 독자들에게 여러 석학들의 사유를 함께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저자는 책 제목에도 사용했듯이 폭력을 ‘위상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폭력의 시대적 변천과정을 알아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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