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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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

   _로렌츠 바그너/ 김영사



교통사고나 찰나적 외부 손상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을 제외한 내과적인 질병(암 또는 호흡기, 소화기질환, 심장병 등)은 몸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결에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고통이나 질환은 어떤가? 본인은 물론 가족, 주위사람들조차 그 사람의 성격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가급적 부딪히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 제정신으로 살아갈지라도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자폐증은 어떤가? 처음에는 아이가 다소 예민하거나 특이하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아이가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자폐증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위장해서 아이의 마음(뇌)에 매우 요란하게 자리 잡는다. 성인이 되어서 자폐증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다.


헨리 마크람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EPFL 신경과학과 교수이다. 신경과학 분야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편이다. 그는 현재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인공두뇌 개발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다. 헨리가 선구적인 뇌신경 연구를 시도하는 배경에는 아들 ‘카이’가 있다. 카이가 태어났을 무렵 헨리는 앞길이 탄탄한 뇌과학자였다. 그는 그의 아들 카이가 다소 특이한 존재감이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자폐증일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믿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어릴 적 카이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고, 자기소개를 하고, 낯선 사람에게 안기기도 했기 때문이다(이 점은 확실히 일반적인 자폐아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비록 헨리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뇌과학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아들 카이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학문적 성취는 높았으나, 막상 카이가 자폐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후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좌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학문적 성과를 뒤로 하고, 카이를 포함한 자폐인에 대한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자폐인은 감정이 결핍되어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헨리가 밝혀낸 ‘강렬한 세계’이론에 의하면 그들(자폐인)은 감각에 무딘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섬세하고 예민하다. 똑같은 자극도 더 강렬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헨리가 밝힌 이론은 학계에서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지만, 동조하는 학자나 관련자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헨리가 논문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밝힌 견해가 지금까지 자폐인에 대해 언급되었던 교과서적 이론들과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는 15년 동안 연구를 거듭했다. 그의 연구결과는 우리가 자폐증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들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뇌질환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헨리가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단지 연구자일 뿐이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카이를 통해 그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아이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헨리 마크람이 아니다. 로렌츠 바그너라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이다. 그가 쓴 심층기사 중 뇌과학자 헨리와 그의 아들 카이를 소개한 글이 가장 많이 읽혔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다시 한 번 헨리의 가족을 취재했고 더욱 생생한 육성을 담아 이 책을 완성했다.


특히 자폐아를 둔 부모들, 가족 그리고 자폐아를 케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폐아는 아니지만, 좀 특이한 성향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나 교육 일선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 또는 이에 관심 있는 이들도 읽어보면 뭔가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카이가 성장해가는 실제사례를 기록했기 때문에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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