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읽는 한.중관계사
백영서.정상기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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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을 읽는 한.중관계사 】

_백영서, 정상기 (엮은이)알에이치코리아(RHK)



2020년 5월 28일.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법)표결을 강행해 통과시켰다. ‘거수기’로 불리는 전인대의 표결 결과는 예상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전인대 대표단 2885명 중 찬성 2878표, 반대 1명, 기권 6명으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홍콩의 자치권 상실’로, 이해관계가 있는 세계 각국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경제교역 문제를 떠나 영토전쟁 수순으로 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도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만 있기엔 사안이 중대하다. 강경화 외무부장관은 “최근 고조되는 국제사회 갈등과그 파급효과와 관련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외교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 외교 전략의 지혜가 매우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외교관계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바탕으로 급변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총성 없는 전쟁터이다.


이 책 『내일을 읽는 한. 중관계사』의 집필진은 중국사 전공자와 국제정치 전문가, 한국사를 전공한 학자들이다. 이들이 ‘과거를 바로 알기’라는 주제 하에 공동 작업을 처음 기획하게 된 것은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이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독자들에게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 문제가 대두될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간에 관해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의 범위와 상상력을 넓히는 참조들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를 바로 알기’라는 주제에 걸맞게 저자들은 ‘고대의 한중관계와 책봉조공’, ‘7세기 국제정세 변동과 고구려의 외교적 선택’, ‘12세기 동아시아와 국제정세의 변화와 고려의 대응’, ‘14세기 말 원명교체와 고려왕조의 외교 실패’, ‘조선의 대(對)후금,청외교와 병자호란의 발병원인’, ‘근대 전환기 한중관계와 상호인식의 변화’, ‘현대 한,중관계의 변화와 지속’ 그리고 총론으로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묻는 한중관계사’ 등으로 편집되었다.


전통시대 중국이 주도해온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흔히 조공과 책봉 관계로 설명된다. 이는 강대국인 중국과 주변국들이 평화와 질서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필요해 유지해온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형식이었다고 한다. 조공, 책봉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사대의 역사’로만 오판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잘못 패턴화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대의 한, 중 관계와 책봉, 조공


시간을 거슬러 4~7세기 동아시아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이 당시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중원왕조, 초원지대의 유목국가 그리고 중원왕조의 서쪽에도 다수의 왕조국가가 존재했다. 이른바 ‘중국’이라고 통칭하는 대상이 다원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사상의 ‘한국’ 또는 ‘한국사’의 범주에 포함되는 대상 역시 다수의 왕조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한정해서 본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가야가 있다. 즉, 오늘날의 한, 중 관계라는 관점에서 ‘한국’과 ‘중국’이란 범위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다수의 국가와 정치체들이 존재하면서 다원적인 국제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책봉과 조공 관계를 주목한다. 책봉(冊封)과 조공(朝貢)관계는 신속(臣屬)관계인가? 본래 조공은 주나라의 종법적 봉건제도하에서 제후가 정기적으로 천자에게 조관(朝觀)하고 공물을 바침으로서 군신간의 의리를 밝히고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적 의례 형식이라고 한다. 삼국은 이 당시 중원의 지배자였던 수와 당의 책봉, 조공 정책에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수와 당은 책봉, 조공의 형식을 통해 세계질서를 관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염려스러운 것은, 비록 시간이 한참 많이 흘렀지만, 현재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가 책봉, 조공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되씹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점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그들의 역사관은 ‘고구려가 중원왕조에게 조공하고 책봉했으므로 고구려는 중원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꿋꿋하게 그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묻는 한, 중관계사


오랜 한, 중관계의 역사에서 막간극처럼 짧은 냉전기의 단절을 거쳐 국교를 수립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 중 관계는 변화내지 조정의 시기를 맞고 있다. 백영서(연세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중국현대사 전공)교수는 한,중관계사를 다시 묻고자 할 때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결과론적 해석을 피하자는 이야기다. 또한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간주하는 중국인의 기억이 조공제도가 무너진 뒤에 이념화된 형태로 유지된 것을 염두에 두자고 강조한다. 한국전쟁기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연구한 중국 연구자는 마오쩌둥의 머릿속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중앙왕조’라는 통치 관념이 있었기에 북한정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한,중관계사를 되돌아보면, 동아시아에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는 나라 없이 힘의 중심이 분산된 중층적 질서 속에 각국이 천하질서를 상대화하여 인식했던 시기인 고려 때가 부각된다. 각국이 안보와 국익을 위해 대응전략에 부심하는 가운데, 고려는 상황에 따라 팽창, 세력균형, 편승, 중립 등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현실주의적으로 대응하는 외교적 성취를 보였다.”


고려 시기에 비교할 때, 오늘날은 중국이라는 부강한 국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영향을 행사하는 제3자인 미국의 존재가 있기에 동아시아에는 중층적 질서가 유동적인 채 유지되고 있다. 남북이 지금처럼 분단된 상태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차원에서 개선해나간다면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힘을 얻을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국내에서도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한국의 역대왕조가 유지해온 자기정체성과 동아시아에 작동한 중요한 역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효용을 경험하는 일이 단지 학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일반 대중과 공유될 때 역사적 사고를 일상화하는 ‘역사하다(doing history)'가 확산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이끄는 데 이 책이 다소라도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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