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 한 예술가의 자유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최종태 지음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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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태, 그리며 살았다 】- 한 예술가의 자유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_최종태 / 김영사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생명을 얻는다 했듯이 내 안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야 새로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벚꽃이 휘날리는 4월 희미한 달빛 사이로 팔십 몇 해의 세월이 살같이 지나갔다.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피어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올 줄 모른다. 인생은 유한하고 그림은 끝남이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온 조각가 최종태 교수의 회고적 산문집이다. 「한 예술가의 자유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예술가에겐 다른 직종보다도 자유가 많이 부여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지은이는 그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셨을까 궁금해진다.


지은이는 그림을 어떻게 해야 잘 그리나 하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그리는 일을 열심히 하는 데 까지는 알 수 있었는데,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린다는 대목에 와서는 여전히 어려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긍이 간다. 본 대로 느낀 대로라는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상태와 여건에 따라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사뭇 달라진다. 결국은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예술가로서 평생의 화두인 좋은 작품을 어떻게 탄생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물론이거니와, 어렸을 적 성장 과정과 사회적, 국가적 분위기속에서 떠오른 단상들(일제시대, 6.25 전쟁, 피난살이, 4.19 학생혁명, 10월 유신, 5.18 광주항쟁, 전두환 군부정권 재등장 속에 살아 오셨다). 세계의 예술가들, 건축을 포함한 예술 작품들 이야기. 미술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좋은 스승이 있었기에 오늘의 지은이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그분들도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나시고, 지은이 역시 이 땅을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시는 듯하다.


그림도 많이 그리셨지만, 후대에도 남을 조각상도 많이 탄생시키셨다. 책 속에도 사진으로 소개되지만, 길상사 뜰에 있는 〈관음보살상〉은 직접 가서 보기도 했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관음보살상은 여인의 모습이다. 어찌 보면 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과 흡사하다. 독특하다. 자애롭고 평화로운 모습에 한참 시선을 고정시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조작가로서 일생을 여인상만 만들어왔다. 그것도 소녀상뿐이었다. 왜 그랬는지 내가 나의 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도록 입력이 된 것이 아닐는지. 아니면 무슨 때문일까. 전생에 업이 있어 이생에 관계된다고도 한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세 가지 큰 의문을 안고 살아왔다. 하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가. 또 하나는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신(神)이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 견성(見性) 성불(成佛)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은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은 답은 “이 모든 일들은 해결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였다고 한다. 오히려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의 자유, 그림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 일에 자유가 찾아왔다고 한다. “인제는 내 맘대로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미수(米壽)가 되고서야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이렇게 한 생을 다 바쳐야 된다는 말인가. (...) 내 맘대로 그릴 수가 없었다. 자유가 그토록 그리웠다.” 


결국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워야 할 삶의 지혜는 ‘비움’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살아오며 그 동안 내 손과 마음으로 움켜쥐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때 마다 내 마음에도 자유가 찾아올 것이다. 빈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그 빈자리에 굳이 다시 무엇을 채우고자 애쓰지 말일이다. 그저 비어있는 그대로 두면 그 자리가 더욱 향기로워 질 것이다. 평안해질 것이다. 그렇게 나를 비움의 상태로 둔다는 삶의 지혜를 노 예술가의 글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그 그림이 나온다.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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