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 위대하지 않은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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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 위대하지 않은

 _이재훈 / 두란노



“우리는 위대한 삶이 아니라 선한 삶으로 부름을 받았다. 인간적인 의로 선을 쌓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선한 삶으로의 부름이다.” 이 책은 저자 이재훈 목사가 그동안 목회 현장 속에 던져지는 물음에 대해 성경적 대답을 하고자 써왔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전도서 3장에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7절 말씀은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간혹 헤어짐을 찢어짐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경적 의미에서 찢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저자는 하나님의 선택은 찢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식으로 선택하신 이들을 찢어 구별하셔서 인류전체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 그리고 찢어지고 구별된 후에 꿰맬 때가 온다. 하나님의 찢으심은 아름답게 꿰매시기 위함이다. 온전케 해주시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믿는 Believing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권면을 마음에 담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길인 Being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단지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곧 세상 속에서 선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선한 교회는 무엇일까? 누구 한 사람만의 다짐만으로 선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역자와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선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선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세속주의의 위험이다. 둘째, 분리주의의 위험이다. 분리주의란 신성과 세속, 영과 육, 교회와 세상을 분리시켜, 세상을 하나님 나라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양심을 내려놓고 앙심을 품다’ 양심과 앙심은 한 획 차이로 완전 반대되는 뜻이 된다. 양심과 앙심은 늘 우리 마음에 숨어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하고 착한 마음이다. 반면 앙심은 죄에서 생겨난 악한 마음이다. 분노를 일으키고 복수심을 불태우며 결국 사탄의 도구가 되어 크나큰 불행을 초래한다. 때로 앙심이 변장을 하고 양심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기에 분별력이 필요하다.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불만에서 비롯된 ‘앙심선언’일 때가 있다. “참된 믿음의 삶이란 선한 양심을 따라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삶이다. 선한 양심이 최종 판단을 내리도록 하려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함께 경험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양심이 살아나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악한 인물로 꼽히는 한 사람이 배신자 가룟 유다이다. 그런데 이 가룟 유다를 변명해주고 오히려 그의 행동을 두둔하고 정당화하는 흐름들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06년 여러 다큐멘터리나 매체를 통해 집중적으로 가룟 유다에 대한 자료들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이단적이다. 대부분 유다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심지어 유다가 허구의 인물이라고까지 한다.



왜 이렇게 성경과 명백히 반대되는 흐름들에 역사가들은 물론 예술가들까지 동조하는가? 저자는 유다의 배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배신을 합리화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라고 적고 있다. 리뷰어가 덧붙인다면 선한 무리와 함께 가는 길은 왠지 손해 볼 일이 많고, 잃을 것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무리들은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가해자를 피해자라고 옹호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바라는 참 신앙인의 삶은 위대함에 목숨을 거는 삶이 아닌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나의 교회가 아닌 예수님이 바라시는 교회, 예수님이 꿈꾸시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이 제대로 된 걸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목자들 또한 깨어 기도하며 매일 매순간 거듭나야 할 것이다.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목자가 인도하는 교회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집을 내려놓고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 각자의 몫이다. 오늘 나의 삶의 원리가 믿음인가, 고집인가, 이것은 매일 반복해야 하는,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질문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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