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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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2 _김명호(지은이) / 한길사

    

    

 

중국인 이야기1권에 이어 2권에도 수많은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람이 사건을 일으키고, 사건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2권의 시작은 쑨웨이스(孫維世)를 비롯한 몇몇 여성 혁명가들이 등장합니다. 2권에선 특히 한국전쟁(6.25)과 쑨원(孫文) 및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인해전술로 이름 붙여진 중공의 한국 전쟁 참전은 한국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공의 한국전쟁(6.25) 참전

  

  

1950101, 중국은 신중국 선포 1주년을 맞이합니다. 이날 마오쩌둥은 경축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받습니다. ‘한국전 출병을 건의하는 스탈린과 “3.8선이 위험하다. 우리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다. 조선 땅에 들어와 작전을 펴달라는 북한 수상 김일성(金日成)의 전보가 도착합니다. 김일성이 3.8선이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소련과 북한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중국은 한국전 참전 결정을 내리기 위해 회의를 소집합니다. 같은 해 104일 오후 3, 중난하이 이녠당에서 마오를 비롯한 전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들이 모입니다.

 

 

 

먼저 린뱌오가 입을 엽니다. “우리는 20년간 전쟁만 해왔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해방전쟁도 끝나지 않았고 해방구의 토지개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원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과는 힘을 겨뤄본 적이 없다. 일단 출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출병불가론을 거론한 것입니다. 이때 제동을 건 사람이 펑더화이(彭德懷)입니다. 펑더화이는 국무원 부총리겸, 국방부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요직에 있었지만 마오와 틈이 벌어진 후 평복으로 갈아입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고 낙향해 있다가 한국전 참전 여부를 결정짓는 자리에 마오의 지시로 참석하게 됩니다. 펑더화이는 한반도 출병을 주장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차피 미국과는 한판 겨룰 수밖에 없다. 저들(미군)이 압록강변에 포진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온갖 구실을 내세워 국경을 교란시킬 것이 뻔하다. 늦게 싸우는 것은 일찍 싸우는 것만 못하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건설하자.”

  

  

 

스탈린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과 직접 부딪히길 꺼려합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병력을 철수한다고 이미 발표해버렸다. 전쟁터에서 미군과 충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신 공군을 동원해 엄호하겠다. 그것도 적 후방까지 들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투기 추락으로 조종사가 포로가 되거나 시신이 발견되면 국제적으로 파장이 크다.”

 

  

  

마오쩌둥의 한국전 참전은 어쩔 수 없는 결정으로 이해됩니다. 한반도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지만 소련과 북한의 등쌀에 떠밀린 상황이 된 셈이지요. 결국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조선 국적의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국전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이 됩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북벌전쟁, 항일전쟁, .공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전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조국땅을 밟습니다. 몇 개월 후 동족상잔의 비극에 투입되리라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궁금합니다.

 

 

 

쑨원(孫文)과 주변 인물들

 

 

사람 치료하는 인의(人醫)로 평생을 지내느니 나라의 환부를 치료하는 국의(國醫)를 하겠다.” 쑨원의 말입니다. 수천 년간 중국의 지도자들은 독서광이라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쑨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통증을 참아가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여자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진하게 남기고 간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관계가 복잡했습니다. 버젓이 결혼한 아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녀, 유부녀 가릴 것 없이 처와 이혼 할 것이니 결혼하자는 말을 달고 살았더군요. 쑨원은 일본 망명시절 대정객 이누카이 쓰요시와 나눈 대화가 여러 곳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루는 이누카이가 쑨원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쑨원이 답합니다. “레벌루션”(Revolution). 이누카이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지 그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혁명 말고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다시 묻습니다. 쑨원은 옆에서 차 시중을 들던 이누카이의 부인을 힐끗 보며 웃기만 합니다. 이누카이 부인이 자리를 피하자 다시 묻습니다. 그제서야 쑨원이 우먼”(Woman)이라고 답을 하자. 이누카이는 하오”() 연발하며 하나를 더 대보라고 합니다. 쑨원은 지체없이 ”(Book)”이라고 답을 하자 이누카이가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원은 혁명 그 자체로 중국인의 마음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쑨원의 독서벽은 수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하루 세끼를 싸구려 빵으로 요기를 하면서도 어쩌다 돈만 생기면 책을 사는데 망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외 망명 시절에도 짐 보따리 속에는 책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위안스카이하고는 밤이 깊도록 천하대사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쑨원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쑹자수(宋嘉樹)입니다. 후원자이자 혁명동지로 만났지만 나중에 쑹자수는 쑨원의 장인이 됩니다. 쑨원은 이미 아내가 있었지만 쑹자수의 두 딸을 넘본 바람둥이로 묘사됩니다. 쑹자수의 어린 시절은 궁핍 그 자체였지만 무작정 떠난 미국행에서 독지가를 만난 덕에 공부를 하게 되고 감리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 됩니다. 쑹자수는 사업 수완도 있어서 선교활동을 하며 인쇄소를 차립니다. 중국어판 성경을 찍습니다. 성경을 처음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홍루몽못지않게 재밋는 책이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다들 개성이 독특하고 짜임새도 뛰어나다. 시편은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경못지않다.” 이 대목을 대하다보니, 우리나라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수인들이 성경책을 이스라엘 삼국지라고 부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쑨원은 쑹자수를 만나 진정한 혁명가로 탄생합니다. 지금도 천안문광장에 가면 마오쩌둥의 초상화 건너편에 쑨원의 초상화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쑨원의 행적을 더듬어보면 중국인들이 국부혹은 중국 혁명의 선구자로 부르는 일이 이해가 잘 안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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