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푸른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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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    

   _위화 (지은이), 김태성 (옮긴이) | 푸른숲 | 2018-11-15 

    

 

위화(余華, 1960~)는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발치사(拔齒師)(책 속에선 치과의사로 나옴)로 일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 후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 《7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책은 위화가 서울,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브뤼셀, 밀라노 등지에서 했던 강연의 원고들을 텍스트로 했다. 소설가로서의 위화의 어릴 적 성장과정을 비롯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 문학에 대한 생각, 해외에서 그의 책들에 대한 평가에 대한 소견 등이 담겨있다.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은 뉴스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 위화의 책이 세계 최초로 번역된 곳은 일본이라고 한다. 이즈코 유토리 교수가 위화의 십팔 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를 일어로 번역해서 일본 잡지 현대중국소설에 실었다. 그러나 그 후 출판 상황은 한국과 비교해서 달라졌다고 한다. 한국에선 위화의 작품이 거의 번역 출간되었지만, 일본에선 모두 합해 일곱 권이 전부이다.

 

 

중국의 문혁(문화대혁명, 1966~1976)기간과 그 후의 중국작가들의 작품경향, 문단의 상황 및 민중들의 생각은 어떠했는지에 주목하며 책을 읽었다. 위화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982년이다. 문혁의 재앙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이 시절은 문학잡지의 황금기로 기록된다. 문혁 기간에 정간되었던 문학잡지들이 전부 복간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문학잡지가 새로 창간되기도 했다. 그 당시 중국에서 잡지라고 하면 거의 전부가 문학잡지였다고 한다. 신진작가들의 꿈은 그러한 문학잡지들에 원고가 실리는 것이다. 위화는 낮에는 이를 뽑고 밤에는 글을 써서 인민문학(人民文學)이나 수확(收穫)에 원고를 보냈다. 반송되어 돌아오면 다시 베이징 문학(北京文學)상하이문학(上海文學)에 보냈다. 위화의 마구잡이식 원고투고는 1987년까지 이어진다.

 

 

이 무렵 중국 문단의 새로운 기류인 선봉(先鋒)문학이 있다. 선봉문학은 기존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중국 당대 문학운동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이 실효를 거둔 198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위화가 열심히 습작을 해서 이곳저곳 잡지사에 원고를 날리던 시기와 맞물린다. 선봉문학의 대표적 기수로는 위화, 모옌, 마이완, 쑤퉁, 거페이 등을 들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문혁을 지낸 위화에겐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었다(문혁때 모두 불태워지거나 감춰졌기 때문).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산문, 시는 루쉰 아니면 마오쩌뚱의 작품이었다. 그는 중국에 작가가 이 두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후 80년대 중국에 외국 문학이 다량 번역되어 출간되면서(서양문학의 번역과 출판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고 한다)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했다. 해외문학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위화는 1983년에 처음 소설을 발표하고 2년 뒤인 1985, 몇 군데 문학잡지 편집부를 방문해보고 나서 작가들에게 더 이상 좋은 기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투고된 원고가 여러 개의 마대에 가득 담겨 폐품으로 버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2년만 더 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 저는 지금도 이를 뽑고 있을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이지요.”

 

 

문화대혁명 이후(마오쩌둥 사망 이후)중국에 나타난 새로운 문학 경향인 상흔문학’. ‘반사문학’, ‘뿌리찾기 문학을 주목한다. ‘상흔문학은 문혁으로 인한 정치적 탄압과 박해, 가족 관계의 파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파탄 따위의 인간성 상실로 촉발된 고통을 묘사한다. ‘반사문학은 상흔문학에 이어 문혁 시기의 고통과 상처를 폭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원인과 사회적 배경을 성찰하고 이에 대한 반성과 대책을 문학적으로 제시한 운동이다. ‘뿌리찾기 문학80년대 후반에 유행한 문학 유형으로, 서양문화의 급속한 수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고향의 풍속과 습속, 전설 등에서 문학의 뿌리를 찾고 중국문화를 복원하려는 향토적 경향의 문학운동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문학 분야에서 발 빠르게 대응한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책인 셈이다. 이후 중국의 문학계는 새로운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 위화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위화의 청소년 시절(문혁기간이기도 하다)의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1973년 여름, 문혁이 후기로 접어든 시점이다.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어있지만, 폭이 1미터, 높이가 2미터 정도인 서가가 두 개밖에 없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문학 서적은 30권이 넘지 않았다. 그는 마오쩌둥과 루쉰의 책이 아닌 다른 책들을 만났지만 역시 그 책들도 혁명과 반혁명의 투쟁을 소재로 한 책이라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찾는 기회가 된다. 형과 함께 종종 그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중, 대출해서 읽은 책에 작은 잉크 자국이 위화 형제가 그런 것이라고 몰아세우는(형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함)도서관 사서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거친 성격의 위화 형이 사서에게 주먹을 날리게 된다. 그 후 도서 대출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민중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는 문혁 기간 중 금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책들은 앞부분과 뒷부분에 각기 열 쪽 정도는 사라지고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없어진 그 뒤가 궁금해진 위화는 그의 추리와 상상력으로 그 부분에 이야기를 보태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훈련 아닌 훈련이 나중에 작가가 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위화의 책은 중국이외에 언어권 38개 국가에서 35개 언어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중국 서점에선 중국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작품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선 한국 문학작품이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해 현재 중국 문단을 리드해가고 있는 위화라는 작가가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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