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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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탈한 오늘

_문지안 (지은이) | 21세기북스 | 2019-01-04

 


 

2019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많이 쓴 단어가 무탈한 한해이다. 새해 그저 무탈하기를 바란다고, 몸 건강하고 마음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새해 인사말을 보냈다. 지난 시간들 속에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새해에는 뭐를 꼭 해야지. 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지나쳐서 마치 그것을 위해 살아있어야만 한다는 부담을 마구 짊어지곤 했다. 돌이켜보니 거의 부질없는 일이었다. 살아보니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었다. 그렇다고 목표 없이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계발에선 목표를 높게 잡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글쎄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삶의 전략을 바꿨다. 큰 실점만 하지말자. 세상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이겨먹으려고 애쓰지 말자. 크게 지지만 말자. 그렇게 마음을 바꿨다.

 

 


무탈하다는 말. 사전적 의미로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1) 병이나 사고가 없다. 2) 까다롭거나 스스럼이 없다. 3) 트집이나 허물 잡힐 데가 없다. 내가 중점을 두는 것은 1)번이다. 그 다음엔 3)번이고 기왕이면 2)번도 갖추고 싶다. 올해 문득 무탈에 꽂혀있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무탈한 오늘왠지 반가웠다. 그리고 나의 무탈과 작가의 무탈은 어떤 빛깔일까? 궁금했다. 다행히 공감대가 많았다.

 

 


이 책을 읽던 중 인터넷에서 이어령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올해 87세라고 하신다. 암진단을 받으셨다. 이하 이교수의 말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경천동지할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암이야. 어떻게 할까?’ 여섯 살 때부터 지금껏 글을 써온 게 전부 죽음의 연습이었다. ‘나는 안 죽는다는 생각을 할 때 너 죽어이러면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너 죽어이런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욱 농밀해진다는 말이 덧붙는다. 이교수는 방사선 치료도 항암치료도 받지 않는다(본인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는 말).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 그는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불렀다. “너는 캔서().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그래서 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지은이 문지안은 24살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해 스물두 살에 퇴학당하고(그 이유는 이야기를 안 해서 모르겠다) 스물네 살에 다른 대학(무려 서울대학)에 입학해서 평온한 생활이 시작된 지 6개월 되었을 때 암 진단을 받았다. (3000cc에 육박하는)조직을 덜어내고 다른 장기에 전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항암 치료를 거절하고 퇴원 후 학교로 돌아갔다. 잘 걷지를 못했다. 횡단보도 초록 불이 짧게만 느껴지고, 버스의 계단이 높아 보이고, 오르막길의 작은 경사가 얼마나 막막한지를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내야만 했다. “내 손으로 옷을 입고 벗고, 타인의 도움 없이 용변을 해결하고, 생각하는 바를 목소리로 전할 수 있으며, 고양이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개의 등을 쓰다 듬는 촉감을 느낄 수 있고, 봄 하늘의 푸르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오늘/ 건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무탈한 오늘, 당연한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이에게는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으며, 결국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아질 지점. 훗날 돌아보면 전성기였다고 기억할지도 모를/ 무탈한 오늘.”

 

 

앞서 소개한 이어령 교수나 이 책의 지은이나 이라는 진단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삶 자체를 생각하는 의 관점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이 교수와 이 책의지은이는 서로 나이차가 많이 날지라도 표현된 마음의 빛깔이 같은 색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지은이의 글은 차분하면서 깊다. 글을 읽던 중 가슴이 촉촉해진다. 참 고운 마음결을 가진 사람이구나, 여린듯하면서 강하구나. 매일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느낀다.

 

 

같은 음식도 어떤 모양새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미감 신경의 자극이 달라진다. 지은이는 남편과 함께 공방(애프터문)을 운영하면서 여섯 마리의 개(거의 유기견)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거의 길냥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아이들의 사진과 글들이 뭉클하다. 공방 운영자답게 나무이야기도 들어있다. 지은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하다 보니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되었다. 지은이가 201913일 인스타에 올린 글이다. “무탈한오늘이 오늘부터 온라인에서, 내일부터 서점에서 판매됩니다. 11일부터 서점을 뒤지셨다는 분들,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누워계시지 마시고 이제 일어나세요. 때가 왔습니다. 고심 끝에 잡은 이 책의 제목은 어리석은 제 친구의 한마디에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어떤 분은 무해한 것들, 무해한 오늘, 무탈한 하루, 무탈한 것들..다 검색해보셨다고 합니다. 친구는 포클레인으로 파묻어두었으니 너무 노여워들 마세요. 익히 아실 애프터문의 이야기들, 군단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이야기들, 그 중 몇과 헤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안의 음울함을 듬뿍 담은 책입니다. 귀여운 고양이 사진에 속으시면 안되요. 하여 정초부터 울적함에 빠져 고양이나 개를 껴안고 눈물을 발라대며 이불 속에 있고 싶은 극소수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껴안을 개나 고양이가 없으면 한결 울적해지니 허니버터칩이라도 미리 준비하세요

 

 

#무탈한오늘 #문지안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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