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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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의 시대 - , 사람, 언어의 기록

   _김민섭 (지은이) | 와이즈베리 | 2018-12-03 

 

 

 

중학교에 입학해서 배정 받은 교실에 들어갔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칠판 왼쪽에 거창하게 (대형 유리액자)자리 잡은 국민교육헌장이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그 헌장은 중딩 신입생의 마음을 경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잖아도 국민 학교 때와 달라진 환경에 긴장되어있던 차에 민족중흥이니 역사적 사명이니 하는 단어들을 접하면서, 그랬나? 내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던가? 왜 여태 아무도 그 이야길 안 해줬지? 더군다나 그 헌장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시험지를 나눠주고 주어진 시간 안에 그 백지를 채우라고 지시했다. 한 글자라도 틀린 아이들은 다음 날, 앞에 나와서 그것을 큰 소리로 외워야했다. 나는 다행히 책상위에 주요단어의 첫 글자를 깨알같이 적은 컨닝 메모 덕분에 앞에 나가 더듬거리며 외우는 고생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틀리는 아이들은 체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뜬금없이 왜 국민교육헌장이야기를 꺼내는가? 이 책이 바로 그와 같은 훈()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은 사실 치곤 긴 편이다. 이 책의 저자 김민섭은 2015년에 ‘3091201라는 필명으로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출간했다. 저자 스스로 개인의 고백이었다고 한다. 그 후 2016년에는 대리사회를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출간했다. 저자는 지방시를 그만두고 학교를 뛰쳐나와 대리운전 기사생활을 하며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을 이야기했다. 개인의 선언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 후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과연 개인의 고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신을 고백한 개인은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선언에 이르고, 물음표를 확장시켜 나간 극히 일부는 필연적으로 제안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때 비로소 한 개인은 고백의 힘을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 훈의 시대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을) 말로 이끌어 따르게 하는 일이고 가르쳐 깨우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저자는 학교의 훈, 회사의 훈, 개인의 훈을 욕망의 언어라는 전제하에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학교의 훈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의 149개의 공립여자고등학교와 168개의 공립남자고등학교의 훈을 모두 찾아보았다. 교훈과 교가를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높은 빈도로 쓰인 단어들은 여고는 순결’, ‘정숙’, ‘예절’, ‘배려’, ‘사랑’, ‘겸손등이고, 반면 남고는 단결’, ‘용기’, ‘개척’, ‘책임’, ‘명예’, ‘열정등이다. 부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남녀차별이 뚜렷하게 보인다.

    

 

 

기업(회사)은 어떤가? 저자가 대리 운전을 하던 중, 화장실이 급해서 들어간 모 건물의 모 건설회사의 사무실 앞에 사훈 비슷한 것을 보게 된다. 1.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2.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빨리 출근한다. 3. 우리는(.....) 월급도 두 배로 주나? “회사는 개인을 통제하고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가장 간편하고 원초적인 방식이 그 공간의 언어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저자의 글을 통해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나쁜 훈, 이상한 훈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강력한 통제의 언어다. 그 훈에 걸맞게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조직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다. ‘죽을 만큼 일해도 안 죽는다는 사훈은 죽을 정도로 부려먹겠다는 이야기? 반면 좋은 훈도 있다. 좋은 예로서는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스타트업 회사)의 훈은 훈훈하다. 이미 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업무는 수직적, 인간관계는 수평적’,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책임은 실행한 사람이 아닌 결정한 사람이 진다등등.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훈들이 남아 이 시대와 여전히 동시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야만의 언어들이,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언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몹시 모욕적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이제 폐기하고 스스로의 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대의 논리가 다시 우리를 잠식하기 이전에 주변의 훈을 바꿔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대학생도, 회사원도, 한집안의 부모들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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