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주광첸 지음, 이화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_주광첸 (지은이), 이화진 (옮긴이) | 쌤앤파커스 | 2018-11-23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볼 때, 1930년대 중국과 한국은 동일한 이유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만주사변이 발발하여 일본군과 중국 군벌군, 한국 독립 세력의 전쟁이 가장 격화되었던 시기입니다. 일차대전으로 호황을 누린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합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중,일 전쟁은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일본은 그들의 침략전쟁으로 전쟁물자가 부족해지자 중국과 한국에서 사람과 물자를 강제로 동원합니다.

 

 

어두운 구름만이 잔뜩 낀 이 시기에 한 줄기 빛을 중국 청년들의 마음속에 심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주광첸(朱光潛)교수입니다. 중화민국의 문예 이론가이자 문예비평가입니다. 현대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저명한 미학자이자 존경받는 교육자로 소개됩니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1897~1986)가 청년들을 위해 쓴 열다섯 통의 편지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책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입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볼 수 있는 을 가졌을 때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마음이 앞서야겠지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젊은 벗들 가운데 몇몇 친구들은 벌써 유명을 달리했고, 또 다른 친구들도 천재(天災)또는 인재(人災)로 학업을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또 어떤 친구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 두둑한 녹봉을 받고 있거나 출세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고 들었다저자는 이러한 소식들이 들릴 때마다, 일본이 동북3(둥베이삼성, 東北三省. 중국 동북쪽에 있는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등 3성을 이르는 말)에까지 진격하고 장쑤성 상하이를 폭격했을 때보다 더 저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헤아리다가 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생존이 왔다 갔다 하는 비상시기에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진심을 담아 미()를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소망이 있어야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술 활동은 일면 목적 없이 하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예술 자체가 목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리적인 면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경우와 비교가 된다는 것이지요. 무소위이위(無所爲而爲)는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이나 사업을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상과 감정에 대한 만족을 추구할 때 진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악한 사람은 세속적인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세속적이라 하는가? 구더기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기생하며 자기 배나 채울 뿐 목적 없이 하는 행위의 숭고하고 순결한 정신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태, 그것을 세속적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세속적인 사람은 심미적 세계에 대한 소양이 없는사람이다.”

 

 

저자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단순하다고 합니다. 바로 세속적인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세상에 묻혀 살면서 세속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심미적 세계를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인간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열게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다른 책을 쓸 때는 수십 권의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겨우 제1장을 쓸 수 있었지만, 이 책을 쓸 때는 평소 아우나 누이에게 편지를 쓸 때처럼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손에 펜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단 한 권의 책도 펼쳐보지 않고 그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책에 쓰인 글들이 결코 가볍진 않습니다.

 

 

많은 글 들 중에서 특히 노송을 보는 세 가지 태도를 주목합니다. 이 책의 핵심부분이기도 합니다. 세 가지 태도는 실용, 과학, 심미입니다. 정원에 아름다운 노송이 한 그루 있습니다. 목재상, 식물학자, 화가 이 세 명이 동시에 같은 노송을 보았다고 가정할 때, 세 명 모두 노송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세 명이 인식한 노송은 제각각 다른 이미지의 소나무입니다. 목재상의 마음으로 본 노송은 그저 몇 푼 안 되는 목재에 불과합니다. 식물학자는 식물학자의 안목으로 노송을 평가합니다. 화가가 인식하는 노송은 짙푸른 녹음과 곧은 성품을 지닌 소나무의 고고한 아름다움 그 자체로 인식합니다.

 

 

노송 한 그루를 바라봄에도 바라보는 사람의 직업과 성격, 정서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자는 특히 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름다움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 때만 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화가만이 노송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노송을 볼 때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마음과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야깁니다.

 

 

이 세 가지 태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실용적인 태도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과학적 태도는 실용적 태도와 완전히 다릅니다. 매우 객관적이고 이론적입니다. 자연스럽게 진(), (),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군요. 진선미라는 가치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것일 뿐 사물 본연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다소 주관적인 해석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관점이 배제된 사물은 그저 혼돈 속에서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입니다. 사실 용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는 어쩌면 쓸모없는 가치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저자는 에 대한 욕구를 숭고한 욕구라고 합니다. ‘는 사물의 가장 가치 있는 일면을 부각시키고, 더 나아가 심미적 경험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호령했던 영웅들 모두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성공과 실패의 역사 역시 전부 과거가 되었다. 오로지 예술 작품만이 지금도 오롯이 불후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그저 칠흑 같은 어둠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나마 이 어둠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드문드문 하늘에 흩뿌려 놓은 별빛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별빛을 소중히 여기자! 그리고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칠흑 같이 어둡기만 한 미래의 그 하늘위로 별빛을 흩뿌려 보자.”

 

 

저자는 이 책(편지글)에서 또한 예술과 삶의 차이, 미감과 쾌감, 미와 자연, 예술과 놀이, 창작과 감정, 천재와 영감, 예술과 인생 등을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부록으로 실린 근대 실험 미학도 유익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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