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두 얼굴 】 -
영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_양둥핑(저자)
| 장영권(역자)
| 펜타그램
|
원제
『도시의
계절풍』
:
베이징과
상하이의 문화 정신(城市季風-北京和上海的文化精神)
21세기는
도시의 세기라고 한다.
도시의
생명력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 될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했다.
단순히
두 도시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베이징인과
상하이인의 특성을 이야기해준다.
베이징인–상하이인,
남방–북방의
핵심적인 차이점과 함께 이 두 도시의 20세기
후반기 변천사가 담겨있다.
20세기
전반의 중국 역사는 파란의 연속이기도 하다.
19세기
40년대
무렵부터 시작된 근대화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청
왕조의 붕괴,
몇
차례의 혁명,
중일전쟁
등의 와중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
근대 문화의 대행진은 대체로 남에서 북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다시 내전(內戰)과
신중국(新中國)수립
등 격동의 역사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 혁명의 중심이 된 남방과 보수적인 북방의 대충돌 속에서 상하이는 북방과 대립하는 중국의 새로운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베이징성과 상하이시
베이징의 원주민은 황토 고원에서
동쪽으로 이동,
타이항(太行)산맥을
넘어 드넓은 화북 대평원을 발견한 뒤 그 북쪽 끝,
지금의
베이징 땅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문자로
기록된 역사에서는 2200년여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수도인 계성(薊城)이
베이징 땅에 있었던 것이 최초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원(元)왕조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1272년
2월
베이징 땅을 수도로 정했다.
베이징이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 베이징은 원(元),
명(明),
청(淸)의
세 왕조를 거치며 640여
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베이징이란
이름은 명대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상하이는
어떤가?
약
2500년
전,
초(楚)나라
재상 황헐(黃歇)이
상하이 땅에 춘신군(春申君)으로
봉(封)해졌다.
상하이의
별칭인 ‘선청(申城)’은
바로 이 춘신군에서,
그리고
상하이 한복판을 흐르는 강의 이름 황푸장(黃浦江)은
황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진정한 운명은 수운(水運)
및
개방(開放)과
연관된다.
당(唐)
천보(天寶)10년(751년),
상하이
땅에 화정현(華亭縣)이
설치되면서 비로소 행정구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은 해운의 항구로,
무역이
발달하여 이윽고 상하이진(鎭)이
출현했다.
이때
역사상 처음 ‘상하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이다.
그
후,
원(元)
왕조
지원(至元)28년(1291년)에
이르러 상하이현(縣)이
설립됐다.
상하이인이 본 베이징인
대다수 상하이인은 베이징인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실제로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아 구체적인 감정을 가져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상하이 사람들이 “베이징에
간다”라고
말할 일은 드물었다.
이는
매우 영광스런 일이요,
자랑스런
일이었다.
상하이에는
“베이징에는
정치는 있지만 문화가 없다”라고
비꼬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분명 틀린 말이지만,
상하이인은
베이징인의 정치 지향성에 대해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베이징 사람들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까지도,
다들
정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이 정치에 쓸데없이 정열을 불태우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좋아하는 베이징인
베이징 사람들의 정치 취향은
“황제의
발치에 있다”는
말이 있듯,
정치의
중심에 위치한 특수한 조건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치에
종사하며 권력을 잡는 것은 중국인들이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일인데,
베이징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도 권력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러한 바람을 품었던 셈이다.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활동은 언제나 집단 행위,
집단
이익,
집단
가치를 지향한다.
그
때문에 신베이징인들의 조직화에 대한 열정,
집단을
중시하는 가치관 등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홍위병
시절에 베이징 청년들은 사람들을 모아 단체를 수립하고 선언문을 발표하는 일에 열중했다.
이러한
청년의 자발적 조직은 결집력이 매우 컸다.
공동의
신념과 책임감 정도가 아니라,
단체에
충성을 바치는 가치관이 있었다.
상하이인이
인간관계 속에서 중시하는 것은 예의나 이익 판단 등이었지만,
베이징인은
사적인 이익만을 중요시하여 친구나 단체를 배반하는 것을 가장 경멸했다.
배반자는
심한 경우 적대적인 단체도 상대해 주지 않을 정도였고,
모두로부터
‘왕따’가
되어버린다.
베이징인이 본 상하이인
상하이인을 한마디로 설명해
보라면,
‘대(大)상하이의
(小)시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
말에는 ‘대도시에
사는 소심한 사람들’이라는
조롱이 가득 배어있다.
이
말은 베이징을 비롯한 북방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상하이에서도 곧잘 쓰이곤 하는데,
그만큼
널리 인정하는 말인 셈이다.
‘대상하이의
소시민’은
상하이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다.
베이징인이
상하이인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언급하자면,
할
이야기가 끝도 없다.
물론
대부분이 ‘소시민’을
깔보는 험담들이다.
특히
상하이 남성에 대한 베이징 여성의 비판은 통렬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상하이의
남자는 항상 고민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고,
풍채가
시원치 않아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상하이
사람들도 북방 사람들을 경멸하는데,
예를
들면 북방 사람들을 가리켜,
‘베이라오(북쪽
놈들)’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베이징 사람들이 남방 사람들을 멸시하는 공통의 호칭이 있는데,
“그
사람 상하이인이래”라고
말하면,
그
속에는 반드시 경멸의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베이징에 사는 상하이인들은 자기가 어디 출신인지 밝히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 여긴다.
이 책은 문화의 큰 테두리 안에서
거론 할 수 있는 베이징과 상하이 두 도시의 운명,
도시의
문화,
도시의
사람들과 같은 테마를 한데 모아 서술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결과물이다.
이
책은 또한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중국인들이 찾아 읽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소중한 자료가 될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