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 영원으로의 여행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2
프랑수아즈 뒤낭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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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 영원으로의 여행 _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2

 _프랑수아즈 뒤낭 (지은이) | 시공사 | 1996-10-30

 

    

1605년 뒤카스텔이라는 프랑스인이 카이로에서 미라 한 구와 두 개의 석관을 사들였다. 수십 년 뒤 프랑스 시인 장 드라퐁텐은 예술애호가이며 부호인 니콜라 푸케의 집에서 그 미라와 석관을 보고 이렇게 썼다. “케프렌 왕과 케오프스 왕비의 관(혹은 무덤)이 이상한 나라에서 이곳으로 황급히 운반되어왔다. 상당한 노력과 경비가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된 이상한 나라는 이집트다.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대군을 결성하여 이집트를 침공했다. 군사작전은 대실패로 끝났지만, 원정대에 여러 부문의 전문가를 대동해 가겠다는 그의 생각은 멋진 결실을 맺었다. 이들 전문가들은 이집트의 기념물, 동물, 식물 등에 대한 현지 자료를 수집하여 1809년과 1822년 사이에 이집트지()라는 책을 펴냈다. 고대 이집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유럽의 장식예술, 건축, 내부 장식 등에 이집트풍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공예품의 수집이 개인은 물론 공공기관에까지 파급된다. 그 가운데 미라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미라는 전적으로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예의다. 비록 전문가(방부처리사)들의 손을 빌렸겠지만, ‘나 죽거든, 나도 똑같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미라를 통해 이집트인들의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된다. 미라 제작은 B.C 3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라 처리 기술이 완성된 것은 B.C 1천 년 전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시체에 살아있는 모습을 부여하는 복잡한 기술을 터득하는 데에는 수세기에 걸친 시행착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그리스 사람들은 시체를 화장했다.

 

 

우리나라도 정세가 어지러울 때 도굴꾼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대부분 일본으로 팔려나간 문화재들이 간간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긴 하나, 국내외 어느 집 다락방이나 지하, 비밀 금고 또는 버젓이 응급실 등엔 도굴꾼들의 손이 닿은 부장품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도굴꾼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미라의 존재감엔 관심이 없다. 그 주변에 같이 묻힌 부장품들이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미라를 손상시키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났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나저나 그 미라의 주인공들 또는 미라를 만드는 일을 지시하거나 부탁했던 사람들이, 후세 사람들이 파헤쳐서 붕대를 풀고, X-ray를 찍는 등 별의별 짓을 다하는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차라리 그리스인들처럼 화장해버리고 말 걸 하지 않을까? 연구를 빙자한 허가받은 도굴꾼이라고 표현하면 넘 심한가? “미라 처리 방식은, 부장품과 마찬가지로, 무덤 속에 묻힌 사람이 생전에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려 준다. 미라 연구는 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작은 마을 내에서도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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