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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서양의 고대사학 비교
두유운 지음, 이준희 옮김 / 어문학사 / 2017년 1월
평점 :
【
중국과
서양의 고대 사학 비교 】
_두유운
저/이준희
역 |
어문학사
사학(史學)이란?
역사가
어떻게 되어왔고,
어떻게
쓰여 있는지,
곧
역사적 기록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인류가
과거에 경험한 제반 활동에 대해 역사적 진실규명과 그 관련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중국과 서양의 고대 사학에서 불후의 명저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역사서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저술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당시
역사가들이 어떤 노력과 고초를 겪으면서 역사저술을 완성했는지,
저술에
있어서 어떤 사학의 원리가 생성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두유운(杜維運)은
대만의 역사학자이다,
사학에
관한 유명한 저서들을 여러 권 남겼다.
과거,
현재,
미래
“역사는
과거의 정치이며,
현재의
정치는 미래의 역사이다.”
라는
말처럼 역사는 과거의 정치상황을 참고하여 현실 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중국과
서양은 상고시대에는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세계였다.
민족이
다르고 각자 처한 환경이 달랐지만 거의 동시대에 각기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따로
또 함께 나아갔다는 이야기다.
중국
선진(先秦)의
성철(聖哲)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지혜를 겨룰 만했고,
양한(兩漢)제국과
로마 제국은 서로 대치하는 형세였다.
저자는
사학에 관한 한 중국이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아니
매우 앞서 있었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중국은 상고시대 이래 사학이 계속해서 발전해 왔으며,
2천여
년 동안 단 하루도 끊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방세계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해서 로마 시대와 중세 및 문예부흥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학이 하나의 찬란한 학문으로 발전했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사학은 모두 이 사학의 계통에 속한다.
중국
사학과 서양 사학은 세계 사학의 최대 유산임에 틀림없다.”
19세기
중엽 이전까지 중국 사학은 독자적으로 좁은 길을 헤쳐 왔다.
서양
사학으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중국
사학 역시 서양의 영토에 유입된 적이 없었다.
한
서양학자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이
양대 문화는 역사와 전통에 대하여 모두 두려울 만큼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양자의
역사 정신은 서로가 너무 다르며,
양자의
(서로가
너무나 다른)사상계통은
너무 복잡하다.”
따라서
저자는 중서(中西)사학을
비교하여,
양자를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낼 수 있다면 양자를 초월하는 세계성의 신사학(新史學)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역사가들은
사학 자료를 어떻게 구했을까?
서양의
사학 자료 수집은 중국과 많이 다르다.
서양
고대 사학 저술의 자료는 건실하지 못하다고 한다.
이
대목은 아마도 서양의 역사가들도 인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양
근대 역사가들은 서양 사학의 발원지인 그리스의 초기 역사는 편찬할 수가 없었다.
문헌이
없었고,
기록된
사건이 없었으며,
당사자의
보고서도 없었다.
그리스
왕들이 그리스 도시를 통치할 때 그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양(여기에서
말하는 동양이란 이집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과 페르시아 지역)과
유사한 편년사를 편찬하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경험을 문헌에 기록할 아무런 동기부여도 없었으며,
그들이
애호하는 유일한 역사는 서사시가 제공한 역사일 뿐이었다.
따라서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사학이 출현될 때까지 그리스는 아직 풍부한 문자 기록을 보유하지 못했다.
헤로도토스는
주로 구전에 의거하여 『페르시아
전쟁사』를
저술했다.
그는
이집트,
바빌론,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러시아
남부,
아프리카
북부 등지를 여행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접촉한 인물의 입으로부터 지난 일들을 탐문했다.
한편
중국은 고대부터 사관(史官)을
설치하여 제때에 천하의 일을 기록했다.
몸이
요직에 있는 천자와 제후는 주변에 시중드는 사관이 있어 그 언행을 기록했다.
이른바
행동은 좌사(左史)가
기록하고,
언어는
우사(右史)가
기록했다.
중국은
과거에 연연해하는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이상적인 시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탄다면 미래보다 과거로의 여행을 더 즐기고 싶어 하지 않을까?
“역사가들은
역사가 퇴화한다고 믿었으며,
역사의
발전은 갈수록 상황이 나빠졌다.”
고대를
칭송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자연적인 내면의 움직이었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는
“옛날을
존중하고 현대를 경시하는 것은 학자들의 오랜 잘못이다”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오늘의
일이 의심나면 옛날을 살펴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거든 지난 일을 살펴본다.”라고
응수했다.
중국과
서양의 고대에서 역사가의 지위는 어떠했을까?
서양
고대 역사가의 지위는 예술가나 철학자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전문
역사가는 거의 없었으며,
장군들이
갑옷을 벗고 귀향하거나 정치가들이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면 붓을 들어 기록했을 뿐이다.
반면에
중국 역사가들은 사회에서 확실히 숭고하고 독립적인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그
수효는 특히 상세히 헤아리기 어렵다.
그
수가 상당히 많은 사관(史官)이외에도
거의 모든 문인학자들이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모두가 역사가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 기록이 전부 인간사(人間事)의
기록이며 우연히 천명과 연관되지만 이 또한 인간사의 투영된 모습이라고 표현한다.
『춘추(春秋)』를
예로 들면,
『춘추』는
인간사를 기록하면서 아울러 하늘의 변고를 기록하고 인간사와의 관계를 기록했으며,
『한서(漢書)』를
예로 들면,
『한서』
「오행지」가
기록한 것은 하늘의 천문 현상이 한 번 변할 때마다 반드시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며,
하늘과
사람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천문
현상을 기록하는 것은 전부가 인사(人事)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사를 참고 할 때,
문자
상의 간극으로 인해 고대 희랍어와 라틴어의 원문을 통해서 서양 고대 사학의 정수를 맛볼 수는 없었지만,
서양
근대 역사가들의 많은 연구 자료를 참고했다고 한다.
다소
중국 역사에 치우친 면도 없지 않지만,
중국과
서양의 고대 사학을 비교해보는 귀중한 자료이다.
사학(史學)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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