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책에 미친 바보(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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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 책에 미친 바보(개정판) 】 - 이덕무 산문집

_이덕무 (지은이), 몽우 조셉킴(Joseph Kim) (그림), 권정원 (옮긴이)

| 미다스북스 | 2011-08-04

 

 

 

“때로는 조용히 아무소리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다가, 때로는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불렀지만 그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덕무 선생이 독서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해 직접 쓴 글이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이덕무는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글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하루는 집안사람들이 아이를 잃어버려 난리가 났었는데, 저녁때가 훨씬 넘어서 관아 뒤 풀더미 속에서 찾았다. 벽에 적힌 옛글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책이 귀하던 시절 이었건만, 평생(54세)동안 읽은 책이 거의 2만 권이 넘었고, 손수 베낀 문자가 또한 수백 권이 되는데 그 글씨가 모두 반듯하고, 아무리 바빠도 속자를 쓴 것은 한 글자도 없었다.

 

 

 

 

선생은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생각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책에 몰입하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 잡생각을 섞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워낙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여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 문을 닫고 들어 앉아 글을 읽은 지 30여 년 동안 그 이름이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벼슬아치들도 알지 못했다.

 

 

 

 

선생의 나이 39세가 되던 정조 3년(1779년)에 규장각 서적의 교정 및 선사 등의 업무를 보좌하는 직책인 초대 검서관 네 사람 중 으뜸으로 선출된다. 선생이 남긴 글 중 특히 나의 독서 생활에 지침이 되는 구절을 옮겨 본다. “감당 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와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할 때에는 그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을 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면 잠시 뒤에는 억눌리고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내 눈이 제 아무리 다섯 색깔을 구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책에 대해서는 깜깜한 밤과 같다면 장차 어디에 마음을 쓰겠는가.” _‘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살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을 때, 보통은 일생에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여러 해전,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책은커녕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다섯 색깔(왜 다섯 색깔일까?)을 구분 할 수 있어도 책에 대해 깜깜하다면 장차 어디에 써먹을까? 를 마음에 담는다.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책이 주는 유익함은 무엇일까? 선생은 이렇게 권고한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책이 없다면 구름과 노을이 내 벗이요, 구름과 노을이 없다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 갈매기마저 없다면 나무를 바라보면 된다.” 사람을 찾지 말일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고 한 숨 쉬지 말아야겠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나와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며, 나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은 태평해지리라.” 이 말에 더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이덕무 선생이 ‘소설’에는 마음이 관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 중에 소설이 그 으뜸이니 자제들이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힘을 주었다. 물론 소설도 소설 나름이겠지만, 그 당시 통속 소설류에 들어있던 「완사계」 「홍불기」 「절부기」 「투필집」 「수호전」 등을 지적했다. 이 소설들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맛들이면 빠져드는 사람이 많았다. 선생은 소설에는 세 가지 미혹된 것이 있다고 했다. 헛것을 내세우고, 빈 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고, 귀신을 말하고 꿈을 말했으니, 지은 사람이 첫 번째 미혹된 것이요. 허황된 것을 감싸고 천한 것을 고취시켰으니, 논평한 사람이 두 번째 미혹된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을 등한시했으니, 탐독하는 사람이 세 번째 미혹된 것이다. 선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소설 배척론자이다. 하지만 소설의 모든 면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정과 물태를 곡진히 묘사하는 소설의 장점은 크게 인정했다. 다만 소설의 허구성과 이를 탐독하느라 시간과 가산을 낭비하는 풍토를 비판했다. 선생이 다시 태어나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면, 현재의 문학마당 중에서 현대 소설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자못 궁금하다.

 

 

 

 

 

 

‘헛되이 보내고 나면 가장 아까운 것이 세월과 정신’이라는 마음을 열두 서너 살 때부터 깨닫고, 두려움과 한스러움을 잊지 않고 살다 가신 이덕무 선생을 흠모한다. 선생은 규장각 검서관으로 시작한 관직 생활 중 사옹원 주부(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관장), 적성 현감 등의 요직을 거치는 동안 누적된 몸의 쇠약이 감기로 나타나면서 마침내 운명하심. 요즘 나이로는 한참 젊은 나이인 54세로 이 땅을 떠나셨지만, 선생의 글들은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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