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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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_김기택 (지은이) | 다산책방

 

 SNS에서 우연히 눈에 띈 포스팅입니다. “모 대학교수는 자신에게 오는 시집들은 모두 쓰레기라고 한다. 그 쓰레기들 버릴 때 우리한테 주시구려.” 포스팅을 한 사람은 개인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이 몇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군요. 우선 그 대학교수는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인가? 시를 써보기라도 했나? 아마도 SNS에서 발설한 듯한데, 그러기 전에 출판사(시인이 직접 보낸 경우도 있겠지만..)에 책을 보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책 한권을 만드는 일이 어디 장난인줄 아십니까? (나는 책 출간에는 참여하지 못했어도, 시는 좀 써봐서 쬐끔 압니다) 그 교수 머릿속엔 뭐가 들었으려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려나...속 거북함과 함께 급 궁금점이 상승됩니다

 

 

문학소년 시절에 시를 몇 편 외우고 다녔지요. 그래야만 어디 가서 문학소년 시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는 어느 결에 소년에서 청년을 지나 중년이 되었습니다. 희한 한 것은 살아오면서 새록새록 그 시어(詩語)들이 말을 건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자극시켜주고, 감성수치도 올려주고, 힘을 줄때도 있습니다. 간혹 그 시절로 돌아가는 회상의 열차도 태워줍니다. 문학작품은 그저 줄거리만 생각나게 해주지만, 시는 때로 통째로 다가옵니다.

 

 

삼십 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시에 많은 빚을 졌다. 가진 것도 없는 데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나에게 시가 찾아와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이 책의 지은이 김기택은 전업시인이 아닌, 직장인 시인입니다. 지은이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는 말 속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군요. 혼자만의 풍요로운 시간,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반가움과 즐거움, 삶을 압박하고 들볶는 괴로움을 이상한 기쁨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현실에선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도 시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즐거웠다고 고백합니다. “시는 지겹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이나 닳고 닳도록 보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들을 두근거리며 이제 막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첫 경험으로 하게 해주었다. 답답하고 좁은 시야와 숨구멍을 확장시켜주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이 되어 시인이 평소에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여 배달한 것을 펴냈습니다. 시인답게 내용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했네요. 봄기운이 나거나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시, 여름의 강렬한 햇빛처럼 열정이나 힘이 드러나는 시, 차고 신선한 가을바람이 느껴지거나 삶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하는 시, 겨울의 추위에 맞서 고통을 견디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시들을 모았습니다.

 

 

지은이가 추천한 50여 편의 시 중에서 하나 골랐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그의 사진이란 시입니다.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 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러나/ 파도 소리 같은 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에는 미움도/ 연민도 아닌 손으로 사진을 닦기도 한다/ 먼지가 덮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걸레가 닦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습니까? 시가 너무 어렵나요? 쉽진 않지만 대충 분위기 파악은 되셨지요? ‘사진 속 주인공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과 먼지가 왜 덮이는지(가리고 있는지) 걸레는 무엇을 닦으려 하는지로 마무리되는 이 시는 마음을 차분히 쓸어줍니다. 비록 아직 이승에 있지만, 내가 보고 싶다고 휘리릭 달려가서 볼 수 없는 사람도 사진 속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지은이는 이 시를 소개하는 글을 쓰며 이별은 투명인간과 같이 사는 것이라 붙였네요. 투명인간이라? 그는 나를 보고 있고, 나는 그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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