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글 -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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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글 :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

_조르조 아감벤 저/윤병언 역 | 책세상

| 원서 : The Fire and the Tale1.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불과 글은 어떻게 만나는가? 유대 신비주의에 관한 에피소드부터 시작된다. 하시디즘의 창시자 바알 셈 토브가 매우 힘든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숲속을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어느 한곳에서 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면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 방법에도 변화가 오게 된다. 그의 뒤를 이은 랍비, 또 그를 이은 랍비로 몇 차례 이어지면서, 불을 피울 줄도 모르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 장소만큼은 알고 있다고 표현한다. 더 시간이 흐르면서 장소조차도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글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랍비가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는 스토리다.

  

 

진정으로 문학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냉정하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태초의 신비가 사라지고 남은 것이 문학맞는가? 오히려 글로 전할 수 있다는 이 모든 것은 그저 기억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신비와 서사로 표현되는 불과 글은 문학이 포기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아감벤이 요구하는 현대작가의 자질은 불을 어떻게 피워야 하는지,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 물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상처의 이유를 물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언어를 응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언어를 관찰할 줄 모르고 사랑하기만 하는 사람, 자신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애가(哀歌)를 참을성 있게 읽지 못하고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송가(頌歌)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작가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물이 스스로의 존재 속에 보존되기를 욕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물은 동시에 이러한 욕망에 저항하며 짧은 순간이나마 욕망을 무위적으로 관조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창조행위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질 들뢰즈는 창조행위를 일종의 저항행위로 정의했다. 죽음에 대한 저항행위이자, 권력행사의 도구로 사용되는 정보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행위로 본 것이다. 아감벤은 오늘날 창조라는 용어가 예술가들의 활동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개인적인 불만감을 토로한다. ‘창조생산이라는 의미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 읽기의 어려움에 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우선 독서가 불가능한 글쓰기가 있는 반면 글쓰기가 없는 독서가 있다고 한다. 하물며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굉장히 유사하다고 강조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서로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읽고 쓰는 행위를 선행한 뒤 이 행위를 항상 동반하는 무언가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자, 비평가인 조르조 아감벤은 이외에도 죄와 벌의 신비와 언어의 일치성에 대해..’. ‘하늘나라의 근접성과 세상과 왕국의 유사성을 깨닫는 일’, ‘물방울 인간과 소용돌이 인간’, ‘책에서 화면으로, 책의 이전과 이후등의 글들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관점을 그리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지만 읽어나가기엔 큰 무리가 없다. 책 속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사상가들의 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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