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Km -Sound Visual Book - 젊은 아티스트 여섯 명의 여섯 빛깔 여행기
김진표 외 지음 / 시공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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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나 오래 이 책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작년의 한 케이블 TV에서 이 책이 기획된다는 얘기를 듣고 부터 줄곧 출간될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거기에는 아마 김진표의 홈페이지와 싸이월드에 실렸던 멋지구리한 사진들이 한몫 단단히 했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실력이 취미 이상의 수준인지라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그의 사진만 구경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정신이나 나얼, 임상효, 홍진경등은 모두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지만 글이나 사진, 음악을 접해본적은 없었다. 만약 나머지 사람들이 수준 미달의 것들을 넣는다고 해도 나는 김진표 한 사람만 믿기로 했다.

예약판매를 시작할때부터 주문을 해 놓고 18일날 발송되기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이 책이 지난 주말 내 손에 쥐여졌다. 어찌나 두군거리던지. 하긴 책은 언제나 나를 두군거리게 한다. 더구나 그 실채를 보고 사는 오프라인 서점이 아닌. 막상 받아보기 전 까지는 책에 대해 어떤 짐작도 할 수 없는 온라인 서점은 그 두군거림이 더하다. 박스안에는 책과 DVD 그리고 김진표와 나얼의 싸인 포스터가 들어있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집구석에 DVD플레이어가 없는 관계로 DVD를 그냥 멀뚱멀뚱하게 처다만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옷 메이커인 Thursday Island와 시공사 그리고 영수증으로 글을 쓰는 카피라이터 정신이 기획한 cmkc은 각기 예술쪽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해외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자유롭게 사진과 글과 그림을 그려와서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델 홍진경과 뮤지션 나얼, 모델 임상효, 뮤지션 김진표, 모델 홍진경, 모델 장윤주가 합류하였다.

먼저 정신. 그녀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도 영수증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예전에 그녀가 쓴 영수증 책을 사지 않은것이 백번 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게 해 주었다. 도무지 와닿지 않는 나 이거사고 저거사고 요것도 먹었어요 하는 글은 왜 쓰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갔으면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하나 보고 느낀걸 좀 적었으면 좋겠구만. 그녀는 오직 영수증을 그러 모으러 일본에 간것 마냥 감상은 뒷전이고 영수증만 스캔해서 올리기에 급급했던것 같다. 카피라이터이자 네이버 지식인을 기획한 잘나가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글 실력은 꽝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의 글을 보며 느낀것은 단 하나 일본의 물가는 참으로 옴팡지게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김진표가 간 곳은 동유럽 10개국인데 특이하게도 기차나 다른 교통수단이 아닌 직접 차를 리스해서 몰고 다니면서 여행을 했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만큼 가장 많은 사진을 실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밌는 여행기였으며 자신의 감상과 여행 정보를 적절히 믹스할줄 아는 정도의 센스를 지닌 글을 보여줬다. 하지만 종이질이 별로 좋지 않아서 김진표가 찍어온 사진들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물론 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갔다고는 하지만 사진을 조금만 더 손봐서 좀 밝게 나왔더라면 좋았을뻔 했다. 종이질은 가격에 비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가볍다는것 빼고는 사진을 실기에는 아주 최악의 종이질을 보여준다. 사진 만큼이라도 좀 반질하고 좋은 종이에 인쇄했으면 좋았을것을 싶다. 그래도 김진표의 사진과 글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평소 홈페이지에서 글 쓰는 실력을 봐 왔었지만 그때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의 김진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나니 나도 언젠가는 기차등이 아닌 차를 리스해서 가고싶은곳에 가서 며칠이고 머물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 임상효가 간 곳은 파리와 밀라노이다. 이 책을 만든 여섯 사람 중에서 아마 가장 감상적인 여행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일단 글 만으로 느껴지는 그녀는 심성이 여리고 착하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나와같은 동갑내기인가 본데 역시 그녀도 서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그녀의 글은 온통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지 얼마 안된 모양인데 그 추억과 힘든 시간들을 옮겨 놓았다. 여행기로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글들이었지만. 그냥 글 자체로만 놔둔다면 나쁘지 않았다. 다른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델들에 대해 근사한 외모를 지닌 만큼 공평하게 머리는 살짝 비어서 몸치장과 옷, 신발 가방만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선입견이었다. 임상효는 잘나고 똑똑한 여자는 아닐망정 사랑스러운 여자이긴 했으니까. 마지막에는 갈 만한 레스토랑과 쇼핑샵, 펍, 클럽등을 쫙 나열해 뒀는데 돈 참 엄청 들었겠다 싶었다. 모델이라 그런지 그녀 역시 옷과 파티를 좋아하는것 같다. 레스토랑을 하나 가도 맛이 아닌 인테리어나 패션피플들이 모이는 곳을 더 치중해서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윤주는 이번 여행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은 희망으로 가득하며 또 그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파리와 런던을 여행한 그녀는 여행기라기 보다는 그냥 사적인 글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글들을 보여준다. 요즘은 모델이 아닌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그녀는 DVD에 노래도 직접 만들어서 실었다. (알다시피 난 못들었다만) 피아노를 좋아하고 임상효와 비슷하게 사랑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는 모양인데 그녀 보다는 좀 덜 감상적인 어조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진과 그림도 몇편 실려있는데 세 여자 중에서는 가장 사진이 나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여자다.)

홍진경은 임상효, 장윤주와 함께 파리를 여행했다. 하나 특이한것은 자신의 소개를 모델로 하지 않고 서양미술사 겸임교수로 했다는것. 홍진경이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은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김치를 만들어 파는 사이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유부녀인 그녀는 여행기가 아닌 시를 썼다. 하지만 시라고 하기에는 사설에 가까워서 별로 시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생활에서 느끼는것.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해 참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글을 쓴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진표를 제외하고는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쓴 사람이다. 홍진경 역시 여행기라기 보다는 그냥 글에 가까운 글을 썼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나를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구사하는 유머같지 않은 유머가 수준급이다. 여기 글을 쓴 사람들 중에서 사진도 글도 아무것도 실지 않고 오직 글만을 썼는데 아쉽긴 하지만 특이하단 생각으로 넘기기로 했다. 여행을 가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법칙같은건 없으니까.

나얼은 자메이카로 갔다. 글 보다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많았다. 특히 사람들의 표정을 너무 잘 묘사해놔서 마치 사진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세밀화는 아니다.) 그림으로 느낌을 전달할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여행 정보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메이카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cmkm은 발의 크기인 cm와 거리의 단위인 km를 합친 단어이다. 그러니까 제각기 다른 발 사이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역시 제각각 다른 거리를 돌아다니고 거기서 느낀점을 쓴 책이다.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은 사지 않는게 좋을것이다. 도움이 되는거라고는 김진표의 글 뿐이니까. 나머지는 모두 자유롭게 자신이 담고 싶은것을 담았다. 굳이 여행기라는 말을 달지 않아도 좋을만큼 그들의 글은 사적이고 감상적이고 자유롭다. 전문적으로 글 쓰는 이들이 아니기에 아주 잘 쓴 글들은 아니지만. 매번 잘쓰는 사람들의 글만 보다가 이렇게 일반인 (작가가 아니라는 의미) 들이 쓴 글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까 위에도 지적했듯이 흠이라면 종이질이 정말 별로라는 것. 그리고 내용에 비해서는 좀 비싼 가격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DVDVD가 포함된 가격이긴 하지만 나처럼 플레이어가 없는 인간들에게는 그냥 책값으로 느껴질 뿐이니까. 내가 알기로는 협찬을 받아서 갔다가 온 것인데 시공사는 이 책으로 장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특색있고 새로운 여행기를 만났다. 기다린 시간들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만큼 훌륭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구석이 있지만.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케이스에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책뿐 아니라 DVD도 있기 때문에 선물하기도 괜찮을것 같다. 한동안 내 책 선물 목록은 유희열의 책이었는데 이제 이 책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참. 별 다섯을 준 이유는 내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 받아서 반갑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별을 주자면 넷 정도 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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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5-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히히 고쳤습니다. 한번 쓰고 읽어봐야 하는데 그냥 띡 올리는 버릇은 언제 고쳐질까요^^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머리 식히기도 좋고요^^

2005-05-23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5-05-23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저번에 말씀하신 그 책이군요..!

플라시보 2005-05-2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이히... 이제 바로 고쳤습니다. 고마워요^^

날개님. 네. 저번에 페이퍼에 썼던 그 책입니다.^^

하루(春) 2005-05-2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만 보고도 어떤 책인지 딱 알겠네요. 맘에 쏙 드시나 보군요.

플라시보 2005-05-2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너무 오래 기다려서 그런가봐요. 흐흐^^

digitalwave 2005-05-2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알기로는 협찬을 받아서 갔다가 온 것인데 시공사는 이 책으로 장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여기에 100표요 ㅋㅋㅋ

플라시보 2005-05-2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igitalwave님. 히히. 장사를 하고 싶었다면 포장보다 차라리 종이질에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을텐데 아쉬웠습니다. 글만 있다면 종이질이야 어때도 괜찮지만 사진을 담을꺼라면 조금 더 좋은 종이를 썼으면 싶었어요.

happymi 2005-05-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종이 오히려 가볍고 여행기에 적합하던데. 스케치북에 그림 그런 것 같고,
전 좋았어요.

플라시보 2005-05-2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mi님. 네 그림은 그 종이에서 보니까 정감가고 좋던데 사진은 좀 많이 어둡더라구요. 가벼운면에 있어서는 저도 좋았습니다. 책이 두꺼운데도 별로 무겁질 않아서요^^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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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은 이미 여러권의 책을 낸 유명한 작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통해 소설가 방현석의 작품세계를 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자 재미또한 처지지 않았던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재미와 깊이는 공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소설의 대부분은 아주 재밌는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잡았다 하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어치우게 만드는 재밌는 소설들. 하지만 길게 여운이 남는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것 같다. 물론 그런 소설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재미와 깊이가 함께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현석의 소설은 재미도 재미이려니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함께 하게 한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무언가 묵직하게 올라앉은 듯한 기분이다.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나는 심각하거나 가르치려고 드는 소설들은 의미가 있긴 하지만 역시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현석의 소설은 달랐다. 그는 소설의 본질중 하나인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뚜렷한 소설집을 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총 4개의 중단편으로 되어있다. 존재의 형식, 랍스터를 먹는 시간, 겨우살이, 겨울 미포만 이렇게 네 작품인데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을 전쟁을 다루고 있고 겨우살이는 전교조 문제, 그리고 마지막 겨울 미포만은 노동조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베트남전에 대해 최근에 이슈가 된 것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 비디오에서였다. 그 외에도 베트남전에 대한 영화들은 많았지만 전부 미국식 사고로 다룬것 아니면 전우애를 그리는 영화가 전부였다. 하지만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방현석은 베트남인이 본 베트남 전쟁을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베트남전때 파병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라크에 파병을 하고 있다. 평화의 수호라는 혹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방현석은 강한어조는 아니지만 꽤 깊이 와서 박히는 어조로 이 베트남전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가 지난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상기시킨다.

겨우살이는 전교조 교사에 관한 얘기이다. TV뉴스로만 보았을뿐.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전교조 문제가 그다지 들썩인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교사는 교사일뿐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교사들도 직업인이므로 역시 노동자이다라는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방현석의 글을 읽기 전 까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라고 알고 있었다. 허나 방현석은 이런 무지한 나에게 전교조 선생님들이 겪었을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들이 외치는 참교육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겨울 미포만은 노동조합에 관한 소설이다. 노동파업같은 문제 역시 TV뉴스에서만 나오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부분 그들 때문에 경제발전이 더뎌짐을 걱정했다. 하지만 전태일같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저 당장의 이익만을 보고 몸을 사릴 뿐이다.

어떻게 보면 건드리기가 상당히 껄끄러운 부분들만 골라서 소설을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단지 무겁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지금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지만 방현석은 희망을 얘기한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덮어둔다면 아무런 발전도 할 수 없음을, 그리고 지금의 당면한 문제는 당장 코앞의 시간들이 아닌 좀 더 긴 시선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상당히 창비스러운 소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기 거북하다거나 어렵지 않다. 모두들 작정이나 한 듯이 사랑에 대해. 혹은 가벼운 찰나나 젊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설들 속에서 방현석의 소설은 투박하지만 분명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다.

방현석의 소설은 마치 그가 소설속에 그린 끝까지 남는자들과 비슷하다.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사실을 가지고 방현석은 홀로 펜을 들고 투쟁하고 있다. 멋있고 근사한 그 무엇이 아닌 우리가 반드시 생각하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간만에 아주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을 만나서 참 고마웠다. 이런류의 소설을 앞으로 꾸준하게 읽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분명한것은 방현석의 책을 꼭 한권정도는 더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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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5-2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이거 읽으면서 느낀 게 많은데...90년대 소설들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에 함몰되는 와중에, 방현석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와 그 연장선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천착하는 소설을 부지런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에 좋은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할께요.

플라시보 2005-05-2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감사합니다. 실은 댓글이 하나도 없어서 상처받고 있었어요. 님의 어루만짐에 상처에 새살이 돋고 있습니다. 흐...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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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실은 알다시피 제 1회 세계 문학상 1위를 받은 작품이다. 상 받은 작품들은 많겠지만. 유독 미실이 주목을 끌었던 것은 문학사상 꽤 큰 금액인 1억원 상금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분도 지적하셨듯이 미실은 이 1억원이라는 상금을 뽑아내려는지 참으로 엄청난 홍보를 해댔다. 광고란 으례 그렇지만 워낙에 멋진 카피들에 나는 망설임없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속내로는 '그래 1억원이나 받은 작품이니 대단하겠지?' 하는 속물적 기대도 있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도대체 미실이란 작품이 어째서 상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스타작가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가난하게 사는 작가들에게는 정말 큰 금액인 1억원이라는 상금을 받을만큼 대단한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미실에 대해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유교 사상으로 인해 늘 기죽어살던 여성상을 새로 쓰는양 구는것과 그녀에게서 페미니스트적인 부분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썼던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을 다시 떠 올린다. 여자가 자유롭게 성을 즐기고 억압되지 않으면 다 페미니스트요 새로운 여성상인양 떠드는 사람들에게 묻고싶어 진다. 그것은 가리고 감추고 아니되옵니다 하던 여자들과는 다르지만 남성 판타지와 정말 한치도 닿아있지 않냐고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스스로 별 이유없이 창녀가 되었던 여주인공을 내 세워서 그러했듯 김별아도 미실을 내세워 똑같은 짓을 한다.

너무도 숨막히게 아름답고 거기다 똑똑하기까지한 여인이 성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분명 남자들에게 또다른 꿈을 꾸게 한다. 더구나 11분의 그녀나 미실의 그녀나 도무지 남자를 가리지를 않는다. 11분의 그녀가 성도착자를 만족시켰다면 미실은 한번 씻지도 않은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남자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걸 마치 성의 해방인양 외치는 것에는 정말로 할말이 없다.

여성은 무조건 남성이 치마를 들추고 팬티를 끄집어내릴때까지 어머 몰라요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이미 시대에 뒷쳐져도 한참은 뒷쳐진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남자 저남자 가리지 않고 다 상대해 주는것이 진정한 페미니스트일까? 미실은 심지어는 자기의 남동생과도 관계를 가진다. 아무리 집안 대대로 색으로써 왕실의 남자들을 모시는 것의 의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실은 바지만 입었다 하면 가리지를 않는다. 거기다 미실의 책략이랍시고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몸을 이용해서 후리는 것이다. 그게 지략이고 책략일것 같으면 근사한 외모만 가지고 태어나면 개나소나 다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성적으로 자유롭건 혹은 보수적이건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것도 미화하는 것에는 단 하나의 별도 주고싶지 않다. 오직 한남자만 알고 그 남자가 떠난 다음에는 죽으라고 수절해서 열녀문이 세워지는 것도, 남자라면 아비와 아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근친상간마저 거침없이 해대는 것을 새로운 여인상인양 추켜세우는 것도 달갑지 않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다 상대 해 주는 것 만큼 고마운 일은 없겠지만 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더없이 빛나는 육체와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소위 성적 해방이랍시고 사랑이고 개뿔이고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성적으로만 잔뜩 달아올라서 이 남자 저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것에 대해 그것이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할까?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침없이 상대하면 바람둥이 내지는 난봉꾼이라고 하면서 왜 여자는 이남자 저남자 다 상대하면 미화되는 것인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비록 소설이지만 나는 이 한권이 파올로 코엘료의 11분처럼 얼마나 더 잘못된 생각을 퍼트릴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면 아찔하다. 혹시 누군가가 이 책을 보고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오로지 지향해야할바는, 사랑 같은건 개나 물어가란 식의 성적 자유 (내가 보기에는 방종이다 만은) 라고 생각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물론 소재의 참신성에 대해서나 흔치않은 소재를 위해 작가가 자료조사를 끊임없이 했을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어느정도 칭찬받을 구석도 있다. 하지만 미실이 아무리 색으로 신하된 도리를 다 하는 여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인 여자를 뭘 그렇게 대단한양 그려놓았나 싶다. 어떻게 보면 미실은 운명을 스스로 만든 여자가 아니라 그냥 정해진 운명 (왕실의 창녀)에 한치의 반항도 없이 살아온 밋밋하고 재미없는 인물이다.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 의미있는 일이라고는 익힌 방중술을 남자들로 녹인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게 왕이건 왕의 아버지건 남동생이건 애인이건 애인의 친구이건 가리지 않고 말이다.

예전에 아빠가 내게 성교육을 하실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섹스가 목적이 될수는 있어도 수단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마도 아빠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오로지 몸이 무기인 여자. 그 무기로 입에 풀칠하고 옷 걸치고 널찍한 집에 사는 여자는 절대로 되고싶지 않다. 그건 앞으로 나도 마찬가지이며 내가 앞으로 혹시나 딸을 낳게 된다면 반드시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다. 자유롭게 원하고 즐기는 것과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 (그것도 남자들로써는 너무나 고맙게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가 되는것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겠다면 미실이 가진 아름다운 육체따위는 조금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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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5-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화끈하신 리뷰입니다.. 별 하나, 맘에 듭니다. ㅋㅋ 저자에게도 이런 말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성교육 해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부럽습니다... (아~ 신라는 근친상간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요.. 피의 순수성을 유지시키고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지요.. 고려의 왕건도 자신의 몇 십명의 부인들에게서 태어난 이복남매들을 서로 결혼시켰어요..)

nugool 2005-05-2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읽어 보진 않았지만. 별하나 정말 맘에 드는 리뷰이십니다!!! 그리고 정말 실망스럽기도 하군요. 정녕 그런 내용이었단말입니까!!

플라시보 2005-05-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흐.. 화끈이라.^^ 아빠의 성교육은 지금껏 제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배경은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은. 그걸 읽기는 상당히 거북스러웠습니다. 비록 고증에 충실하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씨족을 퍼트리겠다는 고귀함보다는 그저 미실이 성적으로 너무도 자유롭고 분방한 여성이라 그렇다는 이미지를 작가는 더 주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너굴님. 네. 제가 뭔가를 놓친게 있지 않다면 저런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그녀를 좀 더 잘 그려냈다면 반할수도 있는 인물이었겠지만. 성적인거 외에는 아무 매력도 없는 여자더군요.

바람돌이 2005-05-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플라시보님 제가 왜 웃냐고요.
지금 저 미실 읽다가 지겨워서 잠시 알라딘 들어온거걸랑요.
3분의 1쯤 읽었는데 아직은 사다함과 미실이 사랑하는 대목으로 나오는지라 아직 님이 말하는 정도까지는 안 갔는데 점점 이거뭐야 하면서 보고 있던 중이었음다.
일단 들었으니 가끔 곰탱이같은 제 성격상 다 읽기는 해야겠는데 님의 글을 보니 더 읽기가 싫어지니 어쩐답니까?
읽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이 된 바람돌이랍니다.

poptrash 2005-05-2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보고 갑니다. 저도 이 작품이 상 받은건 정말 이해가 안가요.

플라시보 2005-05-22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저도 읽는 내내 살짝 지겨웠습니다. 일단 잡은 책이니 다 읽자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 보다는 아니야 뭐가 더 있을꺼야 이럴리가 없어 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처음의 분위기를 유지(?) 하더군요. 흐.. 그래도 끝까지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왕 잡은 책이기도 하고, 또 제가 미처 발견 못한 괜찮은 부분을 님이 발견하실수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poptrash님. 님도 이 책을 읽으셨나보군요. 좋은 평가를 내린 리뷰들도 많고 평점도 괜찮은데 어째서 저는 전혀 와닿지 않은지... 하긴 그 점마저 파올로 코엘료의 11분을 꼭 닮아있긴 하더라구요.^^

로즈마리 2005-05-2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안 읽었지만, 리뷰보고 다 읽은 느낌. 게다가 저도 모르게 추천 때기게 되는 리뷰네요..^^;;

플라시보 2005-05-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 아. 이런류의 리뷰 내지는 칭찬일색의 리뷰를 쓸때면 항상 걱정이 되는게 있습니다. 나는 싫은데 남들은 좋을수도 있다는거, 또 그 반대일수도 있다는거요. 이 책은 특히나 다른 리뷰들은 모두 책이 좋다는 얘기여서 더더욱 걱정이 되네요. 흐.. 그래도 추천은 감사합니다.^^

2005-05-23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나야 단편소설들을 재밌어서 좋아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류의 단편 소설들은 읽고나면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다. 고만고만한 얘기들로 채워져있고 분량마저 많지 않은 단편들은 읽는 동안에는 재밌고 매력적이지만 막상 다 읽고나서 책을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나마 읽어 온 단편들 중에서 아직도 내게 생각나는 단편은 LAST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이다. 그 단편이 특출났다기 보다는 모두 한 주제를 가지고 단편을 썼기 때문에 아마 선명하게 남아있는게 아닌가 싶다.

권지예의 단편집 꽃게 무덤은 제목과 같은 단편을 비롯해서 총 아홉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재밌었던 것은 '우렁각시는 어디로 갔나' 라는 단편과. 좀 의미있게 와 닿았던 것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우렁각시의 경우는 재밌어서 빨리 읽히기도 했을 뿐더러 오랫동안 내게있어 풀리지 않던 일의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그 단편 하나를 읽고 난 밤을 홀딱 새워서 일 하나를 마칠수가 있었다. 예전부터 나는 그랬던것 같다.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영향을 받으면 글 쓰는 문체가 마구 달라지곤 했었다. 지금은 그 지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들은 나를 약오르게 한다. 그 약발이 얼마나 쎈지 혹은 얼마나 그럴싸 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렁각시의 경우는 상당히 사실적이었고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땅의 많은 일하는 여성이자 아내이자 엄마의 역활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과장없이 그려냈다는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번째로 내가 언급한 단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단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설가와 소설과의 관계이다.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소설을 읽다가 보면 이건 혹 작가의 경험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고민을 얘기할때 '내 얘기가 아니라 내 친구 얘긴데 말이야' 하며 애둘러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아마도 권지예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아름다운 지옥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오해아닌 오해를 좀 받았나보다. 그래서 이 단편의 내용은 자전적 소설을 쓴 작가가 겪게되는 이야기이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그녀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착각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왜 좀 더 근사하게 그려내지 못했는가 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작가에게 투정을 부린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작가인 이미지는 굳이 따지자면 자기가 쓴 자전적 소설에 51%는 진실이고 나머지 49%는 허구라고 말한다. 하긴 100%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그건 이미 자전적 소설이 아니다. 그런건 그냥 자서전이라고 하는거다. 아무튼 내가 평소에 상상해오던. 작가들은 어디까지 자신의 얘기를 쓰며 또 어디까지 허구를 넣을까. 그리고 혹시나 소설속 등장 인물들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없을까라는 궁금증에 대해 쓴 글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소설의 리뷰를 쓰면서 그동안 아주 여러번 자신의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작가들을 비난했었다. 발로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겪은 일에서만 약간씩 가지를 더 친듯한 소설은 너무나도 지겨웠었다. 특히 그것이 단편의 형태로 나타나면 주인공들의 이름과 성별만 차이가 날 뿐. 커다란 스튜 냄비에 넣고 휘저으면 그놈이 그놈처럼 보일꺼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완벽한 허구를 만드는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전혀 겪어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그린다는것. 그건 일단 시도부터도 힘들 뿐더러 막상 써놔도 진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엉터리라는 비난을 얻기 쉽상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 작가들은 좀 더 편하게, 그렇게 자신의 얘기들을 약간씩 변형해서 하는가보다. 다만 바라는게 있다면 각자 다 개성있는 글들을 썼으면 하는 것이다. 권지예의 경우 프랑스에서 공부한 경험 때문인지 유독 프랑스 관련 얘기들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물론 그녀에게 프랑스 유학은 아주 여러번 울궈먹을 수 있는 좋은 소재이겠지만 (또 그만큼 그녀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 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너무 자주 등장해 버리면 자기 얘기를 쓴다는 오명을 벗기가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집은 꽤 재밌다. 특히나 아까 위에서 말한 우렁각시와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여자의 몸 Berore & Arter도 재미있었다. 끝으로 딱 한소리만 더 해도 된다면. 제발 소설가들이 쓰는 소설속에 소설가들이 좀 안등장하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이건 이 책을 쓴 작가에게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다른 작가들에게 다 말하고 싶은 얘기다. 자신들의 직업이니 그게 가장 손쉽게 우려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평범한 사람들 주변에는 그렇게 작가들이 많이 넘쳐나지 않는다. 것도 꼭 주인공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잔소리 하나만 더 하자면 작가들의 사진과 이력들을 길게 나열하면 할 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고 나면 독자들은 어떻게 해서건 그 작가의 작품과 작가의 실제 모습을 연관시키려고 하니까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권지예씨가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것을 모른다면 저런 소리는 늘어놓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소설가는 제발 소설 그 자체로만 말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짝은 신비할 필요가 있는데 마치 연예인처럼 자신의 사진을 겉표지에다 대문짝만하게 넣는 일은 삼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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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5-1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저 이책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책인데,,
권지예란 작가를 처음 이상문학상 작품집으로 알게 되고 ,,찾아보았거든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맨 마지막 문장은 저랑 비슷한 생각이시네요,,,

stella.K 2005-05-1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플라시보님 이 책에 대해서 할 말 재대로 다 하셨나 봅니다. 이 책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하셨다니 다행이어요.
자기 전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내세운다는 건 어느 싯점에선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오명 벗기 쉽지 않죠. 주인공의 직업을 소설가로 잡는 것도 그렇고 출판사의 그런 마케팅도 그렇고.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네요. 읽으면서 후련해지는 느낌임다. 추천!

마태우스 2005-05-17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저도 사야죠...권지예는 제 관찰 대상이거든요.

마태우스 2005-05-1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사소설의 영향이 우리나라 소설가들로 하여금 자기 얘기를 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80년대의 반동으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정이현 말대로 자기 얘기만 할 거면 그게 왜 소설일 수 있는지요

플라시보 2005-05-1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아. 이책 보고 싶으셨군요. 사서 읽으시면 그다지 후회할 책은 아닙니다. 기절하게 재밌지는 않지만 읽는 내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stella09님. 추천 감사합니다. 음...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도 그런가봐요. 주인공이 소설가면 살짝 지겨워 지려고 하는^^ 거기다 작가는 그냥 이름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 나이와 성별도 모르고 싶어요. 선입견이 생기잖아요.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소설 그 자체로만 읽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우스님. 아. 권지예씨가 님의 관찰 대상이시로군요.^^ 제 생각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사소설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기 머리에서 나온 소설 (한때 침대 소설이라 말 많았던) 여류 작가들이 모두 잘 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허구인데. 또 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허구를 창조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음.. 이래저래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
조승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제목 부터가 얼마나 멋진가. 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니. 누구나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행동하는 초식 동물보다는 늘 맹수들이 좋았다. 그 당당한 생김새와 우렁찬 울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은 내 마음을 뺏기에 충분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굳이 내 생일인 5월달 대신 실제 기계에서 나온 8월달. 즉 주민등록번호 상의 생일로 별자리를 본다. (그렇게 하면 사자자리다.)

책을 받아봤을때. 난 책 표지에 또 한번 반했다. 까만 바탕에 보라색으로 반질반질한 제목이 찍힌 그 것은 강렬하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 책은 예쁜 표지와 멋진 문구. 그게 전부인 책이다. 일찌기 우리 나라에는 사람은 나거든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거든 제주로 보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떤 장소에 사는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동양의 작은나라 한국. 그 중에서도 수도 서울이 아닌 산으로 둘러쌓여 다소 보수적인 이 땅에 사는 나. 그런 나는 뉴요커들이 보면 그 도시의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지들보다 훨씬 못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썩은 준치를 먹느니 싱싱하고 물좋은 고등어를 택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이 공부 많이하고 스스로를 상당히 잘났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것 처럼 뉴요커는 아니다. 어떤 도시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급이 정해진다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의 근본은 어쩔것이냐고. 영어를 쓰고 매일 아침 크루와상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유럽 귀족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문화와 부를 체험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느냐고. 나는 노력에 따라 사람이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당신에게 만큼은 근본을 들먹이고 싶어진다. 당신은 당신이 뉴욕과 세계 패션 시장의 봉이라고 비하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다고. 마이클잭슨처럼 온몸을 표백 내지는 성형하고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눈에 파란색 콘텍트렌즈를 낀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아니라고. (물론 저자는 이러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래도 바뀌지 않는게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이다.)

메이커보다는 실용성을 주장한다는 뉴요커들. 하지만 저자가 그린 그들은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뉴요커이므로라는 자부심에 가득찬 덜떨어진 인간들이다. 정말로 뉴요커들이 그렇게까지 얼빵한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지꼴을 하고도 단지 뉴욕에 사는것으로 자부심에 심장과 폐가 잡아 터질듯한) 그런게 뉴요커라면 나는 당신이나 실컷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사는 것 보다 뉴욕공화국이라 불릴만한 그곳에 살면 훨씬 보고 듣고 느낄것도 많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은 그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이나 좀 배웠으면 좋겠다. 대체 뉴욕에 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허접쓰레기 취급할 수 있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이 글을 쓴 목적을 모르겠다. 뉴욕을 이렇게 살고 이렇게 느꼈다는 수기도 아닌것이 그저 나 뉴욕에 살아. 니들은 어디 사니? 정도밖에 안되는 글을 왜 썼을까? 타이틀이 좋아서 팔아먹긴 수월하겠다만은 입소문 타기는 당신이 내추럴 본 뉴요커가 되는것 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어릴때 내 경험 하나가 떠 오른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방학이면 식구들과 서울 친척집에 다녀오곤 했었다. 그 서울 친척집들은 청담동에서 내노라 하며 사는 사람들이기었기에 지방에서 그저 크게 먹고살 걱정 없는 우리집과는 정말로 하늘과 땅차이였다. (참고로 우리 식구가 사는 아파트는 조금 과장하면 그집 거실만했다.) 그렇게 잠시 잠깐동안 내가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체험을 하고 나면 나는 학교에 가서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너 63빌딩 가봤어? 청담동은 말이지. 청원 경찰들이 있어. 담도 얼마나 높은데... 세상에 집에 들어가니 호수랑 동산이 있더라니까. 하지만 내가 그런짓을 한건 딱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였다. 내가 정말 그들처럼 살지도 않으면서 그저 빌붙어 잠깐의 체험을 한 것으로 시골애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는 짓은 더 머리 굵고는 창피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저자를 보니 그때의 내가 떠 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뉴요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동양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뻐기지 못해 환장한것 같은 문체는 상당히 거슬린다.

물론 이 책이 완전한 쓰레기라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유럽귀족 쓰레기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나불거렸지만) 몰랐던 패션의 역사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프라다, 케네스 콜 등에 얽힌 뒷 얘기) 도 알게 되었고. 뭣보다 뉴욕이 그렇게 냄새나고 지저분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난 암만 문화고 뭐고 다 완전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더러운 곳에서는 살기 싫다. 그게 그들만의 특권인양 뻐기는데는 참 할말없다. (그래놓구서는 저자는 우리나라 시골 푸세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는 급이 다르다며 코를 감싸쥐겠지 싶어 실소가 다 나올 지경이다.)

좋은 도시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또 꿈도 많을 이 젊은이가 제발 딱 한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 그건 뉴요커건 저 두매산골에 사는 사람이건 누구건 간에 다 똑같이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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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05-1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플라시보님은 악평에 강하시군요.^^ 제목 멋지게 뽑으셨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 젊은이 이런 책을 썼대요~~ 쯔으쯔으, 세상물정을 모르는게야. [오오 첫 댓글로 올라가네요, 뿌듯!]

플라시보 2005-05-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개님. 제가 너무 삐딱하게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뉴요커가 아니라 촌스러워 그럴지도 몰라요^^) 전 이책 별로였어요. 그나저나 악평에 강하다니시니... 아 저 못됐나봐요. 으흑...

LAYLA 2005-05-1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짝짝짝짝

마냐 2005-05-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리뷰하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유로트래쉬를 찬미하는 그 철없음을 지적했는데...그래도 플라시보님 '사서 보는 책'에 넣으셨네여...^^;;
머, 후까시 있는 책이구...글도 나름 (제 코드엔) 괜찮긴 합니다만.....읽다보면, 울화가 치밀죠. 암튼, 별 하나 주셨으니 셋을 준 저보다두 훨씬 화가 나셨던거 같네요...^^;;

LAYLA 2005-05-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스프에게 밟혀 분노를 배우기 전에 알라디너들에게 분노를 배울지도...>/////<
(플라시보님 글 읽고 감동받아 책정보보고 마냐님 리뷰까지 돌고 왔습니다 음하하)

플라시보 2005-05-1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잇힝 부끄럽게..하하^^

마냐님. 아우 제목에 뻑이 가서 말이죠. 이놈의 제목 믿고 밀고가는거 고쳐야 하는데. 님 리뷰 보고서 그래도 뭔가 읽을 구석이 있으려니 싶었는데 그저 그랬어요. (아. 님 리뷰 때문이란 게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여전히 님은 제가 책을 고르는데 있어 등불 같으신 분입니다.^^) 후까시는 장난 아니게 있더군요. 흐흐. 당당하긴 한데... 아쉬웠어요. 그냥 뉴욕 기행문 같은 아니면 뉴욕에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뻐기지 않고 썼다면 좋았을텐데... (아. 그리고 원고료 오늘 입금되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꾸뻑)

LAYLA님. 으하하. 그러게요. 마냐님 리뷰 괜찮죠? 저같이 독설만 퍼붓는거 보다 훨씬 논리정연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셔요.^^

marine 2005-05-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엄청 욕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 플라시보님이 대신 해 주니까 시원하네요 저도 제목에 반해서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읽고 나니까 도서관에 미안해지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짜... 제가 보기에 얘는 기본이 안 된 놈이예요 특히 유럽 귀족 후예들의 피에 대한 숭고성 어쩌고 할 때는 진짜 책 던지고 싶었다니까요 제가 보기에도 얘는 절대 뉴요커가 아닙니다 그저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겉멋에 취한 놈이죠 차라리 다치바나 다카시 아저씨의 사색기행에 실린 뉴욕 보고서 부분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AIDS와 빈부 격차에 병들어 가는 뉴욕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들어날테니까요

플라시보 2005-05-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뉴욕이라는 도시에 한번도 가 보질 못해서 그 도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 그 도시 사람들이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내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냥 뉴욕이라는 도시는 이러한 곳이고 이러이러해서 난 뉴욕이 참 좋다 정도가 아니라 뉴욕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늬들은 이런거 모르지? 하긴 뭘 알겠어 뉴욕에 살지도 않는데' 라는 분위기라서 되게 별로였습니다. 사색기행. 그거 재밌나요? 음...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ruru78 2005-06-19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 시원하네요.저는 이 저자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굉장히shallow한 이 아이가 책을 계속내는것은 유학비조달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이딴 책같지도 않은 책이 돈이 더 아까움을 느끼려면 신영복저자님의 '강의'류를 읽어보면 더 뼈져리게 느껴질듯.암튼 플라시보님의 글 속 시원합니다.모든지 얕아만 보이고 개념이 안서보이는 이 녀석이 여기와서 이 글들이나 읽어봤음 좋겠네요.하긴 이거읽고 뭐 한국사람은 열등의식이네 뭐네 자기주관에 맞춰 간편하게 생각할 터라고 느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