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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Km -Sound Visual Book - 젊은 아티스트 여섯 명의 여섯 빛깔 여행기
김진표 외 지음 / 시공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나 오래 이 책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작년의 한 케이블 TV에서 이 책이 기획된다는 얘기를 듣고 부터 줄곧 출간될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거기에는 아마 김진표의 홈페이지와 싸이월드에 실렸던 멋지구리한 사진들이 한몫 단단히 했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실력이 취미 이상의 수준인지라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그의 사진만 구경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정신이나 나얼, 임상효, 홍진경등은 모두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지만 글이나 사진, 음악을 접해본적은 없었다. 만약 나머지 사람들이 수준 미달의 것들을 넣는다고 해도 나는 김진표 한 사람만 믿기로 했다.
예약판매를 시작할때부터 주문을 해 놓고 18일날 발송되기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이 책이 지난 주말 내 손에 쥐여졌다. 어찌나 두군거리던지. 하긴 책은 언제나 나를 두군거리게 한다. 더구나 그 실채를 보고 사는 오프라인 서점이 아닌. 막상 받아보기 전 까지는 책에 대해 어떤 짐작도 할 수 없는 온라인 서점은 그 두군거림이 더하다. 박스안에는 책과 DVD 그리고 김진표와 나얼의 싸인 포스터가 들어있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집구석에 DVD플레이어가 없는 관계로 DVD를 그냥 멀뚱멀뚱하게 처다만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옷 메이커인 Thursday Island와 시공사 그리고 영수증으로 글을 쓰는 카피라이터 정신이 기획한 cmkc은 각기 예술쪽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해외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자유롭게 사진과 글과 그림을 그려와서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델 홍진경과 뮤지션 나얼, 모델 임상효, 뮤지션 김진표, 모델 홍진경, 모델 장윤주가 합류하였다.
먼저 정신. 그녀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도 영수증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예전에 그녀가 쓴 영수증 책을 사지 않은것이 백번 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게 해 주었다. 도무지 와닿지 않는 나 이거사고 저거사고 요것도 먹었어요 하는 글은 왜 쓰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갔으면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하나 보고 느낀걸 좀 적었으면 좋겠구만. 그녀는 오직 영수증을 그러 모으러 일본에 간것 마냥 감상은 뒷전이고 영수증만 스캔해서 올리기에 급급했던것 같다. 카피라이터이자 네이버 지식인을 기획한 잘나가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글 실력은 꽝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의 글을 보며 느낀것은 단 하나 일본의 물가는 참으로 옴팡지게 높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김진표가 간 곳은 동유럽 10개국인데 특이하게도 기차나 다른 교통수단이 아닌 직접 차를 리스해서 몰고 다니면서 여행을 했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만큼 가장 많은 사진을 실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밌는 여행기였으며 자신의 감상과 여행 정보를 적절히 믹스할줄 아는 정도의 센스를 지닌 글을 보여줬다. 하지만 종이질이 별로 좋지 않아서 김진표가 찍어온 사진들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물론 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갔다고는 하지만 사진을 조금만 더 손봐서 좀 밝게 나왔더라면 좋았을뻔 했다. 종이질은 가격에 비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가볍다는것 빼고는 사진을 실기에는 아주 최악의 종이질을 보여준다. 사진 만큼이라도 좀 반질하고 좋은 종이에 인쇄했으면 좋았을것을 싶다. 그래도 김진표의 사진과 글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평소 홈페이지에서 글 쓰는 실력을 봐 왔었지만 그때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의 김진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나니 나도 언젠가는 기차등이 아닌 차를 리스해서 가고싶은곳에 가서 며칠이고 머물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 임상효가 간 곳은 파리와 밀라노이다. 이 책을 만든 여섯 사람 중에서 아마 가장 감상적인 여행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일단 글 만으로 느껴지는 그녀는 심성이 여리고 착하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나와같은 동갑내기인가 본데 역시 그녀도 서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그녀의 글은 온통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지 얼마 안된 모양인데 그 추억과 힘든 시간들을 옮겨 놓았다. 여행기로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글들이었지만. 그냥 글 자체로만 놔둔다면 나쁘지 않았다. 다른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델들에 대해 근사한 외모를 지닌 만큼 공평하게 머리는 살짝 비어서 몸치장과 옷, 신발 가방만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선입견이었다. 임상효는 잘나고 똑똑한 여자는 아닐망정 사랑스러운 여자이긴 했으니까. 마지막에는 갈 만한 레스토랑과 쇼핑샵, 펍, 클럽등을 쫙 나열해 뒀는데 돈 참 엄청 들었겠다 싶었다. 모델이라 그런지 그녀 역시 옷과 파티를 좋아하는것 같다. 레스토랑을 하나 가도 맛이 아닌 인테리어나 패션피플들이 모이는 곳을 더 치중해서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윤주는 이번 여행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은 희망으로 가득하며 또 그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파리와 런던을 여행한 그녀는 여행기라기 보다는 그냥 사적인 글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글들을 보여준다. 요즘은 모델이 아닌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그녀는 DVD에 노래도 직접 만들어서 실었다. (알다시피 난 못들었다만) 피아노를 좋아하고 임상효와 비슷하게 사랑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는 모양인데 그녀 보다는 좀 덜 감상적인 어조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진과 그림도 몇편 실려있는데 세 여자 중에서는 가장 사진이 나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여자다.)
홍진경은 임상효, 장윤주와 함께 파리를 여행했다. 하나 특이한것은 자신의 소개를 모델로 하지 않고 서양미술사 겸임교수로 했다는것. 홍진경이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은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김치를 만들어 파는 사이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유부녀인 그녀는 여행기가 아닌 시를 썼다. 하지만 시라고 하기에는 사설에 가까워서 별로 시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생활에서 느끼는것.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해 참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글을 쓴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진표를 제외하고는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쓴 사람이다. 홍진경 역시 여행기라기 보다는 그냥 글에 가까운 글을 썼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나를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구사하는 유머같지 않은 유머가 수준급이다. 여기 글을 쓴 사람들 중에서 사진도 글도 아무것도 실지 않고 오직 글만을 썼는데 아쉽긴 하지만 특이하단 생각으로 넘기기로 했다. 여행을 가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법칙같은건 없으니까.
나얼은 자메이카로 갔다. 글 보다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많았다. 특히 사람들의 표정을 너무 잘 묘사해놔서 마치 사진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세밀화는 아니다.) 그림으로 느낌을 전달할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여행 정보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메이카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cmkm은 발의 크기인 cm와 거리의 단위인 km를 합친 단어이다. 그러니까 제각기 다른 발 사이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역시 제각각 다른 거리를 돌아다니고 거기서 느낀점을 쓴 책이다.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은 사지 않는게 좋을것이다. 도움이 되는거라고는 김진표의 글 뿐이니까. 나머지는 모두 자유롭게 자신이 담고 싶은것을 담았다. 굳이 여행기라는 말을 달지 않아도 좋을만큼 그들의 글은 사적이고 감상적이고 자유롭다. 전문적으로 글 쓰는 이들이 아니기에 아주 잘 쓴 글들은 아니지만. 매번 잘쓰는 사람들의 글만 보다가 이렇게 일반인 (작가가 아니라는 의미) 들이 쓴 글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까 위에도 지적했듯이 흠이라면 종이질이 정말 별로라는 것. 그리고 내용에 비해서는 좀 비싼 가격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DVDVD가 포함된 가격이긴 하지만 나처럼 플레이어가 없는 인간들에게는 그냥 책값으로 느껴질 뿐이니까. 내가 알기로는 협찬을 받아서 갔다가 온 것인데 시공사는 이 책으로 장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특색있고 새로운 여행기를 만났다. 기다린 시간들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만큼 훌륭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구석이 있지만.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케이스에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책뿐 아니라 DVD도 있기 때문에 선물하기도 괜찮을것 같다. 한동안 내 책 선물 목록은 유희열의 책이었는데 이제 이 책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참. 별 다섯을 준 이유는 내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 받아서 반갑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별을 주자면 넷 정도 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