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
조승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제목 부터가 얼마나 멋진가. 나는 맹수의 눈을 갖게 되었다니. 누구나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행동하는 초식 동물보다는 늘 맹수들이 좋았다. 그 당당한 생김새와 우렁찬 울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은 내 마음을 뺏기에 충분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굳이 내 생일인 5월달 대신 실제 기계에서 나온 8월달. 즉 주민등록번호 상의 생일로 별자리를 본다. (그렇게 하면 사자자리다.)

책을 받아봤을때. 난 책 표지에 또 한번 반했다. 까만 바탕에 보라색으로 반질반질한 제목이 찍힌 그 것은 강렬하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 책은 예쁜 표지와 멋진 문구. 그게 전부인 책이다. 일찌기 우리 나라에는 사람은 나거든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거든 제주로 보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떤 장소에 사는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동양의 작은나라 한국. 그 중에서도 수도 서울이 아닌 산으로 둘러쌓여 다소 보수적인 이 땅에 사는 나. 그런 나는 뉴요커들이 보면 그 도시의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지들보다 훨씬 못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썩은 준치를 먹느니 싱싱하고 물좋은 고등어를 택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이 공부 많이하고 스스로를 상당히 잘났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것 처럼 뉴요커는 아니다. 어떤 도시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급이 정해진다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의 근본은 어쩔것이냐고. 영어를 쓰고 매일 아침 크루와상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유럽 귀족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문화와 부를 체험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느냐고. 나는 노력에 따라 사람이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당신에게 만큼은 근본을 들먹이고 싶어진다. 당신은 당신이 뉴욕과 세계 패션 시장의 봉이라고 비하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다고. 마이클잭슨처럼 온몸을 표백 내지는 성형하고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눈에 파란색 콘텍트렌즈를 낀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아니라고. (물론 저자는 이러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래도 바뀌지 않는게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이다.)

메이커보다는 실용성을 주장한다는 뉴요커들. 하지만 저자가 그린 그들은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뉴요커이므로라는 자부심에 가득찬 덜떨어진 인간들이다. 정말로 뉴요커들이 그렇게까지 얼빵한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지꼴을 하고도 단지 뉴욕에 사는것으로 자부심에 심장과 폐가 잡아 터질듯한) 그런게 뉴요커라면 나는 당신이나 실컷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사는 것 보다 뉴욕공화국이라 불릴만한 그곳에 살면 훨씬 보고 듣고 느낄것도 많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은 그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이나 좀 배웠으면 좋겠다. 대체 뉴욕에 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허접쓰레기 취급할 수 있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이 글을 쓴 목적을 모르겠다. 뉴욕을 이렇게 살고 이렇게 느꼈다는 수기도 아닌것이 그저 나 뉴욕에 살아. 니들은 어디 사니? 정도밖에 안되는 글을 왜 썼을까? 타이틀이 좋아서 팔아먹긴 수월하겠다만은 입소문 타기는 당신이 내추럴 본 뉴요커가 되는것 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어릴때 내 경험 하나가 떠 오른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방학이면 식구들과 서울 친척집에 다녀오곤 했었다. 그 서울 친척집들은 청담동에서 내노라 하며 사는 사람들이기었기에 지방에서 그저 크게 먹고살 걱정 없는 우리집과는 정말로 하늘과 땅차이였다. (참고로 우리 식구가 사는 아파트는 조금 과장하면 그집 거실만했다.) 그렇게 잠시 잠깐동안 내가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체험을 하고 나면 나는 학교에 가서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너 63빌딩 가봤어? 청담동은 말이지. 청원 경찰들이 있어. 담도 얼마나 높은데... 세상에 집에 들어가니 호수랑 동산이 있더라니까. 하지만 내가 그런짓을 한건 딱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였다. 내가 정말 그들처럼 살지도 않으면서 그저 빌붙어 잠깐의 체험을 한 것으로 시골애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는 짓은 더 머리 굵고는 창피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저자를 보니 그때의 내가 떠 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뉴요커가 얼마나 대단한지 동양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뻐기지 못해 환장한것 같은 문체는 상당히 거슬린다.

물론 이 책이 완전한 쓰레기라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유럽귀족 쓰레기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나불거렸지만) 몰랐던 패션의 역사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프라다, 케네스 콜 등에 얽힌 뒷 얘기) 도 알게 되었고. 뭣보다 뉴욕이 그렇게 냄새나고 지저분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난 암만 문화고 뭐고 다 완전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더러운 곳에서는 살기 싫다. 그게 그들만의 특권인양 뻐기는데는 참 할말없다. (그래놓구서는 저자는 우리나라 시골 푸세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는 급이 다르다며 코를 감싸쥐겠지 싶어 실소가 다 나올 지경이다.)

좋은 도시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또 꿈도 많을 이 젊은이가 제발 딱 한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 그건 뉴요커건 저 두매산골에 사는 사람이건 누구건 간에 다 똑같이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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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05-1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플라시보님은 악평에 강하시군요.^^ 제목 멋지게 뽑으셨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 젊은이 이런 책을 썼대요~~ 쯔으쯔으, 세상물정을 모르는게야. [오오 첫 댓글로 올라가네요, 뿌듯!]

플라시보 2005-05-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개님. 제가 너무 삐딱하게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뉴요커가 아니라 촌스러워 그럴지도 몰라요^^) 전 이책 별로였어요. 그나저나 악평에 강하다니시니... 아 저 못됐나봐요. 으흑...

LAYLA 2005-05-1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짝짝짝짝

마냐 2005-05-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리뷰하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유로트래쉬를 찬미하는 그 철없음을 지적했는데...그래도 플라시보님 '사서 보는 책'에 넣으셨네여...^^;;
머, 후까시 있는 책이구...글도 나름 (제 코드엔) 괜찮긴 합니다만.....읽다보면, 울화가 치밀죠. 암튼, 별 하나 주셨으니 셋을 준 저보다두 훨씬 화가 나셨던거 같네요...^^;;

LAYLA 2005-05-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스프에게 밟혀 분노를 배우기 전에 알라디너들에게 분노를 배울지도...>/////<
(플라시보님 글 읽고 감동받아 책정보보고 마냐님 리뷰까지 돌고 왔습니다 음하하)

플라시보 2005-05-1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잇힝 부끄럽게..하하^^

마냐님. 아우 제목에 뻑이 가서 말이죠. 이놈의 제목 믿고 밀고가는거 고쳐야 하는데. 님 리뷰 보고서 그래도 뭔가 읽을 구석이 있으려니 싶었는데 그저 그랬어요. (아. 님 리뷰 때문이란 게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여전히 님은 제가 책을 고르는데 있어 등불 같으신 분입니다.^^) 후까시는 장난 아니게 있더군요. 흐흐. 당당하긴 한데... 아쉬웠어요. 그냥 뉴욕 기행문 같은 아니면 뉴욕에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일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뻐기지 않고 썼다면 좋았을텐데... (아. 그리고 원고료 오늘 입금되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꾸뻑)

LAYLA님. 으하하. 그러게요. 마냐님 리뷰 괜찮죠? 저같이 독설만 퍼붓는거 보다 훨씬 논리정연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셔요.^^

marine 2005-05-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엄청 욕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 플라시보님이 대신 해 주니까 시원하네요 저도 제목에 반해서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읽고 나니까 도서관에 미안해지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짜... 제가 보기에 얘는 기본이 안 된 놈이예요 특히 유럽 귀족 후예들의 피에 대한 숭고성 어쩌고 할 때는 진짜 책 던지고 싶었다니까요 제가 보기에도 얘는 절대 뉴요커가 아닙니다 그저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겉멋에 취한 놈이죠 차라리 다치바나 다카시 아저씨의 사색기행에 실린 뉴욕 보고서 부분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AIDS와 빈부 격차에 병들어 가는 뉴욕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들어날테니까요

플라시보 2005-05-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뉴욕이라는 도시에 한번도 가 보질 못해서 그 도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 그 도시 사람들이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내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냥 뉴욕이라는 도시는 이러한 곳이고 이러이러해서 난 뉴욕이 참 좋다 정도가 아니라 뉴욕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늬들은 이런거 모르지? 하긴 뭘 알겠어 뉴욕에 살지도 않는데' 라는 분위기라서 되게 별로였습니다. 사색기행. 그거 재밌나요? 음...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ruru78 2005-06-19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 시원하네요.저는 이 저자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굉장히shallow한 이 아이가 책을 계속내는것은 유학비조달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이딴 책같지도 않은 책이 돈이 더 아까움을 느끼려면 신영복저자님의 '강의'류를 읽어보면 더 뼈져리게 느껴질듯.암튼 플라시보님의 글 속 시원합니다.모든지 얕아만 보이고 개념이 안서보이는 이 녀석이 여기와서 이 글들이나 읽어봤음 좋겠네요.하긴 이거읽고 뭐 한국사람은 열등의식이네 뭐네 자기주관에 맞춰 간편하게 생각할 터라고 느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