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방현석은 이미 여러권의 책을 낸 유명한 작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통해 소설가 방현석의 작품세계를 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자 재미또한 처지지 않았던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재미와 깊이는 공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소설의 대부분은 아주 재밌는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잡았다 하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어치우게 만드는 재밌는 소설들. 하지만 길게 여운이 남는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것 같다. 물론 그런 소설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재미와 깊이가 함께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현석의 소설은 재미도 재미이려니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함께 하게 한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무언가 묵직하게 올라앉은 듯한 기분이다.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나는 심각하거나 가르치려고 드는 소설들은 의미가 있긴 하지만 역시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현석의 소설은 달랐다. 그는 소설의 본질중 하나인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뚜렷한 소설집을 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총 4개의 중단편으로 되어있다. 존재의 형식, 랍스터를 먹는 시간, 겨우살이, 겨울 미포만 이렇게 네 작품인데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을 전쟁을 다루고 있고 겨우살이는 전교조 문제, 그리고 마지막 겨울 미포만은 노동조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베트남전에 대해 최근에 이슈가 된 것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 비디오에서였다. 그 외에도 베트남전에 대한 영화들은 많았지만 전부 미국식 사고로 다룬것 아니면 전우애를 그리는 영화가 전부였다. 하지만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방현석은 베트남인이 본 베트남 전쟁을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베트남전때 파병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라크에 파병을 하고 있다. 평화의 수호라는 혹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방현석은 강한어조는 아니지만 꽤 깊이 와서 박히는 어조로 이 베트남전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가 지난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상기시킨다.
겨우살이는 전교조 교사에 관한 얘기이다. TV뉴스로만 보았을뿐.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전교조 문제가 그다지 들썩인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교사는 교사일뿐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교사들도 직업인이므로 역시 노동자이다라는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방현석의 글을 읽기 전 까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라고 알고 있었다. 허나 방현석은 이런 무지한 나에게 전교조 선생님들이 겪었을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들이 외치는 참교육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겨울 미포만은 노동조합에 관한 소설이다. 노동파업같은 문제 역시 TV뉴스에서만 나오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부분 그들 때문에 경제발전이 더뎌짐을 걱정했다. 하지만 전태일같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힘없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저 당장의 이익만을 보고 몸을 사릴 뿐이다.
어떻게 보면 건드리기가 상당히 껄끄러운 부분들만 골라서 소설을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단지 무겁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지금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지만 방현석은 희망을 얘기한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덮어둔다면 아무런 발전도 할 수 없음을, 그리고 지금의 당면한 문제는 당장 코앞의 시간들이 아닌 좀 더 긴 시선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상당히 창비스러운 소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기 거북하다거나 어렵지 않다. 모두들 작정이나 한 듯이 사랑에 대해. 혹은 가벼운 찰나나 젊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설들 속에서 방현석의 소설은 투박하지만 분명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다.
방현석의 소설은 마치 그가 소설속에 그린 끝까지 남는자들과 비슷하다.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사실을 가지고 방현석은 홀로 펜을 들고 투쟁하고 있다. 멋있고 근사한 그 무엇이 아닌 우리가 반드시 생각하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간만에 아주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을 만나서 참 고마웠다. 이런류의 소설을 앞으로 꾸준하게 읽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분명한것은 방현석의 책을 꼭 한권정도는 더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