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에셔, 무한의 공간 다빈치 art 14
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외 지음, 김유경 옮김 / 다빈치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M.C. 에셔의 그림을 가끔 보긴 봤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 등장한 에셔의 그림을 보고 나서 다음번에는 꼭 그에관한 책을 한권 사 보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에셔의 그림은 다들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무한하게 공간을 메우는 그림들. 어떤것을 보느냐에 따라 나머지가 배경이 되기도 하고 또 배경이 되었던 부분에 집중을 하면 아까 봤던 부분들이 다시 배경이 되기도 하는. 그러다가 마침내 위가 아래가 되고 벽이 천정이 되기도 하는 그림부터 무한하게 지속되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까지. 그는 주로 소묘와 판화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의 그림들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수학적 유희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에는 에셔의 판화와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총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장은 에셔가 삽화가 오에이 탱 시트와 함께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하고 있으며. 두번째 장에는 에셔 본인이 강의를 위해 준비한 글들과 슬라이드 (여기서는 그냥 그림으로 인쇄되어 있다.) 를. 세번째는 에셔의 친구인 베르뮐러가 에셔에 대해 써 놓은 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두번째 장. 즉 에셔가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직접 설명을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작가 자신의 해석이 아닌 후세의 다른 사람들로 부터 설명을 듣곤 하는데 에셔는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써 놓은 원고와 슬라이드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정작 강의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 드문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작가에게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듣는것. 그것은 작품을 보는 것 못지 않은 감동을 준다.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작품에 대해 그게 미술이건 음악이건 영화이건. 해석을 해 놓은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작가가 그런것을 의도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치밀하다. 그럴때 마다 나는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예전에 나도 무언가를 하나 만들었을때 타인들이 그것을 해석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염두에조차 두지 않은 텍스트들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해석해놓은 그들의 놀라운 솜씨앞에 나는 입이 떡 벌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택도아닌 그것이 마치 대단한 의미라도 지니는양 과대평가되는 모양을 지켜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 경험 때문인지 나는 해설이나 해석을 볼때 마다 늘 그런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는 이렇게 해석이 될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에셔가 자기 작품에 대해, 직접 그리고 만든 사람으로써 정확하게 의도를 밝히고 감상 포인트를 챙겨준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에셔의 작품은 참으로 묘하다. 보통 미술 작품을 볼때 일어나는 감성 혹은 감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것은 꼭 알아서는 안되는 우주의 비밀을 살짝 엿보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단순한 눈의 착시를 이용했다기 보다 에셔는 3차원의 공간들을 마음대로 주물러서 2차원인 면에다 펼쳐놓는다. 가끔 그의 그림은 강박적으로 보일만큼 반복적이고 또 그 섬세함은 돋보기를 이용해서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섬세해서 마치 깨어지기 쉬운 유리조각을 기름칠한 손으로 들고 있는 마음이 들게도 한다. 어떤 작가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흥을 나는 에셔의 작품을 통해서 느꼈다. 그것은 위대하다던가 그림이 너무 좋다던가 대단히 잘 그렸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나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낙서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 낙서의 대부분은 그림이라기 보다는 6면체나 8면체의 공간들을 그리는 것인데. 내가 사람이나 꽃 등을 그리지 않고 그런 것들을 그리는 이유가 순전히 그림을 못 그려서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에셔의 그림을 보고나니 이런걸 제대로 그리기를 작정한 사람도 있었구나 싶어서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에셔의 책을 보는 내내 소실점이랄지 하는 미술시간에 배운 용어들이 생각났고 나는 에셔가 어디에서 중심을 잡아서 시선을 처리했는지 참 궁금했다. (그의 작품은 대게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옆도 다 뒤섞여 있다.) 판화 작업을 주로 했지만 그가 보여주는 소묘나 정밀묘사도 정말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작가의 작품을 다룬 책들은 대게 작가의 생애에 대해 주절거리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해서 싫은건 아니다만) 이 책은 이체롭게도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강의하듯 진행되는 것이 좋았던것 같다. 에셔의 그림에서 한번쯤 묘한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추천할만 하다. (그림만 봐도 본전은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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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6-0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빈치에서 나온 책들은 다 평이 좋은 것 같아 주저하지 않게 돼요. 저도 다빈치 책 몇 권 있는데 여러면에서 좋더군요.

플라시보 2005-06-0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저도 다빈치 책 몇권을 읽어봤는데 다 괜찮은것 같더라구요. (적어도 읽은 것들은 그랬어요^^) 이 책은 그림도 내용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가에게 직접 특강을 듣는 기분이었어요^^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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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들은 작가가 상상을 해서 혹은 취재나 여타 경로를 통해서 잠시잠깐 체험을 한 것으로 충분히 쓸 수 있는게 있다. 하지만 또 어떤 글들은 뼛속까지 그걸 느껴보지 못하고, 혹은 그게 삶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써 낼 수 없는 글들이 있다. 공선옥의 유랑가족은 그렇게 나눠보자면 후자 쪽이 아닐까 싶다. 잠시 잠깐의 가난. 아니면 TV화면에 보이는 가난. 그걸로는 도저히 다 써낼 수 없는 깊이의 가난을 그녀는 말한다.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란 내게 있어 최대한의 가난이라는 것은 길거리 노숙자나 쪽방 생활자들이었다. TV에서 접하는 것도 길거리에서 접하는 것도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보다 더 가난한 무언가를 생각 해 낼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선옥이 말하는 가난은 농촌의 가난이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산에 고추 농사를 지어서 사는 손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 또 한 아이가 있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도망간 엄마를 찾으러 집을 나가고 병든 아버지와 잔소리가 심한 할머니와 사는 아이는 라면을 먹고 싶지만 아까운 라면을 축낸다고 할머니에게 야단맞을 생각에 감히 라면을 먹지 못한다. 왜냐면 라면은 그들에게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난하면 떠오르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떠 올리는데 그것 조차도 여의치 않은 가난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할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게을러서 가난한거라고. 남보다 더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히 저축하면 언젠가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꺼라고.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농촌에서 태어나 엄마는 도망가고 아버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늙고 병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산다면. 매일매일 논이나 밭에 나가 허리가 휘게 일해도 겨우 감자가 많이 든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그 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고 출세해서 더이상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과거에는 그게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과외도 학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당장 서울에 있는 각 대학들의 합격률을 보길 바란다. 농촌에서 올라와서 과외나 학원의 도움 없이 입학한 아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서 열심히 공부 어쩌고 하는건. 적어도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이라도 갈 수있을때나 될 말이다. 농촌에서 초등학교도 겨우겨우 다니며 하루종일 어른 못지않게 일해야 하는 아이가 도시에서 학원을 몇개씩이나 다니고 제 학년보다 보통 1,2년은 더 앞서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따라 잡으라는건 100m 달리기에서 누군가는 출발선에 서고 누군가는 50m 지점에서 동시에 달리기 시작하는 것과 똑같다. 아니면 출발선이 같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뛰어가고 누군가는 자가용을 타고 가거나. 누구나 다 대학을 가야 하는건 아니지만. 다들 알 것이다. 대학은 고등학교때 보다 공부를 더 심도있게 하러 가는곳이 아니라 그나마 멀쩡한 직장에 취직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최소한의 관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현실은 이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다 멀쩡한 직장을 보장해주지 않아 대졸 실업자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고등학교 혹은 그 이하의 학력보다 대졸 학력을 가진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더 나은 경제적 생활이 가능하다.)

공선옥이 그려내는 가난은 남들보다 좋은옷을 못 입고,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좋은 물건을 사지 못하는 가난이 아니다. 그들의 가난은 당장 집안에 벽이 허물어져도 그 벽을 막을 수 조차 없는 가난이고 먹을것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절대적 빈곤이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면 단돈 500원에 살 수있는 라면조차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아끼느라 먹을 수 없는 가난 앞에서 우리가 여태 생각했던 가난들은 너무 추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공선옥이 말하는 가난은 정말이지 읽는 내내 불편하다. 확실히 아름답고 재미있고 유쾌한 소설들에 비해 그녀의 소설을 읽는 과정은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똥구멍이 찢어질듯한 가난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난들이 존재하지조차 않는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를 생각할때 누군가가 가졌다면 누군가는 덜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마치 의자 뺏기 놀이처럼 말이다. 의자라면 빼앗겨도 큰 탈이 없겠지만 그게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가난과 생계와 직결된 최소한의 돈이라면 우린 그걸 의자 하나 차지한것 처럼 천연덕스럽게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부자인 사람들을 뺀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것에 신경을 쓰기에도 모자란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남을 도와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해야 한다는 소리는. 어쩌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랄때 '내가 불우이웃인데 돕긴 누굴 도와' 할때처럼 내 살기도 바빠죽겠는데 남을 언제 생각하냐는 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당장 내 앞날도 불투명한데 그리고 까딱하다가는 나도 밑바닥으로 얼마든지 추락할 수 있는 위험소지가 다분한데 오지랖넓게 누가 누굴 돕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적어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돕지는 못할 망정. 아예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지지리 가난한 것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는 식의 외면은 누군가의 의자를 빼앗은 사람들로써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가난은 이제 개인의 손을 떠난 문제가 되어버렸다. 개인이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걸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농촌에서 자라 중.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또다시 도시의 노동자로 적은 임금과 높은 물가에서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 그들에게 정말 이 땅이 해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걸까? 정말로 더 큰 문제는 이 가난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부자 부모를 둔 자식이 부자가 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은 반드시 가난해지는 지금의 시스템은 마치 연좌제처럼 대를 뛰어넘어서도 그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다.

도와주지도 못할망정 걱정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 만은 적어도 눈감고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아프지만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는게 훨씬 더 나을것 같다. 그렇게 자꾸 들여다 보다가 보면 언젠가는 그게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 해결책이 나와도 나올테니까 말이다.

다소 불편하지만 추상적인 가난이 아닌. 가난을 있는 그대로 그려준 작가 공선옥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상상이나 취재 만으로는 쓸 수 없는. 뼈와 살의 경험에서 나온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글을 보여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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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5-06-0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쓰여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별 오지랖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가난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탕되고 우려먹어지는 거 정말 싫습니다. 우리의 일회용 눈물을 위해 희생되는 거 넘 잔인한 것 같아요,
님 리뷰를 보니 이 책이 무척 궁금해 집니다. ^^

플라시보 2005-06-0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 네. 저도 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우리에게 잠깐의 눈물을 위해서 써먹을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가볍게 다루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었구요. 읽어보시면 마음은 좀 답답하겠지만 후회는 안하실것 같아요. ^^
 
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여동생과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엎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무척 고무되어서 이것도 시도 해 보자 저것도 해 보자 하면서 매우 들떠 있었다. 그때 여동생이 나에게 읽으면 도움이 될 꺼라고 말한 책이 바로 권윤주의 스노우 캣 이었다. 정작 필요하던 그 당시에는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이 책을 안보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한가지 안타까운점은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도 함께 주문했는데 그 책은 품절이라는 것. (구판이 절판되어 신판을 구입했는데 그것마저 품절이란다. 쩝)

나는 여행기도 좋아하고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도 좋아한다. 물론 책이란 자고로 글씨가 빡빡해야 제 맛이지만 가끔은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성과 감정을 그림이 전달해줄때도 있다는걸 생각할때. 이런 책들은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읽어줄만 하다. 물론 한때 그림과 글이 함께하는 책들이 유행을 타서 무더기로 쏟아질때의 함량미달인 책들도 있지만. 그런 지뢰만 잘 피해간다면 실패할 일은 거의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스노우캣의 권윤주는 처음에는 스노우캣이라는 캐릭터로 혼자 뒹구르르 하는 법을 쓰고 그린 책을 냈었다.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사소한 일상에서 뭔가를 건져내는 능력이 탁월하단다. 그건 파리의 스노우 캣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심각하지 않고, 잘난척하지 않고, 따뜻하고, 귀엽고, 할랑하다. (내가 좋아하는건 다 하는구나.)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목적보다는 권윤주 혹은 스노우캣이 파리를 몇개월간 여행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표현을 해 놓았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팻 메쓰니의 연주를 보던날의 흥분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아. 키스 자렛 공연도 보면서 되게 부러웠었다.)

파리에서 그녀가 하는거라곤 혼자 거리를 걸으며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카페에 들어가서 쇼콜라 (핫초컬렛이란다.) 와 커피를 마시고 가끔은 맛있는 빵을 먹는 일의 연속이다. 그래도 은근히 유명한 곳은 다 가본다. 하지만 그걸 '나 이런곳에 갔어. 거긴 말이지. 아. 뭐라 말로 표현해야 할까. 너무 대단해. 안가보면 몰라' 라는 식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그 주위의 소소한 느낌들을 적고 거기에 있어서 행복했던 자신을 표현해 놓았을 뿐이다. 나는 이런책을 접하면 늘 생각한다. 겸손이라는게 꼭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겸손한 책을 만나면 항상 즐거워진다.

파리의 여행을 할때 이 책을 본다고 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당분간 파리에 갈 일은 없으면서 재미난 여행기와 귀여운 그림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 책이 딱이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책값이 좀 비싸다는 것. 물론 올컬러로 그림이 들어가있고 하드커버이긴 하지만 그리고 종이 질이 꽤 좋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삼천원만 내리면 훨씬 더 좋겠구만. 책이 좀 커서 (두껍지는 않다.) 드러누워 읽기에는 살짝 불편하지만 그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만큼 재밌고, 귀엽고, 할랑하다.

읽으면서 내 친구 한명이 생각이 났다. 그녀의 그림체도 스노우캣과 약간 비슷하고 그녀의 성격도 스노우캣과 조금 비슷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약간 더 심각하고 무거워져 버린 친구이다. 대학교 2학년때 그녀를 처음 만나서 나는 그녀의 할랑함에 홀딱 반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변화가 조금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다시한번 생각했다. 뭐든 심각한척 진지한척 하기의 대가인 나에게 할랑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걸 가르쳐준 고마운 친구였다.

끝으로 이 책은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다. 그림이며 글이며 남에게 별로 비판을 받을만한 구석이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면 조금 멀리하는 사람이건 이런 책은 선물해도 책꽂이에 꽂힌채로 먼지만 쌓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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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6-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가져갈게요,,

플라시보 2005-06-04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panda78 2005-06-0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 삼천원만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

플라시보 2005-06-0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nda78님. 그죠? 삼천원정도 내려도 괜찮을것 같은데... 안그라픽스 책은 거의 다 책값이 비싸더라구요.

인터라겐 2005-06-1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는 제가 좋아라 하는 분야지요... 저두 이거 보관함으로...

플라시보 2005-06-1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호호. 저랑 비슷하신가봐요. 저도 집구석에서 여행기 읽는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어쩌면 대리 만족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게을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암튼 여행기는 언제나 재밌는것 같습니다. 님께도 이 책이 재밌길 바랍니다.^^
 
Sex
폴 조아니데스 지음, 대릭 그뢰스 시니어 삽화, 이명희 옮김 / 다리미디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과거 모 사이트에 섹스 칼럼을 쓰기 위해서 구입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책이었다. 그 후 누군가가 내게 책을 선물했고 나는 앞의 몇장만을 읽은 후 곧 책꽂이에 다시 꽂아 두었다. 첫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커서였다. A4용지에 육박하는 크기에다 631쪽에 달하는 책은 평소 내가 책보는 습관인 드러누워서 보기에는 무척이나 부적합한 책이었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이유를 대자면 비교적 SEX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도 확실하다고 믿었던 나 이지만. 막상 그것이 문자화되어 무어라 주절거리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적어도 책을 다 읽기 전 까지는 그랬다.

SEX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영위할수 있는지에 온갖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남자들에 대해서는 페니스의 크기와 만족도는 전혀 상관없다는 소리를 해대고 여자들에 대해서는 좀 더 SEX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 혹은 마음가짐을 가져서 궁극의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들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분명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SEX를 할때 생각해야할 다른 부분들. 이를테면 임신이나 출산. 성병. 아이의 성교육 등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면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이다.

알다시피 섹스는 성인 남녀가 사랑 혹은 그와 무관한 다른 어떠한 이유로 즐기는 몹시 개인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지식은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그 자체에만 집중이 되어있다. 섹스를 할때 혹시라도 감염이 될지 모르는 성병이랄지 임신과 같은 것은 마치 없는 일인것 처럼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입받아왔다. 하긴 막 섹스를 하려고 하는데 성병이 생기면 어쩌나 혹은 원치않은 임신을 하면 어쩌나를 생각하는 것은 로멘틱한 분위기를 상당히 방해한다. 그러나 그 로멘틱한 분위기라는 것을 위해 무시하기에 섹스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동반할수도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배우지 못했고 또 생각하거나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이 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를 붙이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의 대부분은 법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알아두어야 할 일들에 대해 잔뜩 적어두었다. 19세의 나이라면, 섹스란 그저 남녀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행하는 개인적 행위일 뿐이라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이미 섹스를 했을수도 있는 나이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19세 이전에 섹스를 경험했다.) 어떻게 보면 나처럼 나이가 든 성인보다 오히려 이제 막 섹스를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 물론 나이가 들어도 섹스에 대해 그저 몸이 하는 행동일뿐 머리나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며. 나 역시 그 중 하나임을 고백하는 바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식욕과 버금갈 정도로 (그렇게까지 자주는 아니겠지만)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섹스라는 것임을 감안할때.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좋은 음식이며 올바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법에서 요즘은 웰빙 어쩌고 하면서 유기농식에 대해서까지 떠들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도 욕구라는 것에 있어 별반 뒤지지 않는 섹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함께 하면 저절로 모든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질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해서 섹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답은 NO다. 단지 섹스가 성기로 이루어지는 성교라고만 생각한다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교적 성에 대해 개방적인 부모를 두웠지만 내가 부모로 부터 받은 성교육은 실질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관념에 관한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경우 섹스를 목적으로 사용하되 수단으로는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 주었고 어머니의 경우는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섹스를 할때는 반드시 피임을 하라고만 말했다. 아버지의 충고는 내 성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어떤 생각을 마련하게 해주었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때 나는 어머니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은 다음 부분을 직감으로 느꼈다. '내 딸이 섹스를 한다는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요즘 애들은 다들 그러니까 일단 한다고 인정은 하마. 그렇지만 어리석게 임신따위는 하지 말아라. 그럼 너는 수술대위에 오를수도 혹은 미혼모가 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피임은 꼭 해야해. 하지만 피임법은 니가 알아서 찾아보아라' 우리 어머니의 경우 내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때 케잌까지 사가지고 와서 축하를 해 주었지만, 그래서 일면 성에 대해 상당히 올바른 교육을 한것처럼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케잌과 떠들석한 축하 대신 내가 임신을 할수도 있고, 더불어 임신이 되는 섹스를 할수있는 육체적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섹스에 대한 모든걸 혼자 생각하고 혼자 터득했다. 그게 너무 당연한거라고? 그럼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혼자 생각하고 터득한것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빠트렸는가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비록 19세미만 구독불가를 붙이고 나왔지만 (아마도 그것은 상당히 노골적인 삽화때문이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만은 책의 제목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남녀라면 나이를 막론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섹스가 단지 남녀 혹은 동성간에 즐길 수 있는 육체적 기쁨에 관한 행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토록이나 두터운 책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계속 말한다. 다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다른책들을 참고하거나 혹은 다른 기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라고 말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는 섹스에 대해 이토록이나 길게 주절거리다니 놀랍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631쪽의 설명으로는 택도없이 부족한 것이 섹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비록 SEX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단순히 더 즐겁고 더 강하게 즐기기 위한 SEX가이드북만은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비록 좀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이 책은 장애우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상당 부분을 질병과 임신(혹은 낙태) 출산(그 후의 입양 혹은 육아) 등. 섹스에서 파생될 수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미 성생활을 10년을 즐겼건 20년을 해왔건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이 섹스를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631페이지로는 택도없이 짧은게 인간의 섹스, 혹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문제이다.

덧붙임 : 책을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을 딱 두권을 만났었는데 하나는 아시모프의 바이블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책이다. 앞으로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의 리스트가 더 늘어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 리스트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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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6-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자극이 되는군요 ㅡ..ㅡ;

플라시보 2005-06-1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섹스를 하고있건 하고있지 않건간에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모든 자기개발이라던가 그런 책들은 많이 읽으면서 정작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저절로 알게되길 기다리는게 좀 이상한것 같아요. 이것도 분명 생각 내지는 공부가 필요한데 말이죠.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교이지만 무신론자는 아니다. 신은 있다고 생각하며, 느낀적은 없지만 아마도 있을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그 신의 형태가 예수나 하나님, 부처님, 알라 등등의 형태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신의 경지라 함은 인간의 사고체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더구나 그 신의 형태가 너무도 인간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끔은 소나 다른 형태의 신을 믿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땅을 떠나 본 적이없다. 다만 TV를 통해서 그리고 가 봤다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미국이, 일본이, 영국이, 아프카니스탄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우주를 봤을리는 만무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나는 달에 가 본적도 없다. 그러한 나의 사고는 몹시 편협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 넓은 우주에서 마치 나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생각하는양 살고 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 넓은 우주에서 사고가 가능한 존재가 오직 인간이라면 그 얼마나 공간 낭비겠는가.

외계인도 있을 수 있고 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단지 있다고 생각할 뿐 만난적도 없고 뭔가 신세를 지고픈 생각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혹은 인류를 구원해주고 뭔가 해결해줄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만났을때 내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왜 그들은 믿지 않는 나보다도 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있으니까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왜 믿을까? 과연 예수나 하나님이 뭔가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테면 천당)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예수를 믿으며 따르고 사랑할까?

이 책은 내가 예전부터 늘 생각했던 문제들을 다시한번 짚어준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이란 너무도 인간적이다. 그들은 질투를 하며 믿고 사랑하라고 하면서 대신 천당과 내세를 보장해준다. 이것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나 인간적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신이 그렇게 인간의 사고에서 이해할 만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그 신이 바라는 것이 너무도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신이 그렇게 인간적이라면, 또는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 가능한 무언가라면 우리가 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건 아닐까?

책은 성경에 적힌것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을 한다. 내가 기독교인들에게 들었던 성경의 해석은 너무나도 그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성경 조차도 신의 말씀인지 잘 모르겠다. 왜냐면 그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인간이 외국어로 쓴 것도 번역을 하면 그 뜻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신의 말을 사람이 옮겼을때 전혀 실수가 없었을까? 또한 성경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쓴 것을 모은것이고, 그 중에서도 누락된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질문을 했을때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이 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 베껴쓰고 또 베껴쓰면서 늘 성령이 임해서 단 한치의 실수도 없었을까? 아니 그보다 왜 신이 직접 쓴게 아닌 인간이 그걸 써야만 했을까? 모세의 십계명을 보자면 돌판에 신이 직접 쓰질 않았는가. 성경은 길어서 다 못썼다는 변명은 말도 안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며 그 해석에 따라 혹은 원본 자체가 틀린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들은 내 얘기를 들으면 언제나 사탄과 마귀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사탄도 마귀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너무나 확고한 믿음 앞에서는 무서워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신이 말하는 기쁨과 신이 말하는 고통역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라 신도 인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만큼 내게는 이상한 것이지만. 그들은 이미 눈을 닫고 귀를 막고 믿으므로 그 눈을 뜨고 귀를 열게 할 힘이 없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믿음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믿고 있는 형태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을 가한다. 다만 책은 예를 들때 조금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이게 누굴 바보로 보나?' 하는 마음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한번이라도 그들이 그들의 신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정말로 나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찾는 계기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민과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기독교인들이 읽었을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쁠수도 있겠지만. 신은 있다고 믿되 그 신의 형태도 모르겠고 바라는것도 없는 내 경우에는 흥미롭게 잘 읽었다.

끝으로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 하나님은 맨날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 질투가 많은걸까?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하고 다른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 바로 불지옥행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말하는 자비라는 것이 오직 자신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어야만 발휘되는 조건부 자비라면 그게 정말로 자비이고 사랑일까? 설사 인간은 그런다 하더라도 신이 그렇다는 것은 너무 매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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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5-05-3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덞살 때 였던가 ? 선물 준다는 누군가의 꼬임에 이끌려 교회에 다닐 때 성경공부하는데 그러더라구요. 하느님은 기도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그래서 그날로 안 갔어요. 죽기전에 한 번 와서 기도 드리면 천당 가는거잖아 ??
그러 면서요... 내탓이요 내 팃이요 가슴치는 성당도 그 뜻은 거룩하오나 웬지 억울해서 못 가겠고... 현대식으로 엘리베이터에 pc룸 가지 설비된 요즘식 절은 웬지 절맛이 안나 못 가겠더라구요, 절은 선방에 앉아 참선 하는 맛인데.... 절이 사람 찾아 산에서 고을로 내려오듯 신도 인간 찾아 인간 자리로 내려오시는 듯 합니다. ㅎㅎㅎ
신은 존재하겠지만 신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신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

플라시보 2005-05-3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절은 엘리베이터에 PC룸까지 있나봐요. 저도 님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신은 존재하겠지만 신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신 그 자체만 존재한다구요.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면 그 형태나 뜻은 인간이 알 수 있는게 아닐꺼라구요. 우리가 이해하고 다 안다면 이미 신이 아니겠지요. 아님 우리가 신이거나 흐흐..

코마개 2005-05-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저희집이 모두 예수쟁이 인데 저만 어쩔 수없이 끌려서 한 두번 가는 정도인데 제가 교회가서 느끼는 답답함의 근원을 파헤쳐 주는 책이더군요.

마냐 2005-05-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헷. 그런데 왜 별이 셋밖에 안되여? ^^

moonnight 2005-05-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저역시 특정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신은 있으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크리스천들의 (제가 보기엔;;과격하고 무섭기까지 한 믿음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NMCP 2005-05-3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이나 인종주의나 종교원리주의나 과격한 건 그 주의보다는 사람들이죠.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관대해도 자기를 틀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불 같이 분노하는 게 인간 아닌가요. ^^

플라시보 2005-05-3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저도 고모손에 이끌려 한동안 교회를 다녔었지만 저런 의문을 가지고 도저히 교회라는 곳에 몸담기가 힘들어서 대학에 들어가고 부터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진작에 저런 책을 읽었었더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냐님. 히...별이 셋인 이유는요. 책이 좋기는 했지만 뭐랄까 예를 너무 이상하게 들어놨더라구요. 이를테면 하나님만이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아이가 자기 아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예를 들었는데 그걸 한페이지 넘게 해 놨더라구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믿는 사람들이 보면 되게 자존심 상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을 셋 줬어요. 흐흐... 예들이 너무 길고 지나치게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죠.

moonnight님. 제가 교회를 다녀본 결과.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것과 성경,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서 의문을 품는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의문을 품는것은 사탄이요 마귀의 꾐에 빠진것으로만 보더라구요. 그래서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과격하게 전도를 하는지. 혹은 과격하게 믿는지... 어떤 것이건 간에 비판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이나 학문이나 종교는 과격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thezine님. 네. 믿음이건 뭐건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하면 외부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죠. 일단 님 말처럼 불 같이 분노하고 보니까요. 조금만 더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