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
존 C. 머터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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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흔들렸다. 자연재해라곤 태풍만을 걱정하고, 걱정해도 충분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주지진은 진도 5.8 이상의 충격을 남겼다. 정부는 건축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2017년부터 현행 3층 이상의 건축물에서 2층 이상의 건축물까지 확대하는 등 건축물의 구조 안전 강화를 위해 다방면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상당수의 건물이 지진에 취약한 것은 변함이 없다. 올해 발생한 경주지진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가져왔지만, 다행히 사망자까지 발생하진 않았다. 경주지진은 자연재해에 그쳤지만, 미래에 찾아올 다른 자연재해는 언제든 재난이 될 수 있다.

지진학자인 저자 존 C. 머터는 자연재해가 어떻게 재난이 되는지를 말한다. 자연재해는 자연적으로 언제든 일어나는 일이지만, 재난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모든 자연재해가 재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재해가 위력이 적어서, 혹은 운이 좋아서, 사회가 대비를 잘해서 재난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재해를 재난으로 만드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재난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사회이다. 존 C. 머터는 자연과학의 관점에선 재난을 이해할 수 없고, 사회과학의 관점에선 재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경계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동시에 바라본다.

두 나라에 거대한 지진이 찾아왔다.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은 진도 8.8로 기록되었다. 아이티 공화국에서 발생한 지진은 진도 7.0로 기록되었다.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은 아이티의 지진보다 1,000배 강한 지진이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이 더 심각한 자연재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재앙은 아이티 공화국에 내렸다. 1,000배 약한 지진을 겪은 아이티 공화국에서 1,000배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이티와 칠레의 차이는 부실한 건물들, 무력한 정부, 심각한 빈부격차였다. 아이티 공화국 안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지역과 가난한 자들이 사는 지역의 피해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아이티 공화국의 지진은 재난이었고, 분명히 사회적인 재난이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쳤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은 유독 뉴올리언스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뉴올리언스는 미국 내에서 흑인차별이 심한 지역 중 하나이고, 빈부격차 역시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인에게, 더 자세히 말하면 흑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과 부유한 백인이 사는 지역의 차이는 칼로 자른 것 같았다. 정부는 대응하지 못했고, 언론은 편견을 심화시켰다. 관동 대지진에서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것처럼, 언론은 뉴올리언스에서의 무정부적 파괴의 책임을 흑인에게만 전가시켰다. 카트리나 이후 가난한 흑인들 대부분은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마크 모리얼은 뉴올리언스 되살리기의 초안이 "토지 약탈을 두고 벌인 대대적인 붉은 선 긋기"였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은 재건에서 아예 제외됐다. 재건을 하지 않는 지역은 물으나 마나 "골칫덩이 인간들"이 살던 주거지였다. 오직 지배층의 사업을 위한 기본 계획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계획을 "공화당식 인종 청소"라고 불렀다. - p.242


존 C. 머터는 건전한 사회에서 자연재해는 창조적 파괴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사회는 자연재해를 극복할 더 나은 설비와 제도를 만들어내고, 시민들은 재해를 딛고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사회 구조와 격차, 기존에 있던 부조리,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재난을 가져온다. 사회의 불평등이 클 수록 재난의 규모는 커진다. 불평등이 재난을 만든다. 그리고 재난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재난이 발생한 곳에서 가진 자는 재난을 이용해 더욱 돈을 번다. 복구 비용이란 명목 하에 집행되는 예산들은 직접 피해를 받은 가난한 자들이 아닌, 멀리 피신해 있던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아이티에 지원된 국제기금 중 90%가 넘는 금액이 미국 기업에 돌아갔다. 뉴올리언스의 재건사업을 맡은 기업들은 부시와 연관이 있었다.

자연재해는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만 자연적이다. 재해 이전과 이후의 상황과 결과는 순전히 사회적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더 큰 지진이 온다면 우리 사회는 얼만큼의 피해를 받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재해로 그칠지, 재난이 될지는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연재해를 대비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이후 창조적 파괴의 단계로 이끌 수 있을수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가난한 자,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희생되고 난 뒤에도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되지 못한 채 계속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자연재해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던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연재해는 재해 이전의, 그리고 이후의 대한민국이 헤븐조선인지, 헬조선인지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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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종의 탄생 - 인종적 사유의 역사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8
마이클 키벅 지음, 이효석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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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색상의 크레파스를 놓고 "모두 살색입니다." 라고 말하는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살 색이라고 인정되는 색만이 살색으로 명명되던 기존의 사회적 차별을 잘 보여주는 좋은 광고였습니다. 그 광고에서 당연하다는듯이 말하고 있는 전제 중 하나는, 살 색이 세 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살색 크레파스 중 어느 것이 자신을 의미하는지 골라보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흰색도, 검정색도 아닌 색의 크레파스를 고를 것입니다. 하지만 300년 전, 혹은 500년 전의 유럽 사람들에게 동아시아인들의 살색 크레파스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흰색 크레파스를 골랐을 것입니다.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수많은 탐험가들, 상인들, 대항해시대의 여러 초기 기록들은 동아시아 사람들을 백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기록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피부색은 점점 변했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은 이제 황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가, 갈색, 올리브색, 짙은 색, 흑색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 만들어졌습니다. 동아시아 사람의 피부색은 황색이란 개념입니다. 저자 마이클 키벅은 황인종이란 개념은 정말로 동아시아인들의 피부색이 황색이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 아닌, 유럽인들의 인종차별적 경계짓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체계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은 동물이나 식물 뿐 아니라 인종의 구분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종을 구분짓는 과정에서 백색성, 흑색성이 등장했습니다. 백색성에는 서구의 지적, 문화적, 종교적 우월성의 상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유럽 모험가들이 처음 만난 중국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을 백인으로 표현한 것은 그들의 물질적 풍요, 국력, 높은 수준의 세련된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에게 백색은 문명화될 수 있는 색,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는 색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힘들어지고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은 변화했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을 구별짓기 위해 수많은 색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유럽인들에게 받아들여진 색은 황색, 그리고 몽고인종이라는 개념입니다. 마이너스와 블루멘바흐가 모든 동아시아인을 몽고인종으로 지칭함에 따라 동아시아인들은 백색 유럽인들과 구별되어졌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다수의 동아시아인들이 서양으로 이민을 가면서 서구 사회와 충돌했고, 러일전쟁에서 서양국가인 러시아가 동양국가인 일본에게 패배했습니다. 이런 동양에서 불어오는 위협을 서구는 몽고, 황화란 이름으로 이해했습니다. 훈족의 왕 아틸라, 칭기즈칸, 티무르와 같은 동양에서 온 침략자들의 역사는 이런 유럽인들의 개념을 뒷받침해줬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은 다시 돌아온 침략자들이었고, 자신들과 다른 색이어야 했습니다. 동아시아인, 몽고인종은 백색이 아닌 흉물스럽고 추함의 보편적 상징으로 인지되었고, 몽고눈, 몽고반점, 몽고증(다운증후군) 등의 실체적 현상을 통해 이런 차별적 편견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대상자가 '실제로' 황색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측정 사례의 초점은 결국 '다른' 인종들은 '정상' 인종과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물론 이 '정상' 인종이 인류학자 자신이 소속된 인종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p.166


고고학의 최대 사기 사건 중 하나인 필트다운 사건도 이런 유럽인들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아시아와 아프리카는 태고의 백색 유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퇴화된 지역이며, 당연히 유럽에서 최초의 인간 화석이 나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백색성과 아름다움, 문명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혈액형 분류법처럼 아무 근거도 없는 사이비 과학이지만, 그것은 인종주의의 악독한 한 가지 형태로 이후 나치의 사상에 이어졌습니다.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색으로 구현화되고, 다른 피부색은 잠재적으로 위험하고 위협적인 인종이라는 개념은, 백인종, 흑인종 그리고 황인종이라는 도식화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색의 구분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며, 다른 피부색에 대한 두려움 혹은 공포심을 가지고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은 우리 자신 역시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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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위대한 역설 - 프랑스 여성참정권 투쟁이 던진 세 가지 쟁점 여성.개인.시민
조앤 W. 스콧 지음, 공임순.이화진.최영석 옮김 / 앨피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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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기를 휘날리며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1789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니콜라 드 콩도르세와 올랭프 드 구주 등의 여성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은 150여년이나 지난 1944년이었습니다.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191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덴마크, 캐나다, 러시아, 독일, 영국, 미국 등의 나라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지만,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는 오히려 여성의 참정권을 주는 것에 강한 반발이 있었고, 다른 나라보다 늦었습니다. 북한이 1946년, 한국이 1948년인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게 된 역사는 역설적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순간에 여성은 없었습니다.

저자 조앤 W. 스콧은 프랑스 혁명기에 페미니즘을 외친 다섯 명의 여성의 삶을 되짚어보며 그녀들의 삶이, 주장이, 그리고 페미니즘이 왜 역설적이었는지를 말합니다. 올랭프 드 구즈, 잔 드로앵, 위베르틴 오클레르, 마들렌 펠티에, 루이제 바이스, 그리고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구즈의 말처럼 '해결하기 쉬운 문제는 주지 않고 오로지 역설만을 던지는 여성'들이었습니다. 역설은 부정하기 힘든 추론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녀들의 목소리,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고, 그녀들, 그리고 페미니즘은 '개인'에게 당혹을, 때로는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말한 구즈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페미니즘의 역설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여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페미니즘의 최대 화두는 여성의 정치참여권이었으며, 여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담론으로서 정치에서 '성적 차이를 제거'하려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편에 서서 '성적 차이를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남녀평등을 위해 여성주의가 됩니다. 스콧은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여성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데서 그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곳은 더 광범위한 것입니다. 페미니즘이 왜 역설만을 던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페미니즘을 넘어서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사상의 영역을 들여다봐야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시절에 인간은 같은 존재가 아니였습니다. 부자와 거지, 귀족과 농노, 인간의 가치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그리고 혁명은 이러한 구도를 제거해야 했고, 타자의 다양성을 버리고 만인이 동등하다는 추상성을 지닌 '개인'을 탄생시킵니다. 모든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며, 같은 한 표의 권리를 가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추상적 개인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선 공통점이 필요했고, 신체에 주목했습니다. 권리를 가질 주체를 만들기 위해선 가지지 못할 주체 또한 만들어야 했습니다. 신체적 차이는 피부색, 성적 차이로 구별되었습니다. 흑인이 배제되었고, 여성이 배제되었습니다. 동등한 개인들, 그들은 백인들, 그리고 남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 개인은 동등해졌지만, 그곳에 여자는 없었습니다. 현대사회를 만든 사상의 역설은 사회의 역설을 만들었고, 페미니즘의 주장은 역설이 되었습니다. 남자와 동등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만국의 여성들이여, 단결하라" 를 외쳐야 했고, 여성의 강조라는 역설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정치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역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또는 이용해가며 투쟁해왔습니다. 그 결과 여성의 참정권은 점차 확대되었고, 지금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콧은 여성 배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왔던 성적차이는 여성 배제의 효과였으며, 여성성이나 남성성이란 개념은 보편적인 사회적 성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지도 수십년이 흘렀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역설을 던지는 존재들이며, 동시에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콧의 분석대로라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가 지닌 역설을, 불합리함을, 바꿔야 하지만 귀찮은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정치의 영역에서 남녀가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남녀동수법이 제정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각 정당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비례대표 1번의 자리를 여성에게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아직도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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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서프러제트] 읽었는데, 서프러제트가 영국의 참정권 이야기라면 소개해주신 책은 프랑스의 것이군요. 덕분에 알지 못했던 좋은 책 담아갑니다.

착선 2016-07-28 12:44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영화도 있네요. 서프러제트 한번 봐봐야 겠습니다.
 
전락자백 -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
우치다 히로후미 외 엮음, 이즈미 다케오미 외 글, 김인회 외 옮김, 이즈미 다케오미 외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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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합리적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으로 몰린다면,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훔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말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엔 이러한 자백을 물리적인 고문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뜨거운 쇠로 몸을 지지고, 물을 마시게 하고, 날개 꺾기, 통닭 구이, 요도 볼펜심 고문 등이 없던 죄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길이 불법적인 물리적인 고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이라고 인정받는 심문 과정에서도 충분히 거짓 자백은 만들어집니다.

저자는 유죄라고 확정되어 수년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뒤늦게 무죄임이 밝혀진 사건들, 이른바 원죄(寃罪)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아시카가 사건, 도야마히미 사건, 우쓰노미야 사건, 우와지마 사건에서 공통점은 피의자가 자백을 했다는 점이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무죄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자백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점입니다. 10명에게 물어보면 과반수 이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사실들, 범죄 현장의 발자국과 피의자의 신발 사이즈의 차이, 장갑을 끼지 않았음에도 현장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지문, 성의있게 수사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진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법 권력은 그들에게 유죄를 내렸습니다.

검찰이 오랜 세월 동안 확실한 사건만을 기소한 결과 높은 유죄율을 기록하게 되어 검찰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검찰이 법정에 보낸 피의자는 유죄가 확실하다는 편견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재판관은 문자에 의한 기록인 조서를 바탕으로 재판하는데, 조서 또한 피의자가 혼자말을 하는 듯한 독백체로 작성되기 때문에 취조관이 어떠한 질문을 했는지, 그 질문에 피의자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취조 장면을 녹음 또는 영상녹화하지 않기 때문에, 취조 과정에서 어떤 상황으로 자백이 이루어졌는지 재판관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죄의 판단에 있어서 현장의 취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경찰과 검찰, 판사 간의 높은 신뢰가 생기기도 하지만, 사법관료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무시한 수사는 일단 자백서만 만들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작성되었건 간에 유죄 판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수사에서 '취조'는 여러 외국의 수사에 비해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취조관이 '전인격을 서로 부딪쳐야만 비로소 피의자가 진실을 모두 털어놓는다'는 신념을 기초로 피의자와 대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 품에 뛰어들라'며 양팔을 벌리는 것에 가까운 감각일까요? 이 유사 부자관계는 어떻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함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거기에는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 p.73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도 인정하게 됩니다. 미시건 대학교의 연구는 뇌에 스트레스를 주고 수면을 부족하게 하면 거짓 자백을 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 일본의 엔자이 사건 등 허위 자백이 밝혀진 사건들의 수사과정에선 거짓 자백의 조건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최장 6개월 동안 구금 상태로 지냅니다. 외부인(가족, 변호사, 인권기구, 유엔기구 등)도 통화, 면회, 접견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차단해놓고 강도 높은 수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문,협박,모욕,반말,잠 안 재우기 등이 예사로 행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간첩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간첩의 탄생》pp.221~222


거짓 자백은 어린아이 등 약자에게서 더 잘 나타날 수 있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성인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강한 훈련을 받은 경찰관조차도 물리적 고문이 아닌 심리적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없는 죄를 인정합니다. 거짓 자백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져 면죄를 받은 303명 중 27%가 거짓으로 범죄를 자백했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35%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80%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죄를 인정해 사형을 당한 사람도 9명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형사사법에 존재하는 원죄 발생의 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속된 역사라고 말합니다. 전후 혼란기의 치안 유지라는 단기적인 필요성에서 부여되었던 검사의 독점 기소권은 강력한 권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다른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체제를 만들었고, 그 폐해가 원죄 사건들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높은 유죄율,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는 사법시스템 등은 일본과 우리나라 비슷합니다. 일본에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라고 수없이 외친 무고한 시민들이 발생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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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리 배지트 지음, 김현경.한빛나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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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결혼이라는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정략결혼, 데릴사위제 등 많은 사회에서 결혼은 그 사회의 문화, 시스템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사회 문화는 과거와 다르며, 결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결혼의 변화 중 가장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는 동성결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성결혼 찬반에 관한 논쟁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뜨겁습니다. 찬성쪽에 동성애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쪽에 종교인이나 보수주의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결혼 허용이 평등으로의 길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결혼이라는 시스템, 더 나아가 국가 기반을 흔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89년 덴마크, 1993년 노르웨이, 1994년 스웨덴, 1996년 아이슬란드, 2001년의 네덜란드 같은 국가에서 동성결혼의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가장 최근에 있었던 상징적인 사건은 2015년 6월에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며 무지개빛 조명으로 장식된 백악관의 사진일 것입니다. 저자 리 배지트는 동성결혼이 왜 허용되어야 하는지, 혹은 왜 허용되서는 안 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회를 바꿨는지를 묻습니다. 리 배지트가 책을 쓸 당시엔 미국 몇몇개 주가 허용과 반대를 둘러싼 변화가 시작되는 중이였습니다. 미국보다 일찍 변화가 시작된 서유럽의 사회를 연구하며, 동성결혼이 만들어낸 변화를 추적합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이 기존의 결혼제도를 파괴했거나 약화시켰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NO" 입니다. 동성결혼 허용 이전에 이미 기존의 결혼제도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순결에 관한 인식, 남녀 지위에 관한 문제, 자식 선택권 등 결혼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혼전순결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가 되었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구도는 구시대적이다못해 없애야 할 문화로 인지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이 꼭 자녀출산과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결혼 요소는 낡은 제도이고 구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변화가 서구사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지만, 동성 파트너를 인정하는 국가일수록 결혼이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사회적 의무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녀를 가지는 것도 선택이며, 부부가 어떤 일을 할지도 선택입니다. 결혼은 파트너에 대한 헌신이라는 중요한 핵심은 남아 있습니다. 남편의 역할, 혹은 부인의 역할이라는 전통적 결혼관은 동성커플뿐만 아니라 이성커플에게도 버림받고 있습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된 뒤에 나타난 결과의 하나입니다. 레즈비언 커플에게 누가 남편인지 물어볼 필요도, 자녀는 어떻게 할건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동성결혼은 이미 사회적 결혼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동성 결혼을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논쟁 자체가 결혼의 중대성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점점 더 많은 독신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성결혼은 오히려 결혼제도를 수호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통계적으로 레즈비언 커플의 3분의 1, 게이 커플의 6분의 1이 자녀 양육에 참여합니다. 연구결과는 동성애 부모의 양육은 이성애 부모의 양육과 차이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동성결혼은 그 자체로 특별하며, 결혼의 가치를 더 부가시켜줍니다. 이성커플의 결혼은 대다수의 결혼방식이기 때문에 결혼의 가치에 있어서 아무런 특별함을 주기 힘들지만, 선택함으로서 맺어지는 동성결혼은 결혼의 가치, 사회가 요구하는 파트너와의 헌신, 결혼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되살려줍니다.

동성 커플에게 결혼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파레토 개선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의 고전적 예시다. 즉 동성 커플에게 결혼을 개방함으로써,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볼지언정 아무도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 p.325


동성결혼은 결혼시스템의 적이 아닙니다. 동성 커플이 결혼 개념을 변화시키거나 뒤엎으려면 반드시 먼저 결혼한 동성 커플들이 결혼 개념에 중대한 차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해야 하지만, 오히려 결혼제도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성커플이나 이성 커플이나 결혼의 선택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결혼은 헌신과 자녀, 경제적 파트너십, 가족과의 유대에 관한 일이며, 결혼을 하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헌신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 헌신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표현, 현재 혹은 장래 자녀들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성결혼이 허용된 나라들도 손쉽게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사회적 변화, 동성애 커뮤니티의 수많은 논쟁, 정치적 변화 등을 거쳐 왔습니다. 여자는 순결해야 하며, 남편은 돈벌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결혼제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성결혼은 하나의 변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은 이미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으며, 동성결혼 허용은 그러한 결혼이 무너진다는 징조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네델란드 동성커플의 부모가 보여주는 변화는 결혼의 최우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의 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던 부모는,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준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녀의 결혼을 축복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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