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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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ISIL부터 오사마 빈 라덴으로 유명한 알 카에다, 그 외에도 코소보의 KLA, 레바논의 PLO, 아일랜드의 IRA, 콜롬비아의 AUC 등 다양한 무장단체들은 로레타 나폴레오니가 의사(擬似)국가라고 지칭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K-47, RPG-7, 검은 복면 등의 공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무력을 통해 지역권력을 행사합니다. 1994년에 멕시코에서 또 하나의 무장단체, '사파티스타 EZLN'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장단체가 흥미로운 점은, 다른 무장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총과 칼로 권력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자신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치아파스 주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지닌 땅입니다.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은 500년 전부터 노예제와 투쟁했고, 대 스페인 독립 전쟁에서 싸웠고, 북아메리카의 팽창 정책에 저항했으며, 프랑스인들과의 전쟁에 참여했고,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 정권을 거부했습니다. 옥수수와 커피, 소, 석유 등 매우 풍족한 자원을 생산하는 이 땅은 언제나 약자들이 살아왔고, 언제나 빼앗겼으며, 계속 싸웠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 역시 세계적인 착취 구조의 희생양이 되었고, 언제나처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자, 치아파스 주민들은 경제적인 생존 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질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정치조직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결성해 멕시코 독재 정부에 전쟁을 선언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치아파스 주민은 존엄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태어났으며, 1824년의 합병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탈과 반란의 긴 연쇄 고리에 의해 이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다른 사람들과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성직자들과 무장 군인들이 이 땅을 정복한 이래, 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하늘 아래서는 존엄과 반란이 살아 숨쉬며 퍼져 나갔습니다. 집단 노동과 민주적인 사고, 다수결의 원칙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전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남을 수 있고, 저항할 수 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이 "나쁜 생각들"은 "소수의 손에 많은 것을" 이라는 자본주의 교훈에 반하는 것입니다. - pp.79~80

사파티스타는 한밤중에 산 크리스토발 광장의 정부 공관에 나타나 '라칸돈 정글의 선언'을 발표하고 정글로 돌아갔습니다. 멕시코 제도혁명당 독재 체제를 거부한 사파티스타는 결코 군사적인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사파티스타 공동체로 의심이 가는 마을을 공중폭격했고, 가혹한 탄압과 회유책을 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12일간의 무장투쟁을 통해 그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고, 누가 보더라도 금방 진압당할 작은 해프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려 21년이 지난 2015년에도 존립하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펜이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사파티스타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말입니다. 사파티스타는 공동 성명과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편지를 통해 언어의 총알을 만들어내었고, 언어의 전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미디어와 서구 언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반란의 언어를 내보내며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는 편지의 말미에 언제나 민주주의와 정의, 자유를 외치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명령하는 사람들이 복종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적 기획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권리와 기획에 찬동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모든 기획이 지향하는 것은 반드시 정의여야 하는 기본 전제를 만들기 위해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가 틀에 박힌 혁명 이론과 가장 분명한 단절을 보인 것은 그들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인데, 그들의 승리는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혁명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밟아야 할 중요한 단계로 인식했다면, 사파티스타의 혁명은 어떤 특정한 사회적 기획을 가진 당이나 조직, 혹은 제휴 조직들의 승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제안들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민주작 공간의 창출이며, 그 목표에 사파티스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경험에 반하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전통이나 관습 또는 권위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을 요구하는 확실성이 우리가 경험한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기표현은 그 뿌리에서부터 방해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자유의 조건은 늘 권력이 강요하는 규범을 광범위하고 일관되게 회의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p.268

사파티스타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의회에 참여하고, 명령하며, 복종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 독재 정부 시절보다 더 나은 경제적 환경과 복지를 제공했고, 그 결과 치아피스 주를 자치하는 정치조직이 되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입성해 정부와 아무 충돌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하고 다시 자신들의 기지로 돌아갔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거부한 검은 복면의 무장단체가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독재적 언어도,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선진 세계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거부하며 투쟁하는 사파티스타의 반역적인 상상력은 94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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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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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민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줄여서 '재특회'는 강렬한 헤이트 스피치와 반한정서, 그리고 일본의 일베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공간에서 타자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베와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재특회는 일베와 다릅니다. 재특회는 조직화되어있고, 리더가 있으며, 많은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약자에 대한 공격을 무자비하게 펼치는 재특회와 같은 단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언제라도 우리나라에 재특회와 같은 강렬한 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스터디 그룹인 동아시아문제연구회에서 시작된 재특회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언설과 행동으로 순식간에 유명한 단체로 부각되었습니다. 조선학교 무상교육 반대, 외국 국적 주민에 대한 생활보호 지원금 지급 반대, 불법 입국자 추방, 핵무장 추진 등 우파적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길에서 당당히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초등학교에 난입하는 등 과격한 행보를 보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광주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전두환을 찬양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홍어새끼들, 다 죽어라" 라고 외치거나, 이화여대에 난입해 여성혐오증을 마음껏 발산하며 학교 시설물을 부수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아마 일본에서의 재특회와 비슷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애국'이란 유일한 존재 증명이 되기도 한다.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 p.142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재특회같은 단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무언가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재특회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명확한 적과 목표를 설정해줌으로서 소속감을 주고, 애국심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재특회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을 제공해줍니다. 재특회에는 놀랍게도 한국인도 있는데, 재특회를 위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재특회 전속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박신호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인을 혐오하는 재특회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는 오직 이곳만이 자신을 인정해준다고 말합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일본사회가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적 증오가 생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가 전해주는 진실들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바탕으로 보수파 잡지 및 미디어의 중국위협론 따위의 언설을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인터넷 정보에 불과했지만, 이를 진실로 믿고 그것을 사회에 알려야 하는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젊은이들에게 자국의 내력으로부터 생긴 문제를 은폐하는 대신 사이비 적을 제공하며 이를 민족주의적 형태로 표출하게 합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존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저임금 노동자 및 소비자로서 그네들을 적당히 조달하면 된다고 여겨 온 전후 일본의 회사주의와 문화론의 좌우 합작의 결과 같은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우울을 느끼고 있다면, 이는 새로운 거처라 여겼던 문화 영역이 중간층의 상하 분열과 함께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네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p.140

저자가 재특회 회원들을 취재하며 자주 듣는 말은 재특회 회원들은 일반 시민을 자처하며, 재특회는 시민 단체이며, 재특회의 투쟁은 계급투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처럼, 재특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번듯한 자기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길에서 마주쳐도, 친구로 지내도 아무 의심이 가지 않는 일반적인 시민들입니다. 또 이들은 기존의 보수단체, 진보단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가진 일반적인 일본 우익단체의 이미지인 군가와 검은색 자동차, 폭력단같은 이미지를 경멸하며, 전통적인 진보단체의 경우 경기호황으로 인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퇴색해버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나치 독일을 지탱한 것이 결국 일반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 역시 이름 없는 일반인들의 기반 하에 존재합니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면,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젠가는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을 살 수 있고, 정년을 맞으면 연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미래는 한정된 계층에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 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라는 점은, 사람이 물건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경제적 균열과, 전통적 우파, 좌파 단체가 제공해주지 못한 사상적 균열은, 오늘날 재특회와 같은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체제는 무장을 하게 된다.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p.244

저자는 재특회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면 그 폭력적 언어에서 연상되었던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는 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저자는 파시즘에 대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언급하며, 나치를 지탱한 것은 파시스트들이 아니라 일반 독일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를 지탱하는 것 역시 일반 일본인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은 파시스트나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길러지며,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낳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는 재특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불법 이민자나 다문화가정, 여성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감행하는 재특회와 같은 운동이 등장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평상시에 자신도 모르게 쌓아왔던 증오가 만들어낸 우리의 과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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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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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홈에버, 남양유업 사건 등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해 파견직,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되었고, 최근에 있었던 땅콩회항으로 알려진 대한항공 사건은 재벌가 문제, 갑질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론화는 더 빠르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반면, 그것을 개선시킬 저항의 원동력은 부족합니다.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학자들과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이 저항하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수백억 원을 가지고 있는 재벌가 어린이들,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실업 문제, 1%대 99%로 대변되는 부의 불평등 문제 등 젊은이들이 저항할만한 뚜렷한 목표도 존재합니다. 전태일 세대에서, 더 과거의 역사를 비춰보더라도 저항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저항하지 않는가?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사회가 절망적이기 때문이 가능합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희망을 포기했기에, 젊은이들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도, 갑과 을의 불합리한 관계도, 상위 1%가 사회의 부를 쓸어가더라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더라도 젊은이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값비싼 음식도, 자동차도, 집도, 결혼도 포기한다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만한 사회인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겐 값싼 정크푸드가 있고, 월 2만원에 즐길 수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SNS,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성욕을 해소한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3평짜리 고시텔도 곳곳에 있습니다. 고도성장의 풍요는 젊은이들에게 절망과 동시에 행복을 안겨줬습니다.

이제껏 일본은 경제 성장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려왔는데, 돌연 경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일본은 모두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 경제 성장을 선택한 일본, 어쨌든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벌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307

경제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더글라스 러미스보다는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와 유사합니다. 언젠가 민주주의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선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일본 젊은이의 '이등 시민화'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꿈' 혹은 '보람'이라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젊은이야말로 저렴하고 해고하기 쉬운 노동력이라는 점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며, 이 노동력이 존재하는 한 사회의 바퀴는 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변화의 시기는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결혼의 포기, 최소한의 소비생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점차 감소해 그 특이점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 격차라는 문제가 지목하는 피해자는 사실 젊은이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젊은이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고용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가장 곤란해지는 쪽은 '젊은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업이다. 마땅한 고용 대책과 합리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단지 '젊은이들'이 가엾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 pp.285~286

저자는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반란은 베이비 붐 세대라는 거대한 젊은 층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의 주역은 젊은이들이었고, 젊은이들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주역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무언가 높은 대상을 향해 분발하기보다는, 친구 관계 등 자신과 가까운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치는 부담스럽고, 투표는 거추장스러우며, 혁명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격차사회라든가 블랙기업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젊은이들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 대규모의 변화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땅콩회항은 사회문제라기보단 한 순간의 유흥의 영역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공헌을 희망하는 젊은이의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포기했고,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왠지 불안합니다. 실제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만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은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상의 답답함을 깨뜨려 줄 만한 매력적인 사회공헌 방법을 찾고 싶지만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이런 욕구를 통해 등장한 것 중 하나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 재특회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들이 일반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길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끊없이 외치는 것처럼, 자신들이 찾은 진실, 애국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사회가 침해되거나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가 지적을 당했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도쿄 도는 '청소년 건전육성조례 개정안'에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고 해도 나이가 18세 미만인 경우, 이것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을 넣으려고 했다. 아동 포르노와 달리 실재하는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실재청소년'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민주당 도쿄 도 총지부 연합회 간부의 사무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그 결과, 개정안은 조문을 바꿔 12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결됬다. 하지만 반대 운동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내 주변 세계가 변할지도 모른다'라는 위기감이 사회적인 행동으로 분출한 것이다. - p.219

저자는 젊은이들이 결코 사회문제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 국가나 민족, 사회와 같은 것에서 가족, 친구와 같은 형태로 변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국가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나면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서겠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젊은이는 가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애국심과 내셔널리즘도 아직은 어느정도 유효한 가치관이지만, 그것을 대체할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자는 절망과 행복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며, 과연 이 다음 시기에 사회가 절망으로 가득차 극적인 변화와 파괴가 일어날 것인지, 행복의 시대를 연장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는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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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
제인 맥고니걸 지음, 김고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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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원사운드의『호드50』을 보면, 게임을 왜 하냐는 질문에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거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유를 찾을 필요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는것처럼 게임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의 말처럼, 게임은 그냥 할 수 있는 강렬한 매력이 있습니다. 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의 구조를 연구해 게임이 왜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지, 게임이 왜 미래를 바꿔나갈 힘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게임을 힘들고 하기 싫은 공부나 직장생활같은 일과는 다른 반대의 개념, 즉 쉽고 재미있는 놀이로 여깁니다. 더 심한 사람들은 게임은 아이들이나 즐기는 유희에 불과하며, 어른이 되면 하면 안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서튼스미스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함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우울함을 피하기 위해 놀아야 합니다. 때문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루덴스로 칭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은 놀이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다는 점에서 놀이의 영역이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일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의 필수적 구조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목표, 규칙, 피드백,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사운드의 만화에서 이를 비교해 보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게임을 시작했고, 50판을 깨겠다는 목표가 있으며, 게임 내의 무기와 적에 대한 규칙이 존재하고, 50판을 깨면 받는 랭킹이라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이러한 4가지 구조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게임의 영역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사장님이 강제로 게임을 시킨다면,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공정한 규칙이 없다면,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제노동이 됩니다. 맥고니걸은 철학자 버너드 슈츠의 말을 빌어 게임을 이렇게 말합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학생들은 감정노동자라기보다 감정노예라고 할 수 있다. 늘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승무원보다 억지로 끌려간 성노예에 가깝다. 학교에 강제 연행되어 우연히 같은 반에 배속되었을 뿐인 타인들과 친밀한 친구로서 공동생활을 강요당하는 강제노동은, 병사와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성노예의 강제노동과 동일한 형태다. -《이지메의 구조》p.170

게임이 요구하는 4가지의 구조적 요소들은 축구, 바둑과 같은 스포츠부터 공부, 심지어는 직장생활과 같은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스포츠는, 효과적인 공부법은, 다니고 싶은 직장은 모두 목표, 규칙, 피드백, 자발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를 가지지 못한다면 하기 싫은 스포츠, 안좋은 공부법, 괴로운 직장생활이 됩니다. 회사 내에서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축구대회,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공부,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 직장생활은 모두 강제노동의 영역에 속합니다. 현실에서 이 네가지 구조를 모두 갖춘 것을 찾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에 반해 게임은 이 네가지 구조를 모두 갖춘 소위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많이 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게임에 열광합니다.

사람은 저 네가지 구조를 가진 환경을 접하게 되면 어떤 것이든 몰입하게 됩니다.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몰입상태에 대한 심리적 메카니즘은 많이 연구되었는데, 자신이 해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어려운 일을 할때 몰입이 이루어집니다. 만약 조기축구회에 몰입해서 축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 리오넬 메시와 축구대결을 해서 이기라고 강제로 시킨다면, 몰입상태는 깨지게 됩니다.《운동화 신은 뇌》에서 소개된 네이퍼빌의 연구는 인상적입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심장박동 측정기를 통한 공정한 평가를 약속하자 운동에 대한 흥미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사실은, 현실세계에서 4가지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측정기에 나타난 여학생의 심장박동 기록을 본 롤러는 깜짝 놀랐다. 평균 심장박동 수치가 187이 나온 것이다. 열두 살짜리임을 감안한다면 최대 심장박동 수치는 대략 209정도다. 그러므로 여학생은 정말 있는 힘껏 뛰었다는 뜻이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심장박동 수치는 207이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아이에게 가서 '야, 좀 더 빨리 뛰지 못해!' 라고 소리를 질렀겠지요. 바로 그 순간이 체육 프로그램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심장박동 측정기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지요. 그러자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운동에 흥미를 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화 신은 뇌》p.32

제인 맥고니걸은 더 나은 현실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현실의 게임화가 필연적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은 인간이 원하는 본질적 구조들을 가장 명확하면서도 빠르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상세계에 가깝습니다. 이 뚜렷한 목표를 현실에서 얼마나 구현하느냐가 사람들의 행복을, 사회의 생산성을 결정짓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선거활동에 게임적 요소를 도입해 사람들을 집결시켰고, 인공지능 연구부터 수많은 기술적 혁신이 많은 사람들의 게임적 참여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24일, 영국 의회 역사상 최대 스캔들을 파헤치고자 2만명이 넘는 영국인이 온라인에 결집했고, 이들의 활동으로 이후 의원 수십 명이 사퇴하고 광범위한 정치 개혁이 단행됐다.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그 큰 변화를 일으켰을까? 다름 아닌 게임을 통해서였다. - p.306

전세계를 강타했던 게임적 사회참여,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겁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야스다 고이치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게임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사회에서도 발휘되기 위해선 사회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며, 인간적인 보상을 해줄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제인 맥고니걸은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그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 게임을 참고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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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1966년 미국의 병원에서 한 아이의 운명을 뒤바꾼 의학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생후 7개월된 남자아이 브루스가 포경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가 타버린 것입니다. 석탄처럼 타버린 브루스의 성기는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자로서의 삶이 끝장나버린 브루스의 부모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자아이로 만드는 성전환수술을 한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담론에서 동성애 혐오자들이 성적 정체성은 바꾸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브루스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브렌다라고 이름이 바뀐 브루스는 생의 시작부터 여자로 자랐습니다. 갓난아이때부터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성기를 가졌으며, 주변에서도 모두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도 여자로서 다녔고, 활동도 여자로서 했습니다. 마치 영화『트루먼 쇼』처럼 진실은 숨겨져 있지만 완벽한 환경이 구성된 것입니다. 브렌다의 케이스는 학계에서도 유명했는데, 브렌다는 남동생 브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하나의 유전자풀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한명은 남자아이로, 한명은 여자아이로 인위적인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이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의 성에 대한 관념을 바꿔놓을 정도로 극적이면서도 명확한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남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옷을 입는것을 거부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같은 여자아이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브렌다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브렌다는 온몸에 기름이 묻어있고 연장통을 들고다니는 자동차 정비공을 꿈꾸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영화『트루먼 쇼』에서 결국 주인공이 바깥 세상으로 떠나듯이, 브렌다에게도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BBC에서 당시 성공적 사례로 알려져있는 쌍둥이 케이스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그것이 실패한 사례라는 것을 밝힌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입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되찾게 됩니다.

"겪어보니까 여자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얌전하게 부엌에 있어야지.' '장작을 패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어렸을 때 여성단체에서 남녀 평등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남성보다 한참 아래라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남자들보다 한참 아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싫었어요. 남들 하는 일이라면 저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 '넌 여자잖니. 공놀이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 p.276

브렌다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있던 그의 부모와 심리학자들이 쉽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쌍둥이 케이스를 진행한 존스 홉킨스 병원과 존 머니 박사가 당시 '성 정체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자리매김시킬 정도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그램의 실험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비도덕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권위자의 권위에 쉽사리 저항하지 못합니다. 브렌다의 사례에서도 자기 자식이 매일 고통받는다는것을 보고 있는 부모였지만, 당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박사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정신상담을 한 맥켄티 박사와 BBC의 도움으로 브렌다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진실을 고백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브렌다가 문제있다는 것은 당시 브렌다를 만난 여러 의사들과 교육자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 성 정체성 담론의 패러다임의 기반이 된 사례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브렌다를 성공적인 여성으로 만들어 주류 의견에 동참하고자만 했지 비판하고,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의학계의 교만과 학파 간에 의견, 그리고 비과학적인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여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와 같은 남성성, 여성성의 문제부터, 성적 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담론이 있습니다. 브렌다의 이야기는 인간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인이, 사회가, 권위있는 무언가가 개인의 성 정체성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자아에 대한 위협이자 생명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브렌다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브루스로 돌아가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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