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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 우리가 배운 모든 악에 대하여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8월
평점 :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청소년 범죄로 인해 소년법 개정이 논의되는 등 학생들의 폭력은 주요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학생들이 옛날보다 잔혹해졌기 때문일까? 통계를 보면 2007년의 집중단속과 게임물 불법 업로드 등 저작권법위반사범 증가 등을 제외하면, 청소년 형사사건의 수는 계속적으로 감소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슈화로 크게 다뤄지는 것은, 강력범죄의 수가 증가세에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지능범의 경우를 제외한 폭력, 강력범의 영역에서 청소년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왜 학생들은 폭력을 행사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소년법 이상의 영역을 들여다봐야 한다.
일본 이지메 연구의 권위자 나이토 아사오는 학생의 폭력은 옮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폭력을 용인하는 공간이며, 생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교도소와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 외엔 공간 밖으로 나갈 자유도 없으며, 권위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닫힌 세계, 철저한 서열구조에서 학생들은 그들만의 질서를 따른다. 서열관계 속에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강자에게 복종하는 것도 옳은 행동이다. 학생들의 서열은 부모의 돈, 자신의 힘, 학교의 성적, 외모 등의 형태로 결정된다. 때론 스스로 획득하고, 때론 권위자가 부여해준다. 학부모나 교사는 그들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학교성적만 가져다준다면 학생이 어떤 행동을 하던 착한 행동이 된다. '착한' 일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자유는 거의 없다. 그들은 부모와 교사에게 헤어스타일부터 옷, 시간, 결정권 등 대부분을 통제받는다. 또래집단내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환경은 학생들의 언어를 변화시켰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교사에게 욕을 배우고, 부모에게 욕을 배우고, 자신들끼리 욕을 한다. 모든 공간에서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패드립을 한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집단은 또 있다. 바로 군대다. 공간의 제약, 서열화와 폐쇄성, 만연한 폭력은 학교와 군대 모두에서 발견된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노예들은 욕을 통해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
집단 성폭력의 강한 유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청소년의 서열 문화와 그 서열 문화가 갖는 폭력성이다. 그리고 청소년의 서열 문화를 만든 것은 학교의 서열 문화다. 교장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관료적 서열 체계, 상명하복 문화, 청소년에 대한 학교의 위계적 통제관리,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하향 폭력, 청소년들을 한 줄로 세우는 입시체제가 청소년 서열 문화 형성의 주범이다. - p.245
같은 똥통이라도 더 심한 악취를 내는 곳은 있기 마련이다. 상문고, 충암고 등 사학비리가 운영하는 곳이나 에바다학교처럼 횡령과 강제노역 등이 만연한 곳,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종교사학 등이 그것이다. 교장과 교감이 여교사를 성추행하고, 교사가 학생을 성희롱하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사회의 폭력을 배운다. 학생 시절엔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그 기억은 분명 내재화되어 남게 된다. 수시로 남자 반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키채로 남성의 고환을 가격하던 선생이 있었다. 반 아이중 누구도 그것에 반대를 표하기는 커녕, 그 당시에는 선생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며 부러워하던 학생도 있었다. 폭력은 그렇게 일상화된다.
학교는 분명히 민주주의를 가르친다. 학교 교과서는 고대 그리스, 프랑스 대혁명, 4.19, 5.18 등 수많은 민주주의 사건들을 가르치며, 학교는 민주적인 학생을 육성하는 곳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처럼, 대한민국 학교에 민주주의는 없다. 학생들은 인권을 빼앗기고, 발언권을 빼앗기고,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인간이 자유를 빼앗길 때 그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비관과 폭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현실을 비관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고, 폭력적이지만 약자에게만 폭력적인 사회인으로 육성할 때, 그것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권위에 순응하는 '착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국 교육은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