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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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 매년 일본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숫자다. 범죄조직의 인신매매나 바다에서 수영하다 실종되는 경우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라진다. 이름을 바꾸고, 고향을 숨기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는다. 평생을 함께해왔던 관계들을 끊고 혼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대부분의 경우 금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비참한 삶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증발할 것을 선택한다. 저자 레나 모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2년째 취업이 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금전적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더 이상 부모님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자신을 믿고 기대해왔던 부모님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빚이 생겼다. 평생 벌어도 갚기 힘든 빚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혼을 하자 주변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다. 가족에 병든 환자가 생겼다. 버티고 버텨봤지만 더 이상 돈이 없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실패한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던 사람도, 잘나가는 금융맨도 있었다. 그들은 골인 전에 한 번 실패한 것이다. 원만한 가정에 태어나서 묵묵히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결혼하고 병들지 않고 정년에 은퇴할때까지 금전적인 문제가 없는 삶. 이 모든 과정 중에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패에 관대한 사회는 아니었다. 재도전을 불허하는 사회였다. 그들은 증발했다.

우리 일본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개인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죠. - p.154


그들은 사라짐과 동시에 사람들 곁에 존재한다. 지방에서 작게 농사를 짓기도 하고,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정착하기도 한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슬럼가에서 살기도 하며, 노숙자가 되거나 야쿠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한다. 술, 피로, 우울함, 입에 풀칠할 수준의 수입, 절망, 압박감. 그들의 자조적인 말처럼, 천천히 자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를 지우고 지하경제를 지탱하는 사람들. 후쿠시마의 핵 폐기물을 치우는 사람들. 경제대국 일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어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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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 우리 시대, 연애하지 않는 젊은이들에 대한 심층 보고서
우시쿠보 메구미 지음, 서라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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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다. 한 연구조사 결과 무려 20대 여성의 70퍼센트, 20대 남성의 80퍼센트가 연인이 없다고 답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사람에, 성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에 대한 갈망, 성에 대한 열망은 예전 못지 않다. 90퍼센트의 젊은이들은 연애나 결혼을 원한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과거 일본의 이상적 결혼상대는 고수입, 고학력, 고신장의 3고(高)라 불렸다. 지금의 이상형은 평균 수입, 평균 외모, 평온한 성격, 이른바 3평(平)이다. 이상형이 평균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봉 2,000만 원 가량의 20~34세 독신 남성의 기혼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일본의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약 40%에 달하며, 이들은 정규직 임금의 50%를 받는다. 비정규직은 언제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결정된 사람들이다. 설령 임금을 지금보다 많이 받게 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연애나 결혼을 하는 것은 민폐행위이며 자살행위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것, 힘 빼고 사는 것도 불행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다. 장기 불황의 영향이다. 연애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별로 필요없다, 투자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생각한다. - p.29


금전적 제약이 해결되어도 연애는 많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인권이 신장되며 과거 연애에 있어서 용납되었던 것들이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과거 연인간의 다툼은 오늘날 데이트폭력으로 인지되며, 좋아하는 상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과거엔 용기였지만 오늘날은 스토킹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지와 현실이 충돌한다는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상사의 성희롱 등을 멸시하고 범죄로 생각하지만, 현실엔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연애나 결혼을 해서 힘들게 사는 주변사람들을 보며 젊은이들은 더 연애나 결혼을 기피한다. 이것은 여성혐오, 남성혐오로 발전하기도 하며, 연애나 사람을 기피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연애 말고도 소중한 것들이 많아졌다.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 증가했지만, 연애나 결혼을 하면 자신의 취미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연애나 결혼의 실익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결혼한 파트너의 요구라고 해도 자신의 영역을 포기한다는건 힘든 일이다. 또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 가족을 연인보다 중요시하는 풍토도 늘어났다. 애인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보다 부모와 쇼핑을 하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과거엔 일정한 나이의 사람은 반드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시되었다. 당시의 고정관념은 연애, 섹스, 결혼이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연애, 섹스, 결혼은 모두 분리되었다.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고 섹스만 할 수도 있고, 섹스를 하지 않고 결혼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과 달리 사회구성원 다수의 성역할,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인식이 전통적 단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하는 남성은 여성이 집에서 내조를 해줬으면 하지만 혼자 가정을 부양할 능력이 없고, 남성이 가정주부를 하는 것은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 일하는 여성은 맞벌이를 하는 남성이 집안일을 잘 해주지 않아 이중고에 시달리며, 전업주부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 상황상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엘리트들은 결혼을 거부하는 행렬에 앞장서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결혼의 가치를 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은 부모 세대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이혼이 더 어려워져야 한다고 믿으며 혼전 섹스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옳지 않다고 믿는다. 부모 세대에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결혼할 확률이 적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반대다.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은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자식을 키울 확률이 다른 여성보다 높다. -《결혼 시장》p.44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의 사회적 가치는 오히려 올랐다. 젊은이의 다수는 연애생활을 부러워하고, 결혼을 동경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결혼에 실패하며 이혼율이 증가했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 평화롭고 행복한 가족은 이제 상위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개인주의의 증가, 피임의 발달, 성 해방과 여권 신장 등의 영향이 없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득이다. 상위계층의 결혼율만이 증가했다. 고소득 남성과 여성은 오히려 전통적 결혼의 가치를 숭상한다.

저자 우시쿠보 메구미는 적극적인 사회적 변화와 지원만이 많은 젊은이들이 연애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비정규직의 철폐, 사회적 빈부격차 해소, 새로운 결혼문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 등이 그것이다. 젊은이들은 소득의 부재로 괴로워하고, 문화와 제도의 차이에서 고통받는다. 사회 연대의 관점에서의 결혼등록, 동성결혼, 동거에 대한 사실혼 인정 등 현실과 제도의 갭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공동체가 새롭게 거듭나지 않고서는 가족 불안정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더욱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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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지 못한 죽음 - 중증 외상, 또 다른 의료 사각지대에 관한 보고서
박철민 지음 / 이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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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가 동일한 환자가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최신식 치료를 받아 빠른 시일내에 퇴원해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은 치료시설이 부족한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시기를 놓쳤고,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받지 못하고 시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중증외상환자였다. 치료받을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주기엔 대한민국은 아직 미숙한 점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대두되면서 경제활동인구를 지키는 것은 더 소중해졌다. 중증외상은 경제활동이 활발한 40대 이하 젊은층의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이다. 아주대학교병원의 이국종 교수는 충분히 살 수 있었지만 치료받지 못해 죽는 중증외상환자가 연간 1만 명에 달한다고 말한다. 서울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할 경우 투자 대비 편익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중증외상환자를 긴급히 이송해 치료할 인력과 시설 및 장비 등이 갖추어진 의료체계가 부족해 중증외상환자의 사망비율이 타 선진국보다 높은 약 32%에 이른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해마다 최소 1만 명 이상이 예방 가능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 전사자는 4,407명이다. 베트남전쟁 10년 동안 사망한 군인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 응급실에서 매년 '전사'했다는 것이다. - p.62 

한국의료체계가 중증외상환자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먼저 중증외상분야에서 일하는 의사가 극히 적다는데 있다. 중증외상은 의학의 정식 과목도 아닌데다 3교대 24시간 근무를 해야하는 응급실 업무다 보니 의대생들의 선호도는 매우 낮다. 다른 어떤 곳보다 환자의 상태가 참혹한 중증외상분야는 더 힘들면서, 돈벌이도 안되는 곳이다. 의사들이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다른 하나는 중증외상환자의 이송, 치료과정에서 의사와 병원의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환자를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현실은 언제든지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 돌리다가 구급차 안에서 죽여도 된다. 무엇보다도 중증외상환자는 돈이 되지 않는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는데 매년 1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난다. 의사가 아무리 열의가 있어도 병원 경영진의 의지가 있지 않다면 환자는 죽을 뿐이다.


복수의 공무원에 따르면 '아덴만 여명'사건 이후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가 다쳐도 수원까지 가야 하나?" 하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한 셈이다. - p.68 

이 책은 2013년에 씌여졌다. 당시 저자는 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타당성평가에 막혀 이뤄지지 않았다. 중증외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자살 항목이 빠졌고, 한국인의 목숨값을 2억 원도 안되게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부처에 따라 다르지만 한 사람의 목숨값을 80~100억 원으로 책정하는 미국이었다면 타당성평가가 바로 통과됬을 것이다. 다행히 2016년 말 기준 권역외상센터는 전국적으로 7곳이 되었고,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라 보긴 어렵다. 중증외상환자 문제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자본의 논리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만이 중증외상 치료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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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에 묻는다. 대형마트의 캐셔, 공장의 노동자, 대학원생, 거리의 청소부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인가? 국회의원의 자격, 대통령의 자격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오직 일정 이상의 나이만이 조건이다. 누구나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다. 돈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가 국민 전부를 대변할 수 있는가? 국민 다수가 변호사인가? 민주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기본 원칙‘인 자유가 취해야 할 두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의 한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 자유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재선의 동기가 없는 의원들은 선거로 선출되는 지금의 의원들처럼 국회 업무를 팽개치고 지역구에서 재선 활동에 전념하지도 않을 것이고, 서민들이 하루빨리 처리되기를 바라는 민생 법안을 계속 미루지도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조항이나 지나치게 복잡한 세제 관련 법안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될 것이며, 연말에 도매금으로 수백 건씩 처리되는 법안들은 진지한 심의를 위해 처리 건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의회는 전문가 집단의 특권적 공간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진정한 민주적 권력체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를 생각해보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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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시장 - 계급, 젠더, 불평등 그리고 결혼의 사회학
준 카르본.나오미 칸 지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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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 통계청 기준)은 5.9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2016년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혼인율이 올라갈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혼인율이 계속 낮아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원인들을 검토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 가족관을 파괴하는 도덕관념의 쇠퇴와 개인주의를 지목했고, 피임기술의 발달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 해방과 여권 신장으로 인해 권력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혼의 변화에서 주목할 점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가치가 변화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점점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결혼의 가치가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같이 살아가겠다는 서약을 맺는 것에 대해 여전히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하고 싶어합니다. 만약 개인주의의 범람과 도덕의 쇠퇴, 피임의 발달, 또는 성 해방과 여권 신장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류에서 결혼율이 줄어들고, 고소득 여성의 결혼은 더 줄어야 합니다. 하지만 통계는 엘리트 여성이 역사적 흐름에서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집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택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결혼에 대한 인식은 분명 변화했습니다. 새로운 결혼 및 이혼 모델은 가장 한 명과 전업주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모델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며, 부부가 함께 돈을 벌고 함께 가사를 돌보는 것이 결혼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부부는 가족 경제 및 자녀의 삶에 똑같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의 이상적 배우자에 대한 조사는 그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남자들이 요구하는 상대의 소득이나 자산이 여자들과 비슷해진 것입니다. 연봉 5,000만 원을 받고 자산이 2억 5,000만원이 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려면, 자신도 그정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엔 모든 계층에서 남자의 소득이 더 높았고, 대부분 자신보다 적게 버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계층에 대한 인식은 변화한 반면, 경제적 여건은 그런 변화를 맞춰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약화되자 경제 사다리의 맨 아래에 위치한 노동자가 큰 타격을 받았다.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법률 때문에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지자 남성 임금의 분산값이 14퍼센트 커졌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 조건이 악화되고, 고용 안정성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임금을 통해서건 세금과 공공복지를 통해서건 기업 이익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줄었다는 사실이 바로 미국 가족에게 일어난 변화의 핵심이다. - p.287


경제 피라미드에서 최상층 남성은 예전보다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1대 99의 사회에서 상위 1%는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고소득 남성들은 더이상 중산층이나 저소득 여성을 결혼상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고소득 여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소득 계층에서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확연히 적기 때문에, 남성들간에 경쟁이 심화됩니다. 고소득 남성과 여성은, 결혼 전엔 성 해방이 가져온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전통적 결혼관계가 가져오는 안정감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성은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여건이 되며, 괜찮은 남성을 만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고소득 계층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결혼과 가정에 충실해집니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 평화롭고 행복한 가족은 이제 상위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 됩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여성의 경제적인 자유는 남녀가 짝을 찾는 방식을 바꾸었고 결혼관 또한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중간 계급 남성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경제 발전과 여권 신장이 맞물린 결과, 지난 30년간 거의 모든 여성이 소득이 증가하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아직 사회의 유리천장이 있기에 여성이 중간계층에 밀집한 반면, 소수의 남성을 제외한 많은 남성들이 저소득자로 몰락했습니다. 중간계층의 여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적당한 소득, 평범한 성격을 가진 '결혼할만한 남자'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탐색비용이 드는 것을 포기하고 골드미스가 되는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하층 계급으로 몰린 사람의 숫자는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결혼하기에 적합한 배우자는 더 적어졌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시간당 40달러를 벌었으나 해고된 후 시급이 15달러인 일자리밖에 찾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보통 일을 덜 하고 남는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내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 역시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더 많이 마십니다. 가정폭력은 늘어나고, 아이들 교육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구조조정 인원 삭감에서 살아남은 남성이라 해도, 좋은 배우자는 아닌 것입니다. 여성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하더라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남자를 남편으로 거두기보다 혼자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입니다. 남성 역시 소득도 적으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습니다. 소득 상위 10%의 20~30대 남성은 82.5%가 결혼한 반면, 소득 하위 10%의 20~30대 남성은 고작 6.9%만이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출산과 교육은, 계층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초래한 가족의 변화는 더욱 큰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우수한 교육을 받는 상위 계급은 자신의 계급을 더욱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면,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던 계급 이동 사다리는 아예 사라져버렸습니다. 저소득층은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저출산은 일종의 사회적 자살이기도 합니다.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왜 가장 가난한 집단은 결혼하지 않는지, 왜 엘리트 여성은 역사적 흐름을 거슬러 가장 많이 결혼하게 되었는지 등을 검토하며 우리 삶에서 계급이 차지하는 역할과 커져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결혼, 이혼, 육아의 조건을 재정립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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