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임금 - 몽상, 그 너머를 꿈꾸는 최고임금에 관하여
샘 피지개티 지음, 허윤정 옮김 / 루아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년 대한민국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 월 174만 5,150원이다. 최저임금제는 최하위층의 소득을 올림으로서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간격을 좁히는 데에는 또 하나의 방안이 있다. 최상위층의 소득을 내리는 것이다. 현재 정책입안자들은 이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정치적 영향력이 있고 시간도 있으며 돈도 있는 부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샘 피지개티는 둘 다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둘 다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해야 한다. 최상위 소득과 최하위 소득이 연동되는 '최고임금'제다.

최상위층의 소득을 내리는 방안은 꽤 오랜 역사를 지녔다. 조지메이슨대학교 경제학과 피터 T 리슨은 《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해적들이 약탈품을 분배할 때 가장 많이 분배받는 선장도 가장 적게받는 선원 2인분 이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지나친 빈부격차는 조직을 붕괴시킨다는것을 알았던 것이다. 20세기 중반 미국은 현재 가치로 4억 3,000만 원 이상의 수입에 대해 20년간 평균 90%에 달하는 누진소득세를 매겼다. 이런 사회적 분배는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을 지탱해주는 중산층의 성장에 기반이 되었다.

고소득에 대한 높은 과세율은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이해관계가 걸려있었던 부자들은 정치적 압력, 언론, 각종 협회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세금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세율은 계속해서 내려갔다. 1963년 90%의 세율이 1988년 28%까지 떨어졌다. 기업 임원들은 자신들의 연봉을 점점 가파르게 상승시켰다. 높은 연봉의 근간이 된 임원의 실적은 상당수 인원감축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등 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심지어 그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높은 연봉을 받았다. 부자들이 부유해질수록 세금을 많이 낼 테니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면 된다는 호혜적 논리가 그런 행동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 최상위 1%의 실질소득은 3배가 늘었고, 미국인 절반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소득 상한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이렇게 흐른다. 만약 사회가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상한을 두면 부자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고, 그들은 더이상 기업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자리 창출자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창출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경제는 박살난다. 과연 타당한 논리일까? 닉 하나우어는 실제로 부자들이 일자리를 최대한 창출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 p.120

 

불평등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평등이 답이다》에서 불평등의 가장 극적인 영향은 수명이라고 지적했다. 불평등한 국가의 국민들은 평등한 국가의 국민들보다 빨리 죽는 것이다. 데이비드 캘러헌은《치팅 컬처》에서 불평등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탈 행위를 강요한다고 지적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명제는 필요한 경우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한다. 금융위기를 경고했던 라구람 G. 라잔은 임원에 대한 파격적인 보수 체계가 공격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금융위기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진행된 변화는 극심한 불평등 세계를 만들었고, 이는 다시 변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CEO에게 과도한 연봉을 주는 회사들의 법인세율을 올리는 법안이 채택되고 있다. 인도는 최고 임원과 중간 직원 간 급여비율을 공개시키고 있으며, 영국은 정부 사업을 맡는 기업들의 임원 급여에 상한을 두는 방안을 내놓았다. 수많은 대기업들은 정부사업 등 공적 영역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엄청난 세금이 각종 혜택과 지원금 형태로 들어간다. 이는 정부정책을 통해 얼마든지 임금제도를 견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고임금제는 일정 소득 이상의 소득에 과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들을 거지로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부자다. 애완용 사자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과시하는 행위를 하지 못할 뿐이다. 오히려 소득정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안겨 줄 것이다. 수만 명을 이끄는 기업의 총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존경과 대우를 받을 것이다. 부자들은 빈민가 옆에서 높은 장벽을 쌓고 보안회사의 경호를 받아야만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백만장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녀들의 교육 기회가 유리하고, 보다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이주한다. 그곳이 바로 평등한 사회가 아닌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8-12-2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상정의원이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로 정하고, 법인이 소속 임직원에게 이를 초과하는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 했었습니다.

지나친 빈부격차를 줄어들고 이 사회가 조금은 더 공의롭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실업 : 그 사회심리적 반응
피터 켈빈 외 지음, 이효선 옮김 / 인간과복지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수많은 실업자들이 있으며, 사회구성원 다수는 살아가면서 실업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은 사회구조의 변화, 기술발전 등 실업이 발생하는 원인은 말해주지 않는다. 실업이 발생했을 때 실업자를 중심으로 가족,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실업과 관련된 기관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여론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결과들을 말하고 있다. 학문적 연구이기에 정형적 실업자, 정규직이었다가 실업자가 된 경우, 가정이 있는 경우, 남성인 경우에 한한 결과들이지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상황, 여성 실업자의 경우에도 사회심리학적 변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업자가 실업을 마주했을 때 겪는 다양한 심경들은 문학, 예술작품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민감한 반응,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 자신을 이등 시민으로 지칭하는 모습, 친구 및 비경제 사회조직에서의 이탈 등은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서 이미 입증된 현상들이다. 실업자들은 실업 초기 일을 찾아보는 기관에는 비교적 낙관적이며, 자신이 휴가중인 것이라 생각하며 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 곧 비관적이 되며,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다. 비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실업자는 운명론적이 되며 결국 삶은 붕괴한다.

타자가 실업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실업자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실업을 다루는 기관의 모습, 언론의 대응, 언어의 변화까지 미친다. 개신교주의에 근간을 둔 일의 윤리는 탈종교적인 형태로 남아 노동의 가치를 획득하고, 실업자를 정의한다. 일의 윤리는 20세기 사회과학의 발명품으로서 오늘날 사회 지배적인 윤리는 부의 윤리이다. 실업의 영향 대부분은 빈곤의 영향과 일치한다. 윤리와 사회학적 논지로 구성된 사회시스템은 실업을 다루는 고용노동부의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하여금 실업자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대중들과 언론이 사용하는 실업과 관련된 언어들 속에는 실업의 책임이 개인에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과잉노동력, 사오정, 오륙도 등의 언어들은 우리가 실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IMF상황만큼은 아니라지만, 우리 곁에는 이미 수많은 실업의 결과들이 누적되어 있다.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들,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타인에게 분노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 N포세대 현상, 결혼기피현상 등은 미래의 결과가 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전적 대응일 것이다. 실업의 결과들을 마주하면서 과연 개인의 차원에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사회의 차원에선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 시급히 생각해봐야 할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 4일 근무시대 - 왜 노동시간 단축이 저성장의 해법인가?
피에르 라루튀르 외 지음, 이두영 옮김 / 율리시즈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주52시간 근무제는 노무현 정부 당시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인 이른바 주5일 근무제 이후 가장 인상적인 변화다. 몇몇 경제지에선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위기설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거라 보는 학자들도 많다. 주5일제 도입 당시 노동계는 임금 삭감을 우려했고, 경영계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인건비 부담이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중소기업의 줄도산 사태가 일어난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이 무색하게도 기업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근로자의 임금이 대폭 줄어들지도 않았다. 주5일 근무제는 노동자의 휴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지만 총 노동시간의 면에서 보면 큰 변화는 아니였다. 주52시간 근무제 역시 현재 주 68시간을 일하는 사례는 예외적이고 대부분 53~54시간을 일한다는 점에서 총 노동시간의 변화는 크지 않다. 한주에 1~2시간 더 쉬는 것,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 다가올 변화이다.

컴퓨터,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계는 우리에게 높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현재 추진중인 제조업 혁명, 4차산업혁명이 이론대로 정착된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높은 생산성 향상을 마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높은 생산성 향상은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선물을 주었다. 바로 높은 실업률이다. 업무에 필요한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생산성 증가에서 나오는 이윤의 대부분이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높은 실업률은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킨다. 전문직, 대기업 사원 등 높은 구매력을 가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실직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가를 즐기지 못할 것이며, 다수의 소비자는 생산성 혁명에서 발생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이 줄어드므로 소비경제는 점점 멈출 것이다.

이것은 경제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우리는 다시 귀족정으로 돌아갈 것인가? 능력주의를 찬미하며 위대한 인간들에게 종속되어 세계의 부를 모두 몰아주는 사회를 만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생산성 혁명의 이윤을 분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제, 증세 등의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현재의 임금을 유지하면서 적게 일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함으로서 사회 전체의 부를 조정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임금교섭력을 강화시키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주주들, 특히 대주주들의 단기적 이익에 반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땐 부합하는 것일수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 향상에 대응해왔던 역사성을 지닌 운동이다. 1차 산업혁명의 대량생산은 결국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다. 대공황을 견뎌낸 것은 성장의 이윤을 분배하기 위한 전국노동관계법, 사회보장, 보험 등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었다. 주5일 40시간 노동의 공유, 최저임금 등을 통해 노동을 공유하고 이윤을 분배했다.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생산성을 향상시켜 왔으며 금융위기 등 다양한 형태로 폭발하고 있다. 전 세계적 실업난은 이러한 변화에 아직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 피에르 라루튀르와 도미니크 메다는 실질적으로 주 39시간을 일하는 프랑스에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한다. 주4일 32시간 노동이다. 과거 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시도는 효과가 있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프랑스의 경쟁력을 가로막지 않았고, 사회보장 분담금 경감 비용과 세무 분담금 추가징수, 실업 보상 수당 등 경제적 부담도 적었다.

현재 대한민국 실업자는 실질적으로 5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수는 미래가 없다. 구성원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이다. 여러 경제지에서 대혼란이 올 것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주52시간 근무제는 변화의 일각에 불과하며 효력도 적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더 근본적이고 격정적인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체행동권 - 공익과 인권 10
이흥재 엮음 / 사람생각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노동 3권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이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 3권을 인식하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큰 사건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주요하게 다가온다. 그 주요한 순간에는 노동3권의 단결권, 단체교섭권보단 단체행동권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근로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단체행동권에 대한 해석은 대한민국 노동계 구조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재 단체행동권은 상위의 헌법해석학적 시각보단 하위법인 노조법의 관점에서 보는것이 주류적이다. 또한 독자적 자유권인지, 자유권적 성격과 사회권적 성격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혼합권적 성격을 가진 것인지의 차이에서 법원은 혼합권적 성격을 강조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흥재는 이 관점들이 올바른지 묻는다.

단체행동권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근로자가 조직적,경제적으로 종속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단체행동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정도 다중의 위력이나 협박적 요소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실력행사이다. 이런 행위는 반평화적, 반합법적으로 보이지만, 단체행동권에는 민,형사상 면책효과가 부여된다. 단체행동권에 민,형사상 면책효과가 있는 이유는, 행동권을 보장해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갈등의 조화 해결능력이 더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적정한 실력행사를 국가나 사용자가 수인함으로써 계급적 대립의 완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아닌, 대립의 중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체제의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물론 단체행동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 및 안전을 보호해야 할 내재적 한계를 가진다.

근로자의 단체행동을 혼합권적 성격으로 보는 시각의 문제는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를 명분으로 내세워 오히려 노동 3권을 제한하는 정당한 사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법원, 정부, 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수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더 나아가 쟁의행위의 민사상 책임을 묻기 시작했고, 단체행동권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오고 있다. 통일중공업 사건 이후 쌍용차, KEC, 한진중공업, 보쉬전장, 유성기업, 상신브레이크, 현대차, 기아차, DKC, 아시아나항공, 완산교통, 문화방송, 대전일보, 속초의료원, 고려수요양병원, 동양시멘트, 생탁막걸리, 울산과학대 등 수많은 기업들이 파업 등 노조 쟁의행위에 수천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관련 노동자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은 1906년에 사용자의 불법행위 소송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현재는 책임상한액을 제한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의 헌법적 보장이 자본주의체제유지를 위한 고도의 정책적 장치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회통적 사회구조를 지향하기 위하여 단체행동권의 적정한 행사를 가로막는 법풍토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 p.30


이흥재는 단체행동권을 독자적 자유권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 3권 중에 어떤 것을 핵심으로 해석하는지에 대해 단체행동권이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각은 중요하다. 노동 3권에서 단체행동권이 중심이 된다면, 독자성, 일상성, 보편성의 관점에서 많은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사용자와 국가의 억압에서 행동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후수단원칙에서 벗어나 목적 실현을 위해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만이 아닌 근로자 단체 또는 일시적 집단이나 개별근로자라도 단체행동을 인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더 이상 투쟁은 노동조합의 배타적 권리가 아니게 된다. 노조가 없더라도 근로자가 투쟁할 수 있게 된다면, 삼성전자 등의 무노조 원칙을 적용하는 기업들의 방어논리도 사라지게 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한국 노동자들은 점차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갔다. 단순한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 아닌, 정치적 목적의 단체행동권 또한 사실상 규범력을 획득했다. 지난 박근혜 퇴진운동 역시 국민의 단체행동이었다. 노동계에 긍정적 변화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 위주의 노동운동에서 중소규모 사무직을 위한 노동운동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길은 멀다. 노조가입률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조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단결권, 단체교섭권 또한 지켜지지 않은 곳이 많다. 그 중 가장 먼 길은 단체행동권이다.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우리의 이웃나라,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의 경제학 - F16은 세계를 어떻게 빈곤에 빠뜨리는가
비제이 메타 지음, 한상연 옮김 / 개마고원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부분은 금액이 아니었다. 중국이 도시바를 가져갈 것이냐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결국 중국은 가져가지 못했다. 내부 담당자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국은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그리고 그 뒤에 미국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거라는게 일반적 견해다. 이런 모습은 과거 여러 차례 나타났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이 1조 달러에 달했을 무렵 중국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 미국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구입하고자 원했던 재화와 서비스, 기업을 한사코 판매하지 않으려 했다. 중국이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미국은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2003년 미국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저금리 덕분이었다. 저금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성장 덕분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기업을 사지 못하는 대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계속 투자했다. 미국은 국채를 언제 발행하던지 확실한 매입처가 존재하게 되자, 금리를 높여서 국채를 팔 이유가 사라졌다. 미국의 대중국 적자는 계속 늘어났다. 경제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던 것, 미국의 상품을 중국에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를 비난했지만, 중국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후 저금리 덕에 형성된 서브프라임이라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폭발했다.

미국은 수출의 66%를 전체 수출기업의 3%가 책임지고 있다. 그 중 항공기, 전기기기, 범용산업기계, 발전기, 과학기기 등 하이테크 제품을 수출한다. 롤스로이스 항공엔진의 가치는 같은 무게의 은과 같다고 하니, 하이테크 제품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요한 수출품목 중 하나는 무기다. 헬기와 미사일, 전투기 등을 판매한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연료전지, 레이저, 로봇 팔, 광학장비 등 하이테크 품목의 상당수는 무기와도 연관이 있는 이중용도 품목이다. 넓게 봤을 때 미국의 주요 수출품은 결국 무기, 전쟁과 연결된다. 미국은 전쟁을 수출하고, 생필품을 수입한다. 미국의 상대교역국들은 무기를 얻고, 생필품이 사라진다.

미국은 거리낌없이 무기를 전 세계에 판매한다. 중국만 제외하고. 중국이 원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 군산복합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투기를 사고 싶다면, 중국은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을 사고 싶다. 순수한 경제학적 논리라면,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은 충분히 살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팔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느 누구나 알고 있다. 전쟁상품이야말로 세계 경제구조에 중심이라는 것을 저자 비제이 메타는 말한다. 미국, 더 나아가 주요 선진국들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결코 하이테크 제품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 생산품만을 사가길 바랄 뿐이다. 그 댓가는 후진국의 자원, 식량, 후진국 사람들의 빈곤이다.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하이테크 무기들은, 그 말처럼 사람들을 죽인다. 무기가 사용되서 죽이는게 아닌, 사람들을 굶겨서 죽인다.

UN이 정한 새천년개발목표는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엇비슷한 수준의 인간안보를 누려야 한다는 게 그 근본 취지이지만, 일각에서는 달성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말 그런가? UN에 따르면 연간 3,000억 달러만 투자하면 극빈선인 하루 1달러의 생계비로 연명하는 전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 액수라고 해봐야 전 세계 연간 군사예산의 1/3이다. - p.254


파키스탄에 신형 무기를 살짝 제공하면 저절로 인도에 새 무기 시장이 열린다. 이른바 군사균형이란 명분 하에 사회적 부는 계속 순환된다. 한쪽엔 먹을 수 없는 무기가 제공되고, 한쪽엔 먹음직스러운 온갖 소비재가 제공될 뿐이다. 지배 엘리트들의 견해에 따라 민족주의와 군사주의는 신성시된다. 미국에서 군인의 위상이 대단한 이유도 그것에 있다. 전쟁의 경제학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글로벌 테러리스트들, 끊임없이 등장하는 후진국 독재자들과 로비스트들, 그리고 그들이 소비하는 우리의 세금이다. 비제이 메타는 전세계적인 군사비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끊임없이 군사적 대응론을 언급하는 이 시점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