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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행동권 - 공익과 인권 10
이흥재 엮음 / 사람생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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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동 3권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이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 3권을 인식하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큰 사건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주요하게 다가온다. 그 주요한 순간에는 노동3권의 단결권, 단체교섭권보단 단체행동권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근로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단체행동권에 대한 해석은 대한민국 노동계 구조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재 단체행동권은 상위의 헌법해석학적 시각보단 하위법인 노조법의 관점에서 보는것이 주류적이다. 또한 독자적 자유권인지, 자유권적 성격과 사회권적 성격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혼합권적 성격을 가진 것인지의 차이에서 법원은 혼합권적 성격을 강조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흥재는 이 관점들이 올바른지 묻는다.
단체행동권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근로자가 조직적,경제적으로 종속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단체행동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정도 다중의 위력이나 협박적 요소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실력행사이다. 이런 행위는 반평화적, 반합법적으로 보이지만, 단체행동권에는 민,형사상 면책효과가 부여된다. 단체행동권에 민,형사상 면책효과가 있는 이유는, 행동권을 보장해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갈등의 조화 해결능력이 더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적정한 실력행사를 국가나 사용자가 수인함으로써 계급적 대립의 완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아닌, 대립의 중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체제의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물론 단체행동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 및 안전을 보호해야 할 내재적 한계를 가진다.
근로자의 단체행동을 혼합권적 성격으로 보는 시각의 문제는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를 명분으로 내세워 오히려 노동 3권을 제한하는 정당한 사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법원, 정부, 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다수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더 나아가 쟁의행위의 민사상 책임을 묻기 시작했고, 단체행동권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오고 있다. 통일중공업 사건 이후 쌍용차, KEC, 한진중공업, 보쉬전장, 유성기업, 상신브레이크, 현대차, 기아차, DKC, 아시아나항공, 완산교통, 문화방송, 대전일보, 속초의료원, 고려수요양병원, 동양시멘트, 생탁막걸리, 울산과학대 등 수많은 기업들이 파업 등 노조 쟁의행위에 수천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관련 노동자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은 1906년에 사용자의 불법행위 소송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현재는 책임상한액을 제한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의 헌법적 보장이 자본주의체제유지를 위한 고도의 정책적 장치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회통적 사회구조를 지향하기 위하여 단체행동권의 적정한 행사를 가로막는 법풍토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 p.30
이흥재는 단체행동권을 독자적 자유권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 3권 중에 어떤 것을 핵심으로 해석하는지에 대해 단체행동권이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각은 중요하다. 노동 3권에서 단체행동권이 중심이 된다면, 독자성, 일상성, 보편성의 관점에서 많은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사용자와 국가의 억압에서 행동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후수단원칙에서 벗어나 목적 실현을 위해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만이 아닌 근로자 단체 또는 일시적 집단이나 개별근로자라도 단체행동을 인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더 이상 투쟁은 노동조합의 배타적 권리가 아니게 된다. 노조가 없더라도 근로자가 투쟁할 수 있게 된다면, 삼성전자 등의 무노조 원칙을 적용하는 기업들의 방어논리도 사라지게 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한국 노동자들은 점차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갔다. 단순한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 아닌, 정치적 목적의 단체행동권 또한 사실상 규범력을 획득했다. 지난 박근혜 퇴진운동 역시 국민의 단체행동이었다. 노동계에 긍정적 변화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 위주의 노동운동에서 중소규모 사무직을 위한 노동운동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길은 멀다. 노조가입률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조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단결권, 단체교섭권 또한 지켜지지 않은 곳이 많다. 그 중 가장 먼 길은 단체행동권이다.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우리의 이웃나라,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