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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시위의 자유 - 공익과 인권 6
안경환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3.1 운동, 4.19 혁명, 부마 민주 항쟁, 6월 항쟁 등 다양한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도전한 프라하의 봄, 인도의 낙살라이트 운동, 1968년으로 대변되는 폭발적인 운동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티파티 운동, 월가 점령 시위 등의 수많은 시위는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했고 변화시켰습니다. 시민들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독재자의 몰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더 나은 경제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인종과 남녀의 평등을 주장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재특회처럼 애국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과 반핵단체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의 불가결하고 기초적인 기능요소에 속하며, 순수한 형식의 민주주의입니다. 때문에 헌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자유권에 속합니다. 정치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시민의 권리는 민주적 개방성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특히 언론, 출판의 수단인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가지는 역할과 기능은 더 중요해집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대중 봉기의 역사는 압제자에 맞선 반란과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지적처럼 군중들은 공동체의 관습과 권리를 옹호하고, 적법한 행동과 불법적인 행동의 경계를 설정해 집회와 시위를 함으로써 극단적인 환경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대한민국에서 갑과 을의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도가 지나친 갑질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시위를 행사합니다. 집회와 시위는 많은 경우 권력에 저항하는 형태를 지니고, 권력은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은 시위대를 공공질서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며, 사회 파괴분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정부와 언론의 표현과 이미지 만들기는 정부나 기업에 맞서는 집단의 메시지와 적법성을 약화시키며, 시위대를 길들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경찰의 폭행과 군대식 급습은 당연하게도 많은 언론의 관심과 운동가들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안보를 빌미로 한 탄압은 경찰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들은 시위대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자유 발언' 구역과 '시위' 구역을 만들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이들을 현장의 정치에서 격리시킨다. -《저항 주식회사》p.34
흡연권과 혐연권이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 건강권과 생명권이라는 주요 권리들로 충돌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기본권의 하나이면서도 집단적이고 외부 표출적 속성으로 인하여 공공질서나 타인의 자유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흡연권과 혐연권이 둘다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혐연권이 더 우선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와, 집회와 시위로 인해 피해받지 않을 권리는,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합니다. 그러나 현재 문제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1962년에 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줄여서 집시법이며, 저자 김도형, 김승환, 권두섭, 정인섭, 정찬모 외 다수의 법학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집시법이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 대상이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명확성이 결여되어 경찰 당국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에 한총련과 민주노총의 거리행진은 경찰이 허락한 반면, 서울 용산 미8군 앞 집회는 금지통보하겠다고 한 판단은, 허용 여부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집시법이 악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의 허락이라는 원칙적으로 위헌적인 문제가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집시법은 과도한 신고사항 요구와 위장집회신고 문제 등 다양한 법적 허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집시법 11조의 외교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 시위 금지 조항은 사실상 서울 도심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S모 재벌그룹의 경우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외국 대사관을 건물로 유치해 시위를 원천봉쇄하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청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 시위 현장의 외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그곳을 경찰차로 포위하듯이 둘러쌈으로써 외부에서 집회, 시위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의사소통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경찰작용이다. 집시법에 이러한 침해작용에 관한 명확한 근거규정이 있을 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헌법적으로도 그 정당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 p.71
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평화의 기준을 정부가 집시법을 통해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자들은 하나의 집회가 형사법에 위반하는 경우 그것이 곧 비평화적인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니며, 소수의 폭력적인 집단의 존재를 통하여 전체 집회가 비평화적으로 전개될 것이 예측되는 경우, 전체 집회는 비평화적 집회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경찰력이 개입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로의 점거, 교통방해 역시 비평화적이라는 명분 하에 규제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며, 일부의 집회참여자들만이 폭력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이를 이유로 평화적인 집회참여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금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집시법에 대한 지적 중 일부는, 헌법재판소에서도 받아들여져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결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규제들이 현실적인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집회시 소음기준 강화 적용 문제, 야간시위 문제, 경찰의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요구, 개인초상권 같은 변형적 규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입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등장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는, 또 다른 법적 해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 성향이나 시민들의 의식에 따라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미래에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