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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시위의 자유 - 공익과 인권 6
안경환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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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3.1 운동, 4.19 혁명, 부마 민주 항쟁, 6월 항쟁 등 다양한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도전한 프라하의 봄, 인도의 낙살라이트 운동, 1968년으로 대변되는 폭발적인 운동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티파티 운동, 월가 점령 시위 등의 수많은 시위는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했고 변화시켰습니다. 시민들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독재자의 몰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더 나은 경제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인종과 남녀의 평등을 주장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재특회처럼 애국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과 반핵단체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의 불가결하고 기초적인 기능요소에 속하며, 순수한 형식의 민주주의입니다. 때문에 헌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자유권에 속합니다. 정치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시민의 권리는 민주적 개방성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특히 언론, 출판의 수단인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가지는 역할과 기능은 더 중요해집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대중 봉기의 역사는 압제자에 맞선 반란과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지적처럼 군중들은 공동체의 관습과 권리를 옹호하고, 적법한 행동과 불법적인 행동의 경계를 설정해 집회와 시위를 함으로써 극단적인 환경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대한민국에서 갑과 을의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도가 지나친 갑질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시위를 행사합니다. 집회와 시위는 많은 경우 권력에 저항하는 형태를 지니고, 권력은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은 시위대를 공공질서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며, 사회 파괴분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정부와 언론의 표현과 이미지 만들기는 정부나 기업에 맞서는 집단의 메시지와 적법성을 약화시키며, 시위대를 길들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경찰의 폭행과 군대식 급습은 당연하게도 많은 언론의 관심과 운동가들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안보를 빌미로 한 탄압은 경찰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들은 시위대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자유 발언' 구역과 '시위' 구역을 만들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이들을 현장의 정치에서 격리시킨다. -《저항 주식회사》p.34

흡연권과 혐연권이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 건강권과 생명권이라는 주요 권리들로 충돌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기본권의 하나이면서도 집단적이고 외부 표출적 속성으로 인하여 공공질서나 타인의 자유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흡연권과 혐연권이 둘다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혐연권이 더 우선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와, 집회와 시위로 인해 피해받지 않을 권리는,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합니다. 그러나 현재 문제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1962년에 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줄여서 집시법이며, 저자 김도형, 김승환, 권두섭, 정인섭, 정찬모 외 다수의 법학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집시법이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 대상이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명확성이 결여되어 경찰 당국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에 한총련과 민주노총의 거리행진은 경찰이 허락한 반면, 서울 용산 미8군 앞 집회는 금지통보하겠다고 한 판단은, 허용 여부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집시법이 악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의 허락이라는 원칙적으로 위헌적인 문제가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집시법은 과도한 신고사항 요구와 위장집회신고 문제 등 다양한 법적 허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집시법 11조의 외교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 시위 금지 조항은 사실상 서울 도심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S모 재벌그룹의 경우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외국 대사관을 건물로 유치해 시위를 원천봉쇄하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청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 시위 현장의 외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그곳을 경찰차로 포위하듯이 둘러쌈으로써 외부에서 집회, 시위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의사소통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경찰작용이다. 집시법에 이러한 침해작용에 관한 명확한 근거규정이 있을 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헌법적으로도 그 정당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 p.71

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평화의 기준을 정부가 집시법을 통해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자들은 하나의 집회가 형사법에 위반하는 경우 그것이 곧 비평화적인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니며, 소수의 폭력적인 집단의 존재를 통하여 전체 집회가 비평화적으로 전개될 것이 예측되는 경우, 전체 집회는 비평화적 집회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경찰력이 개입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로의 점거, 교통방해 역시 비평화적이라는 명분 하에 규제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며, 일부의 집회참여자들만이 폭력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이를 이유로 평화적인 집회참여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금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집시법에 대한 지적 중 일부는, 헌법재판소에서도 받아들여져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결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규제들이 현실적인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집회시 소음기준 강화 적용 문제, 야간시위 문제, 경찰의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요구, 개인초상권 같은 변형적 규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입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등장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는, 또 다른 법적 해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 성향이나 시민들의 의식에 따라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미래에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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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소수자의 인권 - 공익과 인권 04
한인섭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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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성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치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벌써 15회를 맞이하는 축제지만, 행사 도중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열린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이 나온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양현아, 한채윤, 이석태, 홍춘의, 장복희는 법적 차원에서 성적 소수자들은 어떤 쟁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법이 필요한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비정상적 내지 병리적 성적 지향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편견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거나 병리적인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회가 이성애중심주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셸 푸코도 이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바라봤는데, 푸코의 역사관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근세의 에로스와 구분되는 근대의 특징입니다. 근대에서 섹슈얼리티란 정상과 이상을 정의하고 표준과 일탈을 해부하는 지식이며, 자연적인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닌 문화와 역사의 산물입니다. 섹슈얼리티의 사회에서 성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이성애 커플인 부부의 성애만이 특권화되고, 동성애는 배척됩니다.

부부간 성애가 다른 종류의 성애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던가, 이성 간 성기성교가 정상적인 성애이며 다른 것은 모두 일탈이라고 하는 등의 명제는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성애중심주의는 성인남녀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평생 한 사람과 혼인관계를 가진다는 이른바 정상적 결혼관 내지 가족관을 유일한 규범으로 제시하고 현대국가는 이런 규범을 시민들에게 제시, 강요합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성 결정 방식은 최근의 생물학적 연구에 의하여 오랫동안 사회에 의해 믿어져 온 양성가설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고, 기존의 양성가설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염색체의 구조에 기초하여 한 개인의 성을 정의하는 판단의 불합리성은 스페인 허들 선수인 Maria Patino의 예에 의하여 잘 설명되고 있다. Ms. Patino는 198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Ms. Patino는 남성호르몬 불감증 증후군(AIS) 간성자였다. 그녀가 외부생식기상의 성, 외모, 자기 동일시 등이 명백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색체 구조는 남성의 염색체였다. - pp.108~109

그동안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염색체, 성기의 외관, 기타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고 판단될만한 근거 등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즉 성에 의한 구분인데, 여러 학자들은 젠더에 의한 구분을 사회가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젠더는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사람의 외모, 인격적 속성 및 사회성적 역할로, 젠더와 성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버틀러는 젠더 정체성의 핵심은 수행성에 있다고 말합니다. 젠더란 성염색체, 호르몬, 성기 등과 같은 자연적 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젠더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이며, 이를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적으로 남자다움을 수행하기 때문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적 구분과 엄밀히 구분됩니다.

여기서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그가 생물학적 인간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나의 동료'로 삼을 수 있느냐 여부이다. 나의 동료가 아니라고 했을 때,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그 '나'란 성적 소수자는 물론 아니며, 오히려 모든 '인간종'을 심판하는 아무 결함 없는 (즉, 아무 '소수자성' 없는) 나이다. 그는 유색인도, 장애인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고, 불임증과 선천적 질병이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고, 물론 남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왜 수많은 소수자들 혹은 '소수자성'을 가진 '내가' 완전무결한 '그'의 동료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소수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 p.40

오늘날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성적 구분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섹슈얼리티 변화를 친밀성 개념으로 풀어 나가며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 사회를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임신과 출산의 의미를 과거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사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동성애혐오자들이 동성애 관계가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자연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했었다면, 그러한 판단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기준이 된다면, 불임 이성애 부부도 비정상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입양의 가치를 가치있다고 판단하며,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부부는 오히려 이성애부부보다 더 바람직한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입양으로 인한 사회의 재생산이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사회에서, 동성애부부들은 이성애부부만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블랙 라이크 미》p.404

소수자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도덕적 판단과는 거리가 멉니다. 동성애는 나와 관련만 안되면 상관없다는 방관주의나 낙관주의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수자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것이며, 자기자신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누군가는 소수만이 주장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소수만 즐기는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소수만 좋아하는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성적 소수자는 그것이 단지 성적 지향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며,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을 배제하는 것은 이방인 안에 존재하는 인간공동체를 죽이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자신을 인간공동체로부터 배제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가치는,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정신은 우리는 저들, 소수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고 정의로운 평등을 다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적 지향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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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세계 - 개정판 대학교양총서 18
박세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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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디자인이나 제목으로 봐서는 흡사 고등학교때 많은 학생들을 괴롭혔던 수학의 정석이 생각나긴 합니다만, 다행히도 이 책은 역사로서의 수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수학책치고는 흥미로운 편입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수학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수학의 변화를 차례대로 따라갑니다. 발견된 수학공식 등이 직관적으로 나와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 잡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 있어선 본편보단 부록이 더 재미있었는데, 부록은 20세기 수학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나옵니다. 1900년 파리에서 있었던 제2회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제시되었던 23개의 문제들과 그 대부분이 해결된 과정, 2000년 새천년 수학7대 난제에 대한 소개는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이 책을 계기로《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푸앵카레의 추측》과 같은 수학 교양서로의 접근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책의 기본 틀이 1985년에 간행된 책이라 그런지 약간 고전스타일이 느껴집니다. 예를들면 수학자들 이름 표기시 리이만이나 프왕카레라고 써져 있는데, 요샌 대체로 리만이나 푸앵카레라고 쓰더군요. 뭐 사소한 차이이고, 리이만으로 쓰던 리만으로 쓰던 별로 개의치는 않는 문제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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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제랄드 V. 레이놀즈.안토니 저지 지음, 문성호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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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박봉에 일은 고되고 시간외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일을 하다가 심한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치료받기 힘든 소방수들에 대한 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의 대부분의 반응은 소방수들의 봉급을 올려줘야 한다, 처우개선이 시급하다 등과 같은 반응입니다. 수많은 의견을 봤었지만 그에 반하는 의견은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연과 함께 헌법33조 2항의 일부 공무원의 항목에 소방수들을 포함시켜 소방노조를 만들고 스스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까요?

이 책은 그러한 진통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경찰들의 노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의 영국에서 경찰노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했고, 그에 대한 영국정부의 대응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918년 1차 파업을 계기로 주급인상, 연금자격 하향조정, 유가족연금 신설, 전쟁보너스 지급, 학자금수당 신설 등의 근무개선을 이끌어내지만 2차 파업에서 천여명의 경찰관이 복직해임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투쟁과 희생은 지금의 영국경찰노조(Police Federation)를 낳았고 경찰노동3권을 행사할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를 되짚어보며 여러 질문을 합니다. 과연 공무원들이 스스로 노동3권을 지니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 향상으로 나타나는가? 노조의 유무는 공무원들의 처우개선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가? 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한국의 노조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역사적으로 6.25이후 손꼽히는 반공국가였고 자치경찰제가 아닌 국가경찰제라는 점. 격렬한 노동활동이 일어났던 시기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한국에서 경찰노조가 탄생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경찰노조가 투쟁할 당시 영국정부의 대응은 한국의 정부 그 이상의 대응이였음을 거론하며 노조결성은 의지의 문제가 더 큼을 시사합니다.

책의 부록으로 한국의 한 경찰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경찰관은 경찰이 아무리 시간외근무를 많이 해도 법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은 인정해주지 않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해임당하고 맙니다. 복직투쟁을 벌이고 싶었으나 변호사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현재는 대구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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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성평등 공익과 인권 15
양현아 지음 / 경인문화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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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남성중심의 역사였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는 남성중심의 문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군대문화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군대는 언제나 남성의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양성에 대한 평등요구가 증가했고, 개인적 평등을 넘어서 집단으로서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많은 법과 제도, 정책이 수정되었고,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평등에 대한 인식은 최근 들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군대, 병역의무에 따른 성불평등 문제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공익인권법센터와 한국젠더법학회의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던 학술회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군대와 평등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군대문제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군 가산점제도입니다. 정부는 1961년 이후 군사원호대상자고용법에 따라 공무원과 교사 임용시에 군 제대자들의 복무연한에 비례해 3%에서 5% 가산점을 부여해왔습니다. 하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가 재판권 전원 일치로 해당 법안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군 가산점 제도는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가산점 논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만 해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군 가산점제도의 부활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9조 1항에서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다 하는 것일 뿐,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금하는 것은 병역의무의 이행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 정부는 군대를 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도는 젠더 관계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페미니즘 법학의 판단을 요청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인 문승숙은 한국의 근대성을 군사화된 근대성으로 특징지으면서, 한국사회에 지배적인 군사화된 남성성과 가정화된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코드의 핵심에 남성 징병제가 있음을 논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73년 병역특례법에 따라 병역 의무자를 중화학 공업에 배치함으로서, 여성의 입장에서 중화학 공업과 관련된 직업과 기술단련을 받을 기회가 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존재했던 제대군인 가산점제로 인해 여성은 공무담임권의 수혜로부터 배제되었으며, 군인 경력이 공무원 호봉이나 연금법에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은 차별적 효과를 발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성만의 징병제도에 의해서 여자와 남자는 현저히 다른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징병제는 시민권 개념과 쌍생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징병제는 근대화의 중요한 특성인 신분제를 뛰어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계급적 차이를 넘어 집단생활을 하는 경험은 근대화의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민이 곧 병사라는 정체성과 함께 근대국가 형성과 국가중심의 질서확립에 유효한 제도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징병제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여성의 진입이 자유롭지 않은 남성의 제도입니다. 따라서 징병제가 의미하는 시민은 남성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방의 의무는 성별화된 임무이며, 국민됨의 요건에서 여성은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여성배제의 원칙을 유지해 온 징병제는 시민권은 결국 성차별적일 수밖에 없으며, 남성 중심적 사회를 다지고 유지하는 기초제도라고 지적됩니다. 때문에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을 시작으로 김화숙, 이정희, 유숙렬 등은 여성의 징병제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자는 보호받는 자고 남자는 보호하는 자라는 공식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현재의 군대문제가 군가산점제와 같은 논의에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제대군인지원제도는 남성 징병제의 틀을 바꾸지 못하며, 남성만의 징병제가 존재하는 한 군복무를 이유로 채용시 가산점을 부요하는 제도는 헌법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군가산점제와 같은 제대군인 지원제도가 아니라 평등원리라는 큰 틀에서 군인력 충원의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징병제를 포함한 군복무 참여 확대도 고려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스웨덴처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징병제를 둘러싼 고민은 양성평등 획득에서 징병제가 중요한 변수임을 확인시켜줍니다. 군대가 있는 한 여성의 입장에서 군대는 외면하는 것이 최선인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징병제에 여성이 참여하고, 군대의 남성중심성이 극복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사례는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에게 있어서 매우 시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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