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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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사람들은 길거리에 모일 수 없습니다. 결사적인 삶은 권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곳은 차단됩니다. 진짜 목소리를 내는 시위는 불법으로 선언되고 강제로 종식되며, 그들이 쫓겨난 무대는 엉터리 정치 집회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색을 사용하라고 명령하는 흑백사회를 거부하고, 총천연색 사회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일어났었던 6월 항쟁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항쟁의 순간, 비통해하는 사람들 속에 분명히 민주주의는 존재했고,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민주화 운동이 만들어낸 87년 체제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수준에서 제도화되었지만, 그것이 권위주의적 유산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또한 영구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면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피터 버거의 말처럼, 모든 상대주의에는 절대의 재래를 기다리는 광신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불편합니다. 사람들 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낯선 자와 만나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립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이 허물어지는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긴장관계는 분명한 스트레스의 일종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을 버티지 못하고,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 권위자의 말을 맹신하고, 복종함으로서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유명 인사들,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사람들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두려음을 조장하고, 절대적 가치를 외치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획득합니다.

의심이 없는 한 민주주의도 없다. 절대적인 진리가 모든 형태의 전제정치의 핵심인 것처럼. 제도적 저항, 다당제, 대안 세력, 민주정치 체제의 핵심에 의심이 없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의심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으로 침묵한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종말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민주주의가 뭐가 필요한가? -《의심에 대한 옹호》p.170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피터 린더트는 독재적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긴장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특별함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모든것을 진두지휘하며 명료하게 계획하는 것보다, 국회의원끼리 대립하고, 정부부처간에 견제하는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전이야말로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진정한 발전, 자유로서의 발전입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지는 것처럼, 민주주의 역시 계속 행동함으로서 유지됩니다. 민주주의는 헌법이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단순히 선출직 공무원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것만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선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마음은 자아의 핵심이며, 근원적인 앎의 방식들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가장 핵심적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끌어안음으로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습관으로 발현하는 시민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비통함을 느낄 수 있고,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이끌거나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을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 p.41


민주주의적 마음의 습관을 지닌 시민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교실, 직장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를 통해 교육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 다양한 단체를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갈등과 불확실성을 교육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은 선생의 권위에 의견을 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른들이 구성한 사소한 문제 이외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는 듯 취급됩니다. 대학생들은 충실한 정보로 가득 찬 민주적 가치에 관한 과목을 수강할 수는 있지만, 교사가 그 정보를 받아쓰게 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달달 외워 시험에 적도록 한다면, 그들은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의 추종자로 살아남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시킨 교육은 우리를 사회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의 일원으로 취급하며, 그 결과 어른이 되어서도 정치를 그저 관람할 뿐입니다.

손을 들어 질문하는것조차 꺼리는 사회에서, 갈등관계를 유발해 차이를 토론하고, 유머를 활용하고, 갈등을 타협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얻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행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광장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감을 높이고, 공공적 책임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적 행동이며, 민주주의의 회복입니다. 국가의 펀더멘털은 단순히 엄청난 양의 금괴나 외환보유량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을 쌓고 계속해서 신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국가의 자산은, 정부의 의견에 반발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 갈등을 벌이며,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에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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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대제는 없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교대제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음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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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5 시간.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일년에 평균적으로 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은 근로시간 분야에서 연간 2228 시간인 멕시코를 제치고 OECD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은 1770 시간으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두 달 이상을 더 직장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2285 시간의 노동도 과소측정되었을 수 있습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0 시간을, 여성들은 9 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 5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2600 시간과 2340 시간이나 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20% 가량은, 주 52 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소 연간 2700 시간입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OECD를 탈퇴해야 하는것 아닐까 싶습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저서《자본론》에서 윌리엄 우드라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윌리엄 우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15시간을 일했습니다. 우드와 같은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며 마르크스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노동자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시간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시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뿐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주인, 자본 역시 노동자의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장인들이 제품을 만들어내던 시절과 달리 공장에서 물건들이 단일화되면서, 노동은 시간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화폐화되면서 자본은 노동자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권력은 곧 시간을 통제하는 능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권력자나 부자도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 평등성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의 권력이란 말 그대로 시간을 사유물화하는 것이다. -《폭주 노인》p.87


자본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노동자를 24시간 내내 일을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노동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육체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자본주의는 언제나 시간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자본과 노동의 갈등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지 미니의 말처럼, 더 짧은 주당 노동시간을 향한 진보는, 노동운동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초의 노동운동은 성공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의 노동 체계는 1919년에 이미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1930년경 8시간의 벽을 깨고 하루 6시간 노동을 정착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지만, 8시간의 벽은 매우 높았습니다. 자본이 국제적 노동 연대의 조건을 소멸시키자마자 시간단축을 위한 움직임은 모든 곳에서 추진력을 잃었습니다.

노동시간단축운동은 국제적인 노동계급운동의 부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 연대의 정점에서 등장했다. 전쟁과 같은 초계급적인 동원의 시기에 다양한 이해를 가진 집단들의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배블록의 어쩔 수 없는 수동적 용인 하에서만 획득될 수 있었다. -《현대적 여가의 상태》p.213


자본이 강한 사회에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증가하고, 노동자가 강한 사회에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감소합니다. 대한민국의 근로시간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자본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저임금, 장시간, 주야맞교대노동이라는 억압적 노동체제는 대한민국의 기본 시스템이었지만, 점점 한계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억압적 노동체제의 부작용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약화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 노동자들의 저임금,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야기하는 사회비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곳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매일같이 비판하는 파업보다도 월등히 많습니다. 이에 대해 자본이 내놓은 새로운 답변은 유연노동체제입니다.

간접손실액을 포함한 경제적 손실액 추정치는 지난 10년간 12조 4천억 원에서 매년 증가하며 2012년 19조 2천억 원에 이를 만큼 막대하다. 또 근로 손실일수도 5,400만 일이 넘는 것으로 분석되어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일수인 93만 일의 58배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건강한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실이 '파업보다 심각한' 수준이니 자본에게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 p.79


억압적 노동체제에서 유연노동체제로의 전환은 현재 정부정책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유연노동체제로의 전환은 결코 자본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노동 유연성은 인건비 증가 없이 가동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 뿐더러 노동강도는 더 강화되고, 능력 및 성과급제가 도입되며, 평가제도 등의 구조조정을 노동자들의 저항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이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유연화가 가져오는 결과 또한 사회마다 다릅니다. 노조가 강하고 실업자 보호체계가 튼튼한 유럽의 경우, 노동의 유연화 체제는 노동시간의 감소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약하고 실업자 보호체제가 약한 미국과 같은 곳은, 노동유연화가 동시에 노동시간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유럽의 경우 교대제 노동자들이 표준 노동시간보다 더 적게 근무하는 반면, 한국의 교대제 근무자들은 더 오래 근무합니다. 정부는 노동개혁법안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이득으로 작용할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유연노동체제에는 교대제가 있습니다. 자본에게 교대제는 24시간 중단 없는 생산을 실현하는 매력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교대제는, 절대 좋은게 없습니다. 매일 변경되는 노동시간, 야간근무는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망칩니다. 삶을 잃어버린 노동자는 소비를 통해서만, 먹고, 마시고, 번식하고, 거주하고, 옷을 입는 동물적 기능을 통해서만 기능하는 존재가 되며, 더 이상 인간적 기능에게서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동물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은 동물적인 것이 됩니다. 볼프렌은 장시간에 걸친 노동이 가져오는 자유 상실의 결과는 노출증 등과 같은 병리적 성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대제는 교대제를 부릅니다. 집안에 교대제 노동자가 한 명 있다면, 그 집안 사람들은 모두 교대제의 영향을 받습니다. 교대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노동자들도, 공공 시스템도 점점 교대제가 됩니다. 교대제 노동자들은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의 삶과 격리되어갑니다. 삶에서 남는 것은 노동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노동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우정을 쌓고, 신뢰받음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다움을 얻기 위한 투쟁은, 전 세계적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힘든 길입니다. 공공 서비스들, 소방, 의료, 경찰 등과 같은 노동은 교대제가 불가피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자 하는 자본의 교대제는 분명 줄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노동자의 몸과 삶에 좋은 교대제란 없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어떤 노동 체제를 만들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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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세상 - 아시아의 미군과 매매춘
산드라 스터드반트.브렌다 스톨츠퍼스 엮고 지음, 신시아 인로.브루스 커밍스 외 해설 / 잉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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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제국의 전쟁범죄 중 하나였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근혜정부와 아베정부는 합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는 많은 논란을 남기고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정부, 전쟁, 군인, 남성, 여성, 매춘. 이 다양한 요소가 가져오는 질문들은 한일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문제를 생각하게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 산드라 스터드반트와 브렌다 스톨츠퍼스는《그들만의 세상》에서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에 있는 미군기지가 만들어낸 기지촌의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매춘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엔 언제나 성매매가 있습니다. 육체 거래의 기저에는 군대식 사고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남성다움이라는 과장된 개념이 있습니다. 서울대 배은경 교수의 지적처럼, 남성의 성매매는 개인적인 성적 욕구보다 오히려 군대나 회식, 접대로 이어지는 남성 집단의 문화와 더 깊이 연관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남성으로 이루어진 군인들, 군대식 사고를 가진 남성 직장인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조직 유지를 위해 여성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전체 한-미 관계를 위해서나, 한국에서 복무하는 젊은 미국인 남성세대가 한국에 대해 갖게 되는 최초의 기억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남성 입성식은 곧바로 시작된다. 한 나이든 '한국 전문가'에게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갈 예정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잔치에 왜 샌드위치를 가져가죠?"라고 했다. - p.207


이런 남성들이 필요로 하는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이 아닙니다. 가부장적 가치에 복종하는 여성, 단순히 성욕 배출구로서만 존재하는 인간 이하의 가치를 지닌 동물로서의 여성을 원합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기지촌 매매춘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됩니다. 미군이 성매매 여성을 폄하하며 부르는 말, '쌀로 힘을 내는 갈색 기계'는 그런 남성들의 사상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군대가 가져다주는 죽음의 공포, 괴롭고 지루한 훈련들, 그러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남자다움이라는 가치는, 미군의, 더 나아가 군인의 정신을 파괴하며, 파괴된 남성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 성매매 여성을 파괴합니다. 기지촌 성매매 문화는 인종주의, 계급차별주의,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제국주의가 뒤엉킨 용광로와 같습니다.

한국, 필리핀,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는, 외국에서 온 돈 많고 혈기왕성한 남성으로 구성된 주둔군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여성이라는 선명한 구분 덕분에, 군국주의와 신식민지적 질서가 성매매를 통해 드러납니다. 미군기지와 세 지역은, 국가 주도의 정책 덕분에 큰 경제구역과 문화를 만들어내 이런 양상을 굳건히 합니다. 기지 주변에선 밀수, 마약, 매춘 등으로 이루어진 경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군대가 철저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제도화된 만큼, 군인의 성적 휴식을 제공하는 매매춘의 문화 역시 제도화되어있습니다.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 정부는 미군을 위해 깨끗한 성노예를 제도적으로 제공합니다.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들은 정부가 지정한 위생검사를 받고, 정해진 장소에서 미군을 상대합니다. 여성을 군인의 성적 욕구를 배출하기 위해 제공되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범죄이고 위안부라면,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은 국가가 위안부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성매매 산업이 뿌리깊게 정착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적극적인 성매매 지원에 있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안부를 고용해 위안소를 운영했으며, 그 대상은 국군과 미군, 유엔군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외국인 상대 접대부를 대상으로 교양 강습을 추진했다. 당시 국가의 선결 과제는 벌거벗은 아가씨를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1970년에 주한 미군이 1만 8천 명 감축되었는데, 이 때문에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경제기획원 장관이였던 김학렬은 미군이 줄어들면 외환 수입이 약 8천만 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증언했고, 정부는 보건 당국과 경찰이 협조해 위안부의 교양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은밀한 호황》


미군기지가 제공하는 경제효과는, 지역의 건강한 경제를 구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미군기지에 의존한 산업은 미군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전체 경제체계에서 여성의 성노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자신에게는 거의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사회와 여성은 경제체제에서 희생되고 착취되는 반면, 한국, 필리핀, 태국의 정부, 상류인사, 사업가들에게 성매매는 큰 사업이자 짭짤한 돈벌이가 됩니다. 미군 기지촌의 휴식과 오락 모델은, 오늘날 아시아 관광산업의 개발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닐라, 제주도, 방콕 등 유명한 관광유흥지는 미군기지에서 이어지는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종결됬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변은 회의적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국주의 일본이 만든 한일 위안부, 그리고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성을 파는 여성을 안으며, 위안을 찾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불을 밝힙니다. 미군들이 여성을 '쌀로 힘을 내는 작은 갈색 섹스기계'라고 비하하는 것처럼, 우리도 여성을 다른 말로 비하합니다. 위안부들을 위한 투쟁은, 단순히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고통받은 할머니들을 위한 투쟁에서 그치는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 투쟁은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위안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들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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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사냥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환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거대 제약회사의 인체 시험
소니아 샤 지음, 정해영 옮김 / 마티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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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최근엔 계급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수저의 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색의 수저들 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금수저의 대표적인 경우라면, 뉴스에 간혹 등장하곤 하는 어린이 주식부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7살, 8살, 10살 정도의 나이에 이미 100억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어린이 주식부자들의 뉴스기사를 보면, 눈에 띄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한미약품입니다. 100억원대 어린이 주식 부자 8명 중 7명이 한미약품 회장의 손주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미약품의 주식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IT업계 못지않게 소위 대박을 낼 수 있는 업계가 바로 제약회사들입니다.

제약회사가 대박을 내기 위해선 신약을 판매해야 하고, 신약을 판매하기 위해선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정부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선 약의 효능을 입증해야 합니다. 효능을 입증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임상시험입니다. 그러나 제약회사가 있는 나라들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기엔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들에겐 인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의 부작용을 전부 설명해줘야 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해줘야 하고, 시험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임상시험에서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은, 제약회사의 이윤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더 싼 목숨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1달러 이하의 삶을 사는 현실 속에서, 제약회사들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아주 쉽게 피험자들을 찾았습니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기업들은 재정적, 의학적 서열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환자와 접촉하는 일은 전혀 없다. 피험자는 데이터를 얻기 위한 실험 대상일 뿐이다. 이 데이터는 의료 제품과 의약품 판매 허가를 받는 데 쓰인다. 환자와 피험자의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임상시험의 관심사가 의학적 발견이나 환자 치료가 아니라 돈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좇는 의료풍경, 임상시험》p.64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이 약을 구할 형편이 안되는 빈곤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 말대로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약의 혜택을 받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 중 일부는 위약 처방을 받고 상태가 더 악화됩니다. 임상시험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대조군과의 인상적인 차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소니아 샤는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임상시험들을 말합니다. 그곳엔 약과 의사가 있지만, 환자를 위한 약과 의사는 아니었습니다.

뉴욕 대학의 소아과의사 사울 크루그먼의 팀은 멀쩡한 아이들에게 분변을 통해 전파되어 간에 감염을 일으키는 간염 바이러스를 주사했다. 정신지체아와 다른 장애아들의 수용기관인 윌로우브룩 주립학교에서 일하는 크루그먼의 팀은 간염균이 가득한 분변을 구해서, 그것을 초콜릿 우유와 1대 5 비율로 섞었다. - p.113


인간과 질병의 투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현재 빈곤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식품이 부족한 사회보건의 개선이지, 결코 브랜드 신약은 해답이 아닙니다. 설령 신약이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브랜드 의약품 판매는 빈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불평등 자체가 못 가진 자들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브랜드 신약이 빈자들의 몸으로 실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더욱 빈자들을 만드는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제약회사의 최신 제품들, 값비싸고 효능이 좋다고 선전하는 신약들이 정말로 효과가 좋다면, 의학의 역사를 썼던 페니실린의 반 만큼의 효능만이라도 있었다면, 비인간적인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 가난한자들,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약들의 성능은 기본적인, 오래된, 그리고 무엇보다 값싼 약들에 비해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약회사들은 결핵에 찌든 빈민구역이나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구매력이 낮은 시장을 감수하는 대신, 더 돈이 되는 접근법을 선호합니다. 오늘날 의약품으로서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많은 무서운 질병을 해결할 의약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질병이 선진국에 만연한다면 무엇보다 큰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질병은 빈곤한 나라에서 발생하며, 제약회사들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한미약품이 최근 높은 이익을 올린 분야도 비만 치료 바이오 신약이었습니다. 제약회사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거리들을 약으로 해결하길 원합니다. 그들이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신약의 효과보다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상위12개 제약 회사는 매출의 12.4%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는데, 마케팅과 관리 비용으로는 34.3%의 비용을 투자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흡연자, 비만인 사람 또는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금연이나 체중 감량을 하지 않고, 또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그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 치료만 하면 된다는 암시를 준다. -《질병판매학》p.42


매년 등장하는 신약들, 큰 돈을 벌며 승승장구하는 제약회사의 이면에는, 그 약을 자신의 몸으로 실험하게 해주는 빈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빈곤한 사람들을 지구 저 멀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이 생활비, 등록금이 없어 임상시험에 몰린다고 합니다. 약의 부작용을 다 알지도 못하고,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있는 이른바 '마루타 알바'마저도 수대 일의 경쟁 끝에 할 수 있다는 뉴스는 계층간 부의 간극을 느끼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쉽게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비위생적인,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습니다.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임상시험은 필요합니다. 저자는 의학이 인간을 위한 학문이기 위해선, 그리고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선, 임상시험 시스템이 더 건전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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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집안에 판사나 검사 한명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분류 기준으로 알려진 '직업별 회원등급'을 보면 남성 회원 1등급은 판사, 2등급은 검사 라고 합니다. 이 등급표에서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입사자는 9등급에 불과합니다. 판사나 검사와 친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서글픈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피의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어 재판에 회부하는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 형을 결정하는 판사와 알고 지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죄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며, 오직 사법기관입니다.

저자 맷 타이비는, 가난이 왜 죄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부의 격차가 심해진 이 시대에 미국의 불의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무전유죄는 우리사회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엔자이 사건들처럼, 미국에서도 억울한 판결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대상은 십중팔구 가난한 사람들, 소수인종들, 이민자들입니다. 경제적 궁핍은 원죄입니다. 맷 타이비는 빈곤이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폭력 범죄가 줄어드는 독특한 현상을 말합니다. 더 독특한 것은, 폭력 범죄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감옥은 강력 범죄자들로 채워지기보단, 갈수록 경범죄자, 사회적 약자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결정은 사법기관이 합니다.

당연히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 중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엔론 분식회계 스캔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수많은 범죄들이 발생했지만, 돈 많은 회장님들, 책임자들은 사법적 특혜를 받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책임은 다국적 금융그룹에서 지방의 소규모 은행에게 떠넘겨지고, 많은 화이트칼라 범죄들이 증거불충분으로 처리되며, 이런 범죄의 뒷처리는 세금을 통해 해결됩니다. 대기업이 벌이는 범죄를 건드리는데 있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부수적 결과의 개념이,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 죄 없는 직원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형사 기소를 모면하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S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공갈협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린스펀의 지적처럼, 강자들이 탐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 1128억 원 조세 포탈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현대 정몽구 회장 700억 원 횡령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SK 최태원 회장 1조 5000억 원 분식회계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두산 박용성 회장 289억 원 횡령에 분식회계 2000여억 원인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1000여억 원 횡령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그동안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국민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혹시 생각해본적 있는가. 다들 금액이 장난이 아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보자. 금액이 크면 형량도 커진다. 그래서 50억 이상 횡령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위의 예와 비교해보라. 그런데도 요지부동 집행유예 5년이다. 집행유예 기간은 1년에서 5년 사이다. 최대가 5년이다. 그래서 마치 집행유예로는 최고형을 선고한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엄벌에 처한 것 같다. 이게 기분 나쁘다. 법을 모른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집행유예가 뭔가? 어차피 풀어주는거다. 결국 수천억 원 해먹어도 풀어주는 것, 이게 선고의 본질이다. -《서초동 0.917》p.133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 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경미한 위법행위 때문에 감옥에 갑니다. 인도에서 걷지 않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를 당한 청년도 있습니다. 정부기관은 260억 달러의 금융 사기를 중범죄로 다루지 않으면서, 복지 급여 몇백 달러를 부정 수급한 자를 잡기 위해 해마다 2만 6천 가구를 수색하는데 노동력을 사용합니다. 막강한 변호인단, 오랜 시간동안 법정투쟁을 할 자금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권력층의 범죄를 잡는 것은 수사기관 입장에서 피곤한 일입니다. 때문에 수사기관은 공원에서 자고있는 청년들, 야한 만화책을 보는 성인들, 불법복제물을 다운로드하는 네티즌들 같은 쉬운 먹이감들을 잡아 실적을 올리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1989년에 열린 레오나 헴슬리의 탈세 혐의 재판에서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방 28개짜리 저택을 관리하는 헴슬리의 수석 가정부는 법정에서 자신이 부유한 호텔 경영주와 나눈 대화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세금을 많이 내시겠네요?" 가정부가 이렇게 묻자, 헴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세금 같은거 안내. 하찮은 사람들이나 세금을 내지." -《치팅 컬처》p.197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미덕인 성공에 대한 야망은, 중요한 악덕인 일탈행위를 조장합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는, 가능하면 공정한 수단을 사용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합니다. 성공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올바르다고 여겨지게 합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주변엔 성공한 자들에 의한 지배가 올바르다고 피지배층이 여겨지도록 여러 가지 장치들이 존재합니다. 오늘날 지배층에 의한 피지배층의 지배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피지배층의 동의와 합의를 기반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기업 회장님들이 저지른 범죄를 알고 있고,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이 불공평하며 올바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며 인정합니다.

미국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이 완전히 다르고 징벌의 수위도 완전히 다르다. 부자들은 늘 특혜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격렬한 증오와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비굴한 숭배가 넘쳐난다. 너무나 무능하여 존경받을 자격조차 없는 부자라도 예외는 아니다. - p.427


저자가 지적하는 바처럼, 우리는 너무나 게으른 탓에 자주적인 통치를 포기하고, 이 사회를 관료제라는 자동 조종 장치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관료제가 제공하는 사법 서비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철두철미한 강철의 덫을 제공하며, 부자들에겐 각종 특혜가 담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큰 죄는 가난입니다. 사마천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10배 부유하면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000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하인 노릇을 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10,000배가 아니라 50,000배, 100,000배 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노예 이하의 비굴함을 보입니다. 가난을 죄로 만드는 것은, 부가 옳다는,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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